볼프강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가로등과 밤 그리고 별-함부르크 시집』에서: 가로등의 꿈, 함부르크에서, 잿빛 빨강 초록의 대도시 연가, 대도시, 골동품.
가로등의 꿈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너의 문 앞에서 창백한 저녁을 환히 비추리. 아니면 항구에서, 커다란 증기선들이 잠자고 아가씨들이 웃는 그곳에서 불침번 서며, 비좁고 더러운 운하 곁 홀로 걷는 이에게 깜빡이리. 좁은 골목 어느 선술집 앞에서 빨간 양철등으로 매달려, 상념에 잠기고 밤바람에 흔들리며 그네들의 노래가 되리. 아니면, 창틈으로 바람은 비명을 지르고 바깥 꿈들이 유령을 토해낼 때, 혼자 남은 걸 알고 놀라 휘둥그레진 아이의 눈망울에 번지는 등불이 되리. 그래,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모두가 잠든 세상에서 밤마다 홀로 저 달과 이야기를 나누리. 아주 사이좋게. 함부르크에서 함부르크..
2024.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