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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24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서: 검은 전령, 하나에 천 원이요, 영원한 주사위, 트릴세,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검은 전령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 모르겠어.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   얼마 안 되지만 고통은 고통이지. 굳은 얼굴에도  단단한 등에도 깊디깊은 골을 파고 마는...  어쩌면 그것은 길길이 날뛰는 야만족의 망아지,  아니면, 죽음의 신이 우리에게 보낸 검은 전령.   영혼의 구세주가 거꾸러지며 넘어지는 것.  운명의 신이 저주하는 어떤 믿음이 넘어지는 것.  이 처절한 고통은 그리도 기다리던 빵이  오븐 문 앞에서 타버릴 때 나는 소리.   그러면, 불쌍한... 가엾은... 사람은  누가 어깨라도 치는 양 천천히 눈을 돌려,  망연히 바라봐.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은  회한의 웅덩이가.. 2024. 10. 15.
예이츠 W. B. Yeats, 『예이츠 서정시 전집 제3권 상상력』: 내전 시기의 명상들 편에서. 내전 시기의 명상들 Ⅰ조상 전래의 저택들    어느 부유한 사람의 잘 가꾼 언덕들의 나무들이  살랑거리는 한가운데의, 꽃  피는 잔디밭 사이에는  야심찬 고통 없이도 생명력이 넘쳐난다.  그리고 생명력은 푹푹 쏟아져 분수대에 넘치고,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더 아슬아슬하게 솟구친다.  어떤 형태로든 제 마음대로 선택하고,  타인의 명령에 결코 기계적으로나 굴종된 모습으로  몸을 숙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꿈일 뿐, 꿈이로다! 하지만 풍요롭게 번쩍이는 분출이  삶 자체의 희열에서 솟아나온다는 사실이  꿈보다 훨씬 더 확실하다는 걸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호메로스는 노래하지 않았으리라.  비록 지금은, 샘물이 아니라, 풍성한 조수의  미지의 암흑에서 튕겨 나온,  어떤 놀라운 속 빈 조개껍데기가 부유한 계층의.. 2024. 10. 6.
볼프강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가로등과 밤 그리고 별-함부르크 시집』에서: 가로등의 꿈, 함부르크에서, 잿빛 빨강 초록의 대도시 연가, 대도시, 골동품. 가로등의 꿈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너의 문 앞에서  창백한 저녁을 환히 비추리.   아니면 항구에서,  커다란 증기선들이 잠자고  아가씨들이 웃는  그곳에서 불침번 서며,  비좁고 더러운 운하 곁  홀로 걷는 이에게 깜빡이리.   좁은 골목  어느 선술집 앞에서  빨간 양철등으로 매달려,  상념에 잠기고  밤바람에 흔들리며  그네들의 노래가 되리.   아니면, 창틈으로  바람은 비명을 지르고  바깥 꿈들이 유령을 토해낼 때,  혼자 남은 걸 알고 놀라  휘둥그레진 아이의 눈망울에 번지는  등불이 되리.   그래,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모두가 잠든 세상에서  밤마다 홀로 저 달과  이야기를 나누리.  아주 사이좋게.    함부르크에서     함부르크.. 2024. 9. 30.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악의 꽃』에서: 알바트로스 & 시지나 & 우울 & 백조 & 거짓에의 사랑.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 2024.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