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5 ■ 이영주 시인의 시 ■ 시각장애인과 시계 수리공 & 엎드려서 & 활선공 & 어린 밀수꾼 & 생장의 방식. · 시각장애인과 시계 수리공 시계를 고쳐주고 돌아섭니다 그는 창고에서 울고 있습니다 자신이 묻혀 사는 목소리를 떠나려고 시간 밖에서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너의 손은 매우 젊구나 가장 낯선 부분을 만지면서 때로 닫힌 눈을 생각할 때 그는 수수께끼라고 여겼습니다 철근을 붙잡고 이것은 수수께끼라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삶은 어떤 시간입니까 돌아선 채 한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손으로 볼수 있는 시계를 쥐여주고 고대 슬라브 교회의 기도문에는 한숨이 있습니다창고 문을 열고 소금과 감탄사, 머리카락과 눈물, 수염과 손가락 들을 모아놓은 죽은 목록을 들추어봅니다 모든 것은 명징하고 해독할 수 없는 양식만 남아생활이 되었습니다 시계는 살아서 움직이고 이제 밖으로 가야 하는 것은 무.. 2025. 3. 3. ■ 안태운 시인의 시 ■ 기억 몸짓. 기억 몸짓 당신의 모습이 희미해진다 해식동 곶자왈 당신은 어루만졌다 세월과 물질이 만들어낸 형태들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들 당신은 기어간다 당신은 보행한다 당신은 날아다닌다 당신은 헤엄친다 내 숨은 또다른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멀리서 영상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잔다 해령 몸을 건사하는 건 어떤 느낌인가 몸을 짊어진다는 건 변태한다는 건 분화한다는 건 노래를 잎에 달고 사는 얼굴들 떨림들 불길을 피해 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번지기 전에 폭우를 피해 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휩쓸기 전에 곤충의 솜털 당신의 몸짓 당신이 머뭇거리는 시공간 흩날리는 재가 도시의 불빛에 비친다 아스팔트 위로 식물이 번창한다 당신은 걸어간다 당신의 몸을 보호하는 재질들로 꽁꽁 싸맨.. 2025. 1. 16. ■ 차도하 시인의 시 ■ 입국 심사 & 쉘 위 댄스 & 빈집 & 추모 & 미래의 손. 입국 심사 천국은 외국이다. 어쨌든 모국은 아니다. 모국은 우리나라도 한국도 아니다. 천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국할때 모든 엄마를 버려야 한다. 모국을. 모국어를.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법을. 맘 - 마음 - 맘마를. 먹으면 되는 것과안 되는 것을. 밥그릇을. 태어나고 길러진 모든 습관을. 살아가며 했던 모든 말이 적힌 책을 찢어 파쇄기에 넣는다. 나풀나풀 얇은 가루가 된 종이를 뭉쳐 날개를 만든다.날개를 달면 거기 적혔던 모든 말을 잊어버린다. 날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사람들은 천사를 보았다 말하겠지만 천국의 주민들은 천사라는 단어를 모른다. 그것은 깃털의 일부가 되었을 따름이고 다른 단어와 같은 무게를 지녔다. 때.. 2025. 1. 2. ■ 유희경 시인의 시■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 당신의 자리 & 내일, 내일 & 코트 속 아버지 & 벌거벗은 두 사람의 대화.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 ··· ]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제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 2024. 12. 31. 이전 1 2 3 4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