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1 ■ 신용목 시인의 시 ■ 격발된 봄 & 敵國의 가을 & 슬픔의 뿔 & 개구리 증후군 & 아무 날의 도시.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격발된 봄 나는 격발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나의 관자놀이를때리지 않았으므로 나는 폭발하지 않았다 꽁무니에 바람 구멍을 달고 달아나는 풍선 나의 방향엔 전방이 없다 멀어지는 후방이 있을 뿐 아무 구석에 쓰러져 한때 몸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한때 화약이었던 것들을 바라본다 봄의 전방엔 방향이 없다 다가오는 허방이 있을 뿐 어느 것도 봄의 관자놀이를 때리지 않았으므로 봄이 볕의 풍선을 뒤집어쓰고 달려가고 있다 살찐 표적들이 웃고 있다 바람의 오랜 섭정에 나는 부역의 무리가 되어버렸다 도망하라 화를 피해 그러나 살갗을 벗기며 저무는 황혼의 저녁敵國의 가을 나무마다 붉은 심장이 내걸린다, 저 맹세들 어떤 역모가 해.. 2024. 12. 23. ■이문재 시인의 시■ 혼자의 넓이 & 우리의 혼자 & 물의 백서 3-얼음 & 활발한 독거들의 사회 & 끝이 시작되었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혼자의 넓이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으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 2024. 12. 21. ■ 손 미 시인의 시 ■ 몽돌 해수욕장 & 혼잣말을 하는 사람 & 이어지는 사람 & 필담 & 시럽은 어디까지 흘러가나요. 돌 돌 돌 돌 돌 돌 돌 사방으로 부서진 이토록 많은 충돌 이토록 많은 생각 몽돌 해수욕장 네가 돌이 됐다고 해서 찾아왔다 나는 아무 돌이나 붙들고 안아봤다 거기 있는 돌을 모두 밟았다 돌을 아프게 해보았다 돌들에게 소리지르고 돌 위에 글씨를 써보았다 옷을 벗고 누워보았다 돌에게 내가 전염됐다 이쪽저쪽으로 굴러보았다 돌 돌 돌 돌 돌 돌 돌 사방으로 부서진 이토록 많은 충돌 이토록 많은 생각 절대 뒤를 보면 안 돼 다시 사람이 될 거야 움켜쥐면 말하는 돌 너는 누구인가 돌을 집어 네 위에 올려놓고 손을 모은다 말이 끝나면 정말 끝이 날까봐 나는 계속 말을 했다 혼잣말을 하는 사람 우리는 공간을 메우기 위해 계속 말을 .. 2024. 12. 18. ■성윤석 시인의 시■ 멍게 & 상어 & 해삼 & 해파리 & 사람.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멍게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상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같잖은 수만 마리의 오징어상자 사이에서 쳇, 하는 입모양으로 누워 있다. 나도 쳇, 하는 표정으로 가고 싶다. 상어 마산수협공판장 1판.. 2024. 12. 16. 이전 1 2 3 4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