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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모 수상작품6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사력」, 장희수 시인. 사력 장희수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당선소감: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멀어, 그런데도 시를 쓰는 건 '기쁨' 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 2025. 1. 8.
2025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시인.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 2025. 1. 7.
202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스토피아」, 백아온 시인. 디스토피아  백아온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호리병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것들로 유리 공예를 하고 싶었다.매일매일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항상 쇼윈도 불이 꺼지고, 조명 상가들도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가면 투명한 호리병을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그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둔 호리병을.그와 있다 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이 진짜라고 믿어졌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5. 1. 7.
제24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 「때맞춰 」외 4편(김진선 시인) 때맞춰   당신은 곧 도착한다며 어디라도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플랫폼에 앉아 몇번의 지하철을 보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 중이었습니다 잘못 내린 것인지 다음 지하철을 타고 그새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편의점 까페 중고서점 옷가게  역 근처에는 기다릴 곳이 많았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시간을 때울 곳이 많은 게 난처했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오월이면 도로를 통제하고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디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있었던 사람들을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는 계속 불리고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방향으로 걷다보면  발아래 차선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것 같고   당신과의 약속에 늦을까봐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한 사람이 덥석 내 손을잡았을 때   우리는 앞을 보.. 2024.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