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력
장희수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당선소감: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멀어, 그런데도 시를 쓰는 건 '기쁨'
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지, 촌철살인, 영감과 미문. 근데 따라 해 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는 바보다 생각하고 쓰기로 합니다. 나는 제일의 바보다. 놓으면 놓아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잡으면 잡힌다는 푸른발부비새처럼. 너무 무지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양.
알던 것도 모를 거고, 울면 안 되는데 울 거고, 이태리산 스파게티 면은 두 동강 내어 삶을 겁니다. 있지도 않은 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나는 당신을 용서해요, 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일을. 쟤는 어쩜 멍청한 말 하기론 제일이네, 소리를 듣는다면 칭찬으로 여길 겁니다. 뭔들 일등이면 좋은 게 아니던가요.
물론, 암만 생각해 봐도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쓰는 건, 기쁨일 거예요. 나는 지금 푸른 발바닥을 신은 기분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겁니다. 생각과 태도가 비슷해 편한 형준. 쓸수록 이어지던 글처럼 인연이 되어준 용준, 민성, 준형, 예은, 연덕. 마지막 퇴고를 도와준 지민. 나를 짚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당선 자리를 내어준 수많은 문우들에게 감사합니다. 철딱서니 없지만 악함도 없어 자랑스러운 영찬, 태선, 선기와 윤곤. 천국을 본떠 만든 게 분명한 나의 가족.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알려주신 이학순 여사께도 두고두고 감사합니다.
장희수: 1992년 대전 출생.
'시 공모 수상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시인. (0) | 2025.01.07 |
---|---|
202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스토피아」, 백아온 시인. (0) | 2025.01.07 |
제24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 「때맞춰 」외 4편(김진선 시인) (11) | 2024.11.14 |
2024년 제26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2부 :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 외 8편 중 5편_유현성. (9) | 2024.10.25 |
2024년 제26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1부 :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 외 8편 중 4편_유현성. (7) | 202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