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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모 수상작품

2025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시인.

by 시 박스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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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안수현

 

 

 

  윗집은 오늘도 많이 더운가 보다

  아무렇게나 잘라두어 우리 집 창문에 아른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시끄럽다면서도

  마른 토마토 화분을 물자리에 밀어둔다

 

  새순 발끝을 받치고 있는 큰 줄기

  손끝이 새파랗다

  너를 이렇게밖에 밀어올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

 

  왜 자꾸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그냥 그렇게 된 건데 우린

  순진한 토마토일 뿐인데

 

  어차피 충분히 어른이 되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떨어뜨려야 할 텐데

 

  땅에서 났으면서도

  먼 하늘만 보고 자라

  땅에 묻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 없는 엄마와 엄마밖에 없는 딸

 

  토마토는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린다

  홀로 오래 있었던 토마토 과육에선

  제 심장을 디디고 선 싹이 자라곤 한다

  해묵은 양수를 받아마시며,

 

  그것은 꽤나 외로운 일이다

  그래도 토마토는 그렇게 한다

 

 

 

당선 소감: '그만 써야지' 하며 쓴 글 ···힘내어 다시 쓰겠습니다

 

  얼마 없는 목돈을 털어 덜컥 적금을 들어버린 기분입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끌어올려 주신

당선작은 제가 '시를 그만 써야지' 생각하고 쓴 글이었습니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으면서도 충분

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제가 싫었습니다. 시의 기초도 모르면서 대단한 것을 써

내고 싶은 욕심이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화각 났습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들, 다양하게 오래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어서 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

다.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솔직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중략]

 

    제 곁에 머룰러주는 친구들에게 '시가 어렵기만 하지는 않음'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기쁩

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문학은 쓴 사람의 진심이 담긴 삶의 궤적입니다. 오래 지켜보면 사랑하게

되고 믿어보고 싶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시이고 사람입니다. 어떤 모임에서도 '잘' 쓰는 축이

아니었던 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하게 하고 이 세계에 정 붙이게 한 것이 문학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줄 알았던 것을 특별한 관심으로 새기는 일, 그것이 시쓰기라고

믿습니다. 시의 순간으로 하여금 여러분 모두의 일상에 희망과 위안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소망합

니다. 저도 힘내어 정직하고 성실하게 글쓰며 살겠습니다.

 

안수현 시인_경향신문

안수현-1998년생.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 문예창작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 석사,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