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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공모 수상작품

202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디스토피아」, 백아온 시인.

by 시 박스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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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백아온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호리병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것들로 유리 공예를 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항상 쇼윈도 불이 꺼지고, 조명 상가들도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가면 투명한 호리병을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그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둔 호리병을.

그와 있다 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이 진짜라고 믿어졌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망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 의해 회복되는 우울한 로맨스 영화처럼.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요, 내가 엄마를 찾아볼게요.

어느 날은 그늘에 있기엔 너무 추웠다.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이 찼다. 당신도 춥지 않아요? 물어보려던 것을 꾹 삼키고 말았다. 나는 그 공원에서 덜덜 떨며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오랜만에 행운목에 물을 주고 왔어요. 행운목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살지요. 나는 가만 듣다가

당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나라고 아무런 사연도 없는 줄 알아요? 화가 치밀었다. 그동안 그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사연이 알고 싶었고, 그 역시 나의 사연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길 바랐다. 그늘에서 바깥으로 걸어 나갔고 그는 벤치에 그대로 앉아서 텅 빈 손을 흔들었다.

그를 정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플라스틱 피부에 덧칠된 이목구비와 단 하나의 표정을 보았다.

가까운 미래에 사랑이 있을 거라고 줄곧 생각해 왔는데. 지금껏 그와 나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안기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제조 일자가 쓰인 전구처럼 동시에 빛나고 동시에 꺼지길 바랐다.

저수지에 가서 호리병을 거꾸로 들고 바닥을 두드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깨뜨려보려고 주먹을 쥐었을 때, 어디선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호리병을 그대로 버려둔 채 바깥으로 달려갔다.

도망친 곳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가 폐기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었다. 내가 가짜였더라도 당신은 적당히 건강하게 지내요. 이따금 사람들과 핑퐁을 치기도 하고. 오래된 불안과 결핍은 나를 더 아쉽게 할 테니까요. 당신의 이마는 부드러웠어요.

나는 그가 닫아준 몇 줄의 감상과 조용한 꿈들을 기억하려고

 

 

 

https://www.seoul.co.kr/news/life/literarycontest2025/2025/01/01/2025010103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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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하려 계속 썼습니다[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시 당선 소감]

입력 2025-01-01 00:03
수정 2025-01-01 00:03

 

백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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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온 202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자


단지 사랑하려고 했을 뿐인데 함부로 사랑한 일이 되는 때가 많았다. 쓰러져 가는 주변을 너무 많이 목격하고서 나는 함부로를 멈추고 싶었다. 멈추려 할 때마다 헐거워졌고 생명의전화는 연결 중이었으며 수많은 사랑은 빈집의 나를 구하러 왔다. 또다시 함부로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었다가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훼손되지 않는 맑은 슬픔이 나를 이끌어 줬다는 이야기. 운동화 끈을 꽉 묶은 채로 걸었다. 때때로 비틀거렸지만. 내 사랑이 그곳에 닿으려면 어떤 속도와 무게가 안전한지, 속눈썹에 맺힌 얼음을 떼어 주는 게 좋은지, 흔들리는 어깨를 잠시 도닥여 줘도 괜찮은지. 사랑을 이해하려고 계속 썼다. 나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곁들을 사랑한다. 당선 전화를 받고서 소중한 이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모두가 나 대신 울어 주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사랑하는 것을 품에 가득 안은 사람처럼 뜨거워졌다. 다음 생에도 사랑을 가르쳐 줘, 엄마, 아빠. 용감해질게, 이모. 시작을 선물한 가족들. 하나뿐인 강아지, 망고. 오직 우리 두 사람, 정우. 명랑함은 너의 오랜 무기가 되어, 백아. 어려운 시절의 나무들, 주아, 재경, 선영. 봄날 여고에서, 주형, 경하. 넘치는 언어로 혜원, 선우, 송이, 채령. 아픔을 덮는 다정으로, 영은. 열아홉의 애틋한 마음가짐 정화, 채연, 재연, 찬연. 너희와 오래 웃고만 싶어, 수연, 경은, 서현. 가까이에서 만나, 유진, 영재. 반짝이는 친구들아, 수빈, 본진, 재인, 주혁, 세은, 채은, 예상, 윤경, 선경, 주빈, 하주. 존경하는 배정원, 이원, 강성은, 하재연, 윤은성, 윤성희 선생님. 그리고 저를 호명해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님께 감사합니다.

▲1998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