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 일기1 ■ 이병일 시인의 시 ■ 녹명(鹿鳴) & 마야꼽스끼의 방 & 골리앗 크레인의 도시 & 정원사 일기 & 오후 두시의 파밭 녹명(鹿鳴) 저 흰빛의 아름다움에 눈멀지 않고 입술이 터지지 않는 나는 눈밭을 무릎으로 밟고 무릎으로 넘어서는 마랄사슴이야 결코 죽지 않는 나는 발목이 닿지 않는 눈밭을 생각하는 중이야 그러나 뱃구레의 갈비뼈들이 봄기운을 못 견디고 화해질 때 추위가 데리고 가지 못한 털가죽과 누런 이빨이 갈리는 중이야 그때 땅거죽을 무심하게 뚫고 나오는 선(蘚)들이 거무튀튀한 사타구니를 몰래 들여다보는, 그런 온순한 밤이야 바닥을 친 목마름이 나를 산모롱이 쪽으로 몰아나갈 때 홀연히 드러난 풀밭은 한번쯤 와봤던 극지(劇地)였던 거야 나는 그곳에서 까마득한 발자국의 거리만큼 회복하고 싶어 무한한 초록빛에 젖은 나는 봄눈 내리는 저녁을 흘려보내듯이 봄눈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붉은.. 2024. 8.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