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시인2 ■ 박은정 시인의 시 2 ■ 작은 경이 & 아사코의 거짓말 & 링링 & 어떤 장례식 & 빙식증 작은 경이 너와 내가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빼고는 다 알았다 내가 훔친 운동화를 네가 신고 다닌다는 소문 훔친 운동화는 모르는 길도 처음 보는 가게도 거침없이 돌아다닌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더위에 숨을 헐떡이는 개 시소 위에 놓인 돌멩이 하나 가끔은 모든 것이 전람회에 걸린 그림 같다 지루한 자신을 훔쳐 갈 도둑을 기다리듯 태풍의 전야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아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점성과 농도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세계에 가닿을 손끝을 예감했던 것처럼 손목과 발목이 서로 엉킨 채로 두려움이, 또 두려움 없는 마음이* 동시에 서로를 한 몸처럼 먹고 마시며 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 2024. 10. 10. ■ 박은정 시인의 시 ■ 밤과 꿈의 뉘앙스 & 한 뼘의 경희 & 산책 & 까마귀를 훔친 아이 & 302호 어젯밤엔 술잔을 던졌고 내일 밤은 보들레르의 시를 읊으며 단골 바에서 울고 있을 예정이야 한 뼘의 경희 개의 그림자는 한낮 죽은 나무들은 이름이 없다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매주 종로에 모였다 서툴게 인사를 나누며 출렁이던 사람들 틈에서 어깨를 움츠린 경희를 만났다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한 뼘의 경희 너는 영화를 좋아했고 롱부츠를 자주 신었고 붉은 입술이 온기로 부풀던 아이 덜 아문 상처를 서로 할퀴며 그럴 때마다 눈물이 솟아나는 게 신기해 훔치던 두 손을 모른 척하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무릎을 껴안고 숨어 있는 게 안전해 어젯밤엔 술잔을 던졌고 내일 밤은 보들레르의 시를 읊으며 단골 바에서 울고 있을 예정이야 우리에겐 애인.. 2024. 4.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