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1 ■ 허수경 시인의 시■ 이국의 호텔 & 너무 일찍 온 저녁 & 내 손을 잡아줄래요? & 사진 속의 달 & 빙하기의 역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며 이곳까지 왔네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이국의 호텔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호텔 건너편 발코니에는 빨래가 노을을 흠뻑 머금고 붉은 종잇장처럼 흔들리고 르누아르를 흉내낸그림 속에는 소녀가 발레복을 입고 백합처럼 죽어가는데 호텔 앞에는 병이 들고도 꽃을 피우는 장미가 서있으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장미에 든 병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앓게 하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당신을 미래 시제로잠재우며 이곳.. 2024. 5.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