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처럼1 ■ 나희덕 시인의 시 ■ 그날 이후, 거대한 빵, 유령들처럼, 토리노의 말, 가능주의자 문의 공포는열 수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잠글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날 이후 출입문의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손잡이가 사라졌으니 문은 그대로 벽이 된 것인가 구멍으로 스윽 밀고 들어온 주먹 하나가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챘다 어디론가 끌려갔다 돌아와 보니 문이 활짝 열려 있다 타인의 시선들로 가득찬 방, 책상과 의자와 침대가 수치심에 떨고 있다 이제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방 문의 공포는 열 수 없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잠글 수 없다는 데 있다 시선의 블랙홀 속에서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이 서성거리는 동안 또 어떤 손이 저 구멍으로 밀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2024. 4.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