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등단 시인3 ■ 황인찬 시인의 시 ■ 비역사 & 사랑을 위한 되풀이 & 아카이브 & 요가학원 &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밤의 수영장에 혼자 있었다 비역사 밤의 수영장에 혼자 있었다 귀에 닿는 물소리 탓에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는 실내에서 나오지 않는다 너는 어디에서도 나온 적 없다 밤의 수영장을 혼자 걸었다 몸에 닿는 밤공기가 차가워 네가 만져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는 실내에서 나오지 않는다 밤의 수영장에 혼자 있었다 보름달이 너무 크고 밝아 네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너는 어디에서도 나온 적 없다 내 역할은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의외의 목격자 같은 것이고 그 이후로 나는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다 나는 그저 마을 어귀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람들을 향해욕을 하거.. 2024. 7. 1. ■ 김승일 시인의 시 ■ 항상 조금 추운 극장 & 너무 오래 있었던 세계 & 2차원의 악마 & 나는 모스크바에서 바뀌었다 신이시여 잘했지요 고양이얘기로 시작하긴 했지만 고양이 얘기가 아닌 얘기를했잖아요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이 전부 영화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좀비로요 극장은 항상 조금 추워요 항상 조금 추운 극장 고양이와 함께 산 다음부터 고양이 얘기 아니면할 얘기가 없게 됐어요 앞으로도 남은 평생 고양이 얘기만 해도 되냐고 신에게 물었어요 그러지 말라네요 내가 고양이가 아닌데 당신은 어떻게 나를 좋아했나요 아직도 좋아하나요 극장에서 좀비 영화를 봤는데 좀비로 분장한 당신을 발견했어요 확실히 당신이었어요 표를 새로 끊고 극장에 앉아서 당신이 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어요 잠깐만 나오더군요 당신이 나를 좋아했을 때 당신은 만나는 사람이 있었죠 곧 헤어지겠다고 하고서는 헤어지는 것을 힘들어했죠 당신이 빨리 헤어지길 바랐어요 세.. 2024. 6. 24. ■ 강순 시인의 시 ■ 크로노그래프 & 오월의 레퀴엠 & 예컨대, 회전초 & 애월 녹턴 우리는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었다 당겼다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지구와 달처럼 우리 인력과 원심력을 밤에 슬피 쓰고 있다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밤은 그러니까 동사다 깨다 일어나다 가다 보다 앉다 서다 눕다 울다 들이 뭉치고 엉키는 자리에 꿈틀대다 치대다 우물거리다 씹다 내뱉다 걷다 삼키다 들이 해변 위 파도처럼 넘나든다 운명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시간 장치 속에 들어가 있으면 밤은 죽은 듯 활개 치는 동사다 초침보다 더 빨리 어제 한 말을 후회하고 오늘 못다 한 말을 반성할 때 동사들이 쓸려오고 쓸려간다 가만히 있어도 밤이 우리를 움직인다 동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합한 말 숨을 내쉬면 네가 썰물처럼 쓸려가고 숨을 들이.. 2024. 6.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