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41 ■ 이기리 시인의 시 ■ 흙비 & 극세사 & 수양버들 & 나는 팔과 몸 사이에 또 다른 팔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에나는 잠깐 놀라기도 했다내 남은 팔은 그리할 수 없는데사이라는 것은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구나 흙비 이를테면 한해살이풀이란 말이 여름 내내 걸음을 기우는 것 왜 이 길로 가느냐고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돌아가지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데 슈퍼를 지나 공원을 끼는 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무딘길을 걷느냐고 당신은 말없이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유를 대답할 수 없다는 듯이 푹푹 찌는 무더위에 어느덧 숨은 가쁘고 이마엔 땀이송글송글 맺혔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이다 당신은 왜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지? 나는 세탁소에 맡긴 옷들을 찾으러 나왔을 뿐인데 이봐요당신, 나는 처음부터.. 2024. 6. 20. ■ 오은 시인의 시 ■ 그곳 & 그것들 & 그 & 우리 & 너 "아빠, 나 왔어!" 봉안당에 들어설 때면 최대한명랑하게 인사한다. 그곳 "아빠, 나 왔어!" 봉안당에 들어설 때면 최대한 명랑하게 인사한다. 그날 밤 꿈에 아빠가 나왔다. "은아, 오늘은아빠가 왔다." 최대한이 터질 때 비어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가마득한 그날을 향해 전속력으로 범람하는 명랑. 도망가야 할 때조차 토껴야 만족하는 사람 기막힐 때조차 기똥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속을 터놓는 대신 속俗으로 기어들어 가는 사람 그것들 된소리는 소리가 이미 됐다는 소리야 무슨 소리야 완성이 됐다고? 된 사람처럼 모질고 우악스럽다고 다 된 밥에 재 뿌리겠다고 작정한 소리라고 꼴통을 봐 쓰레기를 봐 빨갱이를 봐 화낼 준비를 하는 사람 이미 화풀이를 하고 있는 사람 편견.. 2024. 6. 19. ■ 이경림 시인의 시 ■ 눈이 와서 & 토마토 혹은 지금 & 개미 & 혈압약을 먹고 아침을 먹을까/아침을 먹고 혈압약을 먹을까& 영옥이라는 이름으로 유리(琉璃) 속을 번지다 유리(遊離)로 가라앉는 그림자 눈이 와서 눈이 와서 문득 하늘이 있다 막 퍼붓는 하늘을 쓰고 눈 쪽으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잔가지에 쌓인 눈 위태롭고 안온해서 아름다운 눈을 어루며 미친 척 부는 바람이 있다 눈이 와서 문득 유리 안에 소파가 생겨나고 후우욱 긴 숨을 내쉬는 네가 생겨난다 유리(琉璃) 속을 번지다 유리(遊離)로 가라앉는 그림자 앞이나 뒤나 안이나 밖이나 온통 눈이 와서 오솔길은 뱀처럼 숲의 가슴을 파고들고 적송은 풍파 소리로 지나간다 누구세요? 아 네, 아래층입니다 옆집 토마토 열리는 중 무슨 일이죠? 시침 뚝 떼는 중 아저씨 제발우리 아빠 좀 말려주세요 어린 토마토 겁에 질린 중 아, 토마토 혹은 지금 .. 2024. 6. 15. ■ 강순 시인의 시 ■ 크로노그래프 & 오월의 레퀴엠 & 예컨대, 회전초 & 애월 녹턴 우리는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었다 당겼다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지구와 달처럼 우리 인력과 원심력을 밤에 슬피 쓰고 있다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밤은 그러니까 동사다 깨다 일어나다 가다 보다 앉다 서다 눕다 울다 들이 뭉치고 엉키는 자리에 꿈틀대다 치대다 우물거리다 씹다 내뱉다 걷다 삼키다 들이 해변 위 파도처럼 넘나든다 운명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시간 장치 속에 들어가 있으면 밤은 죽은 듯 활개 치는 동사다 초침보다 더 빨리 어제 한 말을 후회하고 오늘 못다 한 말을 반성할 때 동사들이 쓸려오고 쓸려간다 가만히 있어도 밤이 우리를 움직인다 동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를 합한 말 숨을 내쉬면 네가 썰물처럼 쓸려가고 숨을 들이.. 2024. 6. 13.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