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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24년 6월 호에서 눈에 띈 시: 「지오이드」(임솔아), 「낙랑파라」(조창규), 「덩굴장미」(최필립), 「붕어빵 장수」외 2편(함명춘). 지오이드 임솔아     배숙을 만들고 있다.  껍질을 깨끗이 씻고  까끌까끌한 배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따라 하는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한 말을 따라하는 것이다. 따라 한다는 걸 쉽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 공들여 숨겨가며 따라 하는 것이다.   오늘 친구와  절에 가서 백팔배를 했다. 내 옆에 서서 절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나란히 계속 절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백팔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바닥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  풀쩍 뛰어넘다가  그것이 죽은 참새라는 걸 알아챘다.   친구는 멈춰 섰다. 보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보았다고 나는 답했다.  친구는 돌덩이 하.. 2024. 6. 12.
『시와반시』 2024년 여름 Vol. 128호에서 눈에 띈 시: 「천사는 그 나라로 가지 않는다」(고형렬), 「철문을 열면 바위, 커피, 모닝캄」(박래은), 「어제」(김미라) 천사는 그 나라로 가지 않는다 고형렬     무엇들이 이 골목 끝을 막고 있는가   나는 산천과 대처를 안 가리고 수도 없이 태어나 말을 배우고 소리를 보고 나를 보내주었다  풀의 나라에 햇살이 들이치던 아침이슬의 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천사들의 노크를 거절한다   "오지 마. 가."   천사가 와서 우리 가족이 될 수 없다, 개구쟁이들이 저 교동의 교실을 시끄럽게 할 수 없다  애채빛 눈으로 첫눈을 손에 받고 "엄마, 눈 와!" 소리치고 일기를 알리는 천사는 없다   자궁에 대한 공포는,  난정자卵精子의 기적 같은 빛으로 그녀 꿈속에 착상해서 천사의 타자로 나갈 삶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우울한 침묵의 영혼들, 우리가 뛰어온 사회는 자궁을 닮고 스스로 자기 미로로 진화해갈 뿐이다  천사가 돌아올 .. 2024. 6. 12.
■ 류진 시인의 시 ■ 우르비캉드의 광기 & 6월은 호국의 달 & 비스마르크 추격전 & 마죽 무서워 &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우르비캉드의 광기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착지했는데 목성일 때  당겼는데 빗줄기일 때   나무떼가 철컥철컥 갑옷일 때   마음인데 차가운 햄일 때  물병 속의 물결인데 빠졌을 때   청군이 이기기로 했습니다   사냥꾼이 구름을 쏠 때  아이들이 후드득 떨어질 때   앞니에 노을이 안 지워질 때  눈물인데 돗자리가 반짝일 때   죽었는데 김밥일 때  준비하시고 개미는 응원입니다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눈알을 확 파버렸어야지 6월은 호국의 달     잘됐네  나라를 지켜서   나라 지켜서 잘됐네   잘됐어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2024. 6. 11.
■ 박형준 시인의 시 ■ 달나라의 돌 &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 불광천 & 교각 & 백년 도마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 텐데 달나라의 돌     아라비아에 달나라의 돌이 있다  그 돌 속에 하얀 점이 있어  달이 커지면 점이 커지고  달이 줄어들면 점이 줄어든다*   사물에게도 잠자는 말이 있다  하얀 점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  그 말을 건드리는 마술이 어디에  분명히 있을 텐데  사물마다 숨어 있는 달을  꺼낼 수 있을 텐데   당신과 늪가에 있는 샘을 보러 간 날  샘물 속에서 울려나오는 깊은 울림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雪]이  어느새 꽃이 되어 떨어져  샘의 물방울에 썩어간다  그때 내게 사랑이 왔다   마음속에 있는 샘의 돌  그 돌 속 하얀 점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동안  나는 늪가에서 초승달이.. 2024.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