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시인들

■ 류진 시인의 시 ■ 우르비캉드의 광기 & 6월은 호국의 달 & 비스마르크 추격전 & 마죽 무서워 &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by 시 박스 2024. 6. 11.
728x90

<  >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우르비캉드의 광기

 

 

 

  넘어졌는데 바닥이 따뜻할 때

  흘렸는데 코피가 차가울 때

  운동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착지했는데 목성일 때

  당겼는데 빗줄기일 때

 

  나무떼가 철컥철컥 갑옷일 때

 

  마음인데 차가운 햄일 때

  물병 속의 물결인데 빠졌을 때

 

  청군이 이기기로 했습니다

 

  사냥꾼이 구름을 쏠 때

  아이들이 후드득 떨어질 때

 

  앞니에 노을이 안 지워질 때

  눈물인데 돗자리가 반짝일 때

 

  죽었는데 김밥일 때

  준비하시고 개미는 응원입니다

  <  >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눈알을 확 파버렸어야지

 

6월은 호국의 달

 

 

 

  잘됐네

  나라를 지켜서

 

  나라 지켜서 잘됐네

 

  잘됐어

 

  왜 당하고만 있어

  너 바보야?

  눈알을 확 파버렸어야지

 

  누나를 어

  누나가

 

  업고 달려 내려갔어요 황금 벌레를

  나는 속눈썹 끝으로 호두의 흔들림

  데려갔어요 소중히 감싸 쥔 눈알과

  구름의 느린 날과

  눈앞에 대파밭이 느리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없었습니까? 있었을까요?

  여름 대파밭

 

  너 바보야?

  나라는 원해요 나라는 희망을 실컷 펼쳤어요 이제는 안 되겠어요

  이제는 피망만 되겠어요 도저히, 누나

 

  도저히, 그것은

  어느 나라야?

 

  달려,

  손안의 호두 소리

 

  달려, 

  어둠은 앵두 소리

  죽음은 자두 소리

 

  달려,

  두번이나 누 앞에서 미끄러진 이리는

  이리 결정했습니다 이번 회엔 반드시 굶주리고

 

  깎아내는 거야 눈썹 끝에 맺는 잠의 귀퉁이

  그것을 지켜서, 호두 껍데기를 잔뜩 쌓아서

  나라는

 

  그것은 잔뜩 잘됐을 것이다

 

  손에서 눈알이 녹아내리는 순간을

  나라는 당하고만 있을 것이다,라는

  5월은 가정의 달

  <  >

 

 

 슬프고 힘든 것들

  난간 위를 걸으며 철로처럼 멀어지는 것들

  나 대변한 적 없어요 대신 말해버리면

  네가 되지 못하잖아요 슬프고 힘들고 구렁에 고여 어두워지는 네가

 

비스마르크 추격전

 

 

 

  하필 오월의 공기가 허물어져

  흙에 깃들고 우레가 물러나고 빗물마저

  냉담한 아이처럼 눈앞에 떠올라 이곳의 사태를

  도무지 따라갈 수 없으니

 

  계단이 끝나지 않아 정말이지 엉덩이

  차갑군 비스마르크여, 식은 용암처럼 뒤틀린 빵이여 그거

아는가 라일락의 삼분의 일은 언두부로

  싸늘한 향을 내고 삼분의 일은 기다림의 끝에서 분화하고

  삼분의 일은 흩어지더라도 결코 붉지 않겠다고

 

  폭풍의 발가락을 누가 세는가 결함투성이 빨래기계에

  누가 코트를 맡기는가 매일매일 어둠 속에서 돌아가는 코트를

 

  어둠 속에 걸려 내려다보는 옷깃을

  누가 접어 위탁하는가 무능한 조합장이 조합을 망칩니다 위력적인

  슬픔만이 감량에 성공합니다 우리는 강변을 달릴 것입니다!

 

  손에 쥔 팻말은 공평한 것이다 괴물이 쫓아와요 노란 나비가

  구멍을 긁고 있어요 당근을 수프에 빠뜨리려 해요 그래그래 슬프고 힘든 나머지

 

  슬프고 힘든 것들

  난간 위를 걸으며 철로처럼 멀어지는 것들

  나 대변한 적 없어요 대신 말해버리면

  네가 되지 못하잖아요 슬프고 힘들고 구렁에 고여 어두워지는 네가

 

  모자라다고 했습니다

  조달청에선 빠른 시일 내에 조달한다고 했습니다 조달청에선

  대신 인도할 벼락을 보낼 테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조달청에선

  거대한 물을 내린다고 했습니다만 이미 붉게 지친 라일락은 어떻게?

 

  오늘의 대기를 무너뜨리면 어제의, 어제의 대기를 부수면 그때의 느낌이

  허파에서 불타니, 수업이 끝나지 않아 엉덩이

  차갑군 보아라, 진군하는 책상과, 머리에 왕관을 끼얹은 

  학생들을 ······

 

  학생은 인용하길 원합니다 아픔을 외워요

  반성할 시간이 없습니다 장칼로 아빠의 목젖을 찌르고

  독으로 넘치는 포도주를 들이켜는 시대가 아닙니다

 

  엄마를 찢을 시간이 없어요

  한달 전엔 먼지가 없었겠습니까 십년 전에는,

  백년 전에는 먼지가 사람을

 

  만들었겠습니까 사랑 때문에,

  밤바람 맞으며 새우튀김을 곰곰이 씹었습니다 사냥 때문에,

  몇 번이고 태양을 모아 깨물었습니다 밤바람 속에서

 

  터져 흘렀습니다 잇몸의 

  피로 넘치는 장마철의 강과 같이

 

  따라 달립니다

  놓치지 않습니다 기필코 잡아낼 것입니다

  씨를 말릴 것입니다 함대원은 들으라 전 포문 개방 일제히-----  발사!

  나는 나의 아픔으로 갑판에 서 있습니다 대신 아파버리면

  네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교훈을 쏘아드리지요? 교훈에

  피격당했다면 온전히 떠 있겠습니까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쿨쩍이고 적당히 비틀거리다 밀려왔겠죠 구경꾼이 떼 지어 상륙한

  뭉툭한 해변으로

 

  곤경이 올 것입니다 수프를 받아낸 식탁보처럼

  사랑의 시대가 오고

  장대높이뛰기를 잘할 것입니다 수프가 뛰어내린 식탁보처럼

 

  입맛이 개선되고 혈압이 안정되고

  잘한다 잘한다 톱질 소리 높아지더라도 창밖에선

  길게 파랗게 엄마들이 드리우겠죠?

  나는 그게 억울해

  <  >

 

 

출렁이고 잇워요 멈출 수 업워요

  느낌이 조와요

  헤헤

  마죽

 

마죽 무서워

 

 

 

  참마가 쟁반에서 가장 맑을 것이다

  향년 이십구세

 

  스티븐은 느꼈다, 슬픔이 덮개를 밀치고

  올아오는 것을, 왜냐하면 왜냐하면 배 속이

  죽으로 

  비좁아서

 

  문지방을 막 밟은 비를 돌려보내고

  괜히 미안해져 물었지

 

  ······

 

  저어는 질문이 업슴미다

  묻고 십지 안워요

 

  검은 깃털을 보내면 흰 깃털이 돌아오는 캐치볼

  윤성환 감독의 력작 「 폼페이」가 오는 26일

  김일성예술극장 리영광 홀에서 열린다

 

  '검은 수염' 파파노코비치, '흰 수염' 되어 칠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재 재

 

  스티븐은 그것이 가루가루 바닥으로 내려가는 걸 보았다

  부지깽이로 들쑤시면 가로수가 벌겋게 일듯이

 

  스티븐은 울음을 꾹 누르고 창고에 들어가 매일 한꺼풀씩 벗기고

  항아리 속을 휘저으며 노래한 것이다

  참마가 결심하고 참마가 남발하고

 

   나는 몸이 하나 있는데 치커리와 기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심었습니다 나를

  전부 살아냈습니다, 너무나 많이 오늘을

  길러버렸습니다 ······

 

  향년 이십구세

 

  왜 사람은 봄마다 떨어지는 거야? 왜 봄에는 잔디 줄기가 갈피갈피

  갈라져? 물으면 나아질까

  수학채근 웨

  자꾸 질문하는 습과늘 드리라 할가

  그으런데 웨 하늘에선 저러케 어두운

  코가 태어나는 거실까

  굴뚝에서 기일게 날아와

 

  쟁반은 해가 반짝이며 저무는 곳인데 ······

  헤헤

 

  스티븐은 스티븐은 참마 가루와 섞여

  차차 늪처럼 풍부해졌다 따라서 스티븐은 스티븐은 입술 앞에서

  검게 닫히었던 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렁이고 잇워요 멈출 수 업워요

  느낌이 조와요

  헤헤

  마죽

 

 

시, 「마죽 무서워」 삽화

<  >

 

 

  러시아에선 타조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타조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살아갑니다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하여간 잠시라도 틈을 주면

  금세 헛소리로 비좁게 한다

  타조 폭설 왈츠 오랜 내 망령이여

 

  러시아에선 타조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타조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살아갑니다

 

  러시아에선 블라디보스토크가 당신으로 살아갑니다 러시아에선

  블라디보스토크와 내가 갑니다

  러시아에선 구타가 당신에게 갑니다 눈물은

 

  눈물은 당신의 강설로 대체되었습니다

 

  눈물? 여름날 푸른 살구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주인이 울로 나무를 칭칭 감았고, 나는 다가가지 않기로 맹세했지요 맹세했는데

 

  눈물?

 

  들어봐요 당신

  이놈의 신발 끈은 맨날 풀려 막대 앞에서

  주춤합니다 때문에 망가진 신

  벗었으니 잘됐지 나는 림보를 잘하고 때문에 해 한계는 낮아지고

  조금만 더 목에 막대가 닿았어도

 

  외쳤을 것이다 알아요! 태양!

  코로나! 또 또 그것도 알아요

  태양의 검은 점, 알아요 심장 속의 우박

  이놈의 바람은 맨날 풀려 꽃으로 망가진 후박

  나무 끝에서

 

  진심! 굶주릴 때면 흩날리던 그것이었습니다

 

  몰라요, 헤매는 숲을 꿩은 주워 물고

  그 마음 구찌한테 물리곤 투덜거렸지 "하 참, 왜 나한테만!"

  나한테만 침 흘리는 게

 

  죽음인 줄 알았지 러시아에선

  너의 시야에선

  폭설같은 타조의 깃 속에선

 

  주인인 줄 알았지 목줄 매달린 저 사람

  구찌도 착각을 합니다 구찌도 멍멍

  삶을 잘못 고릅니다 꿩!

  꿩꿩 씹고도 잘도 헤매지? 분필 하나로 칠판 앞에 선 그 애도

 

  삼각형을 그립니다

  도형 안에서 제일 먼저 고독한 수

  삼이지요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야 속으로 미끄러진 비누처럼, 멍멍히

 

  너는 수학을 애도합니까? 서서 마냥 울기엔 회초리가

  너무 밝습니다 넘어진 태양

 

  무너진 나의 양 러시아에선 왈츠가 나를 무대에 돌립니다 삼박자로

  눈발을 앉힙니다 때문에 내 음악은 비좁다 러시아에선

 

  영혼 같은 건 블라디보스토크의 타조보다 널렸다 아무도

 

  안 살려고 하네요 팔리지 않네요

  그중 한 삶을 내가 삽니다 내가

  살 겁니다 내게 감사하십시오

  <  > 

 

 

류 진 시인: 2016년 《21세기 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앙앙앙앙』이 있다. 2021년 문지문학상[시]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인 『시보다 2021』에 이름을 올렸다.
『시보다』 시리즈는, 지난해 발표된 시들을 면밀히 검토해 데뷔 10년 이하 시인의 작품을 가려 뽑는다. 시인별 후보작(기발표작) 4편 포함, 신작 시 2편과 산문을 수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