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눈을 찌르는, 빛나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
-박상순
이제니의 시는 현실 대상의 표면에서 의식의 표면으로 나아간다. 이런 표면성 전환은 그녀의 시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대로 바라보지 않는 오늘의 눈”이나 “마지막으로 남은 명사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써 내려가고 있다” 등의 표현을 통해 지각과 언어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다소 시간을 지체시키는 반복적 어휘들이 감정적인 노선으로 빠져들게 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것들의 반복 구조를 통해 한편으로는 일정한 질서를 회복하며 절망적인 도착 지점에 이른다. 그 지점은 바로 감정적인 분위기, 무드 Mood의 절망이거나 절연 지점이다.
산문 형식의 글쓰기, 냉정하게 말하자면 잡문雜文의 형식을 취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제니의 시는 잡문으로서의 글쓰기를 벗어나 경험적 지각에서 의식의 눈을 가진 시적 언어로 나아간다.
문학예술은 이미 ‘내용과 형식’이라는 단순 결합 구조와는 오래전에 결별했다. 그런 까닭에 문자의 배열이나 운용 형식만을 가지고 시의 본질을 따질 수는 없지만, 대개의 잡문적인 글쓰기는 배회하는 경험 지각의 초점 없는 흔적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것을 새로운 형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결과는 과거의 ‘내용+형식’ 개념으로 후퇴하여 어떤 내용이 숨어 있는 듯 가장한 야바위꾼의 눈빛, 수구적 의식, 관습 의미의 파기가 아닌 그저 정체를 끊임없이 미루는 채무불이행의 야반도주형 지시 언어, 결국 잡문이 될 확률이 높다.
현상학적 지각의 최소 지점에도 이르지 못한 잡문의 문장이 요란한 오늘의 현실에서, 이제니의 시는 그 갈래를 달리하기 때문에 빛난다. 현실의 잡동사니를 긁어 와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태도나, 형식의 뒤편에 서서 어떤 의미로서의 내용을 가장하는 잡문의 도구적 언어나 일반 커뮤니케이션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니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과 같은 이미지로부터의 ‘찌르기’. 찔린 자국, 작은 구멍, 작게 베인 것들과 거느리며, 나만을 찌르는 미미한 것들과 함께 결국 일반적인 내용과 결별한다. 그런 결별 지점이 바로 시적 언어의 생성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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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언어가 그녀의 시를 만든다. 「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에서는 “작고 둥근 열매의 눈 코 입을 사물의 표면으로 가져”오고, “열어보지 못했던 마음을 두드리”면서 그녀는 매일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존재처럼 오늘을 건넌다.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기」에서는 “도식화되지 않은 사랑의 몸짓을 읽어내”며 빛나는 얼굴의 ‘에피파니 epiphany’가 그윽하면서도 가지런하게 드러나 마침내 이제니의 시를 빛나는 얼굴로 만나게 한다. 시적 언어가 만들어내는 현대적인 물질성이나 표면성과 더불어 아취雅趣 또한 품고 있다.
산문 투의 것이든, 운문 투의 것이든 잡문의 글쓰기로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가장하여 시적 언어를 희미하게 만드는 일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제니의 시는 문학예술만의 미적 성격인 風格풍격을 잃지 않는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발견되는 춤으로부터」는 앞서 언급한 특징들이 집약적으로 빼어나게 드러난 매력적인 작품이다. 사물의 표면을 물질적으로 드러내면서도 현상학적 지각의 장 field을 뒤흔드는 시선, 즉 “발생하는 눈” “바라보는 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눈, 알아차리면서 흘러가는 눈, 흘러가면서 머무르는 눈, 머무르면서 지워지는 눈, 지워지면서 다시 되새기는 눈”을 통해 경험의 시선에서 시적인 언어의 시선으로 이동한다. ‘기이한 착각, 비어 있음으로 가득히 비어 있는 것’을 통한 차원의 변화,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 위에서 흩날리는 입자와 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춤, 눈, 땅’으로 나아가는, 물러서지 않는 언어의 동력이 눈부시다.
언제든 시적 언어는 현실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 이제니의 언어 또한 물러서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고 속으로 들어간다. “멈추어 있는 채로 덜어가는 그 모든 사물의 표정과 목소리”를 “자신의 얼굴인 듯 읽어 내려간다.”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간다. 그리하여 “걸어도 가닿지 못하는” 지점까지 드러낸다.
관념적인 ‘영혼의 친척’과 제휴하면서 얼핏 보면 타협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 존재의 소멸 때문에 벌어진 사태인 까닭에 타협이나 의지할 그 무엇도 없다. “둘인 동시에 하나인 채로, 하나인 동시에 둘인 채로” 작별 인사를 준비하는 절연의 순간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먼 길을 오래오래 홀로 함께 걸어가”는 마음속의 목소리가 세계를 관통하며 의식의 눈을 찌른다. 이렇게 의식의 눈을 찌르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를 통해 이제니의 시는 ‘시적’으로 ‘시답게’ 빛난다. 하지만 빽빽하게 긴 시여서 읽기는 불편하다. 눈 부릅뜨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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