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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에서: 튈르리 공원 & 베르사유 궁전 & 여인들의 문예 취미 & 마음속에서 지는 태양

by 시 박스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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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공원

 

   오늘 아침 튈르리 공원의 태양은 잠이 덜 깬 듯 돌계단

위를 한 칸씩 미끄러지며 내려가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태양의 그림자는 선잠에 빠진 금발 청년을 금방이라도

깨울 것만 같았다. 오래된 궁전을 배경으로 어린 새싹들이

푸르러져 간다. 무엇엔가 홀린 바람의 숨결은 과거의 냄새에

라일락의 신선한 향기를 섞는다. 미친 여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처럼 흔히 우리를 겁주던 석상들은 이곳 소사나무 아치

아래에 꿈을 꾸듯 서 있다. 녹음 속에서 흰 빛으로 눈부신

그 모습이 마치 현자들 같구나. 파란 하늘이 내려앉은

수반은 흡사 사람의 시선인 양 빛난다.

   강가의 테라스 너머로 센강 저편 케 도르세*의 

고색창연한 동네에서 과거로 돌아간 듯 근위병 하나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제라늄 화분들 위로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침범해 온다. 태양 아래 타오르는 지치꽃은

자신의 향기를 불태운다. 루브르 궁전 앞에 있는

접시꽃들은 경쾌한 돛대처럼, 기품 있는 기둥처럼, 낯을

붉히는 아가씨처럼 한껏 목을 빼고 있다. 무지개 빛깔로

퍼져 가는 분수 물줄기는 사랑에 목 타듯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테라스의 끝에는 제자리에서 질주하며, 흥겹게

나팔을 불어 대는 기사(騎士)의 석상이 봄날의 이 모든

열정을 구현하고 있구나.

   하지만 하늘이 어두워지니,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다. 더 이상 창공의 빛으로 빛나지 않는 수반들은

시선 없는 텅 빈 두 눈이나 눈물로 가득 찬 단지 같아 보일

뿐, 가벼운 바람에도 후려친 듯 흔들리는 분수의 물줄기.

하늘을 향해 이제는 웃음거리가 된 찬가를 서둘로 쏘아

올리는 모습이 엉뚱하기만 하다. 더는 의미 없어진 라일락

대리석으로 된 두 발로 맹렬히 박차를 가하며, 자기가 탄

말의 움직이지 않는 질주를 재촉하는 기사가 시커먼 하늘

위로 아무런 의식 없이 계속 나팔을 불어 대누나.

 

* '오르세 강둑길'이라는 뜻으로, 센 강변 좌안에 있다. 이곳에 위치한 프랑스

외무성의 별칭으로 사용된다.

 

 

 

베르사유 궁전

 

 

                                                            "대단한 수다쟁이라도 그곳에 다가가기만 해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운하에서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행복하다."

                                                              - 드라모트애그롱 씨(氏)에게 보내는 발자크의 편지*

 

 

   제시간을 다한 가을은 이따금 태양으로 다시

덥혀지기까지 해서 마지막 남은 빛깔마저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오후 내내, 아니 아침나절에마저 석양의 찬란한

환상을 보여 주던 나뭇잎들의 마지막 열정은 불타올라

이제 꺼져 버렸다. 달리아, 홍황초, 그리고 노랑, 보라,

하양, 분홍색 국화들만 가을의 어둡고 황량한 지표

위에 아직도 빛나고 있다. 저녁 6시쯤, 어두운 하늘 아래

온통 잿빛으로 헐벗은 튈르리 공원을 가로질러 갈 때면,

어스름한 나뭇가지들마다 강렬하게 스며 있는 절망이

느껴지고, 이때 갑작스레 눈에 띈 이 가을꽃 덤불은 어둠

속에서 풍요롭게 빛을 발하며, 타 버린 재 같은 계절 광경에

익숙해진 우리 눈에 격렬한 관능적 쾌감을 안겨 준다.

가을의 아침 시간은 훨씬 달콤하다. 아직 태양이 떠 있을

때 물가 테라스를 벗어나면, 커다란 석조 층계를 한 칸씩

내려가는 내 그림자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여기에서 그

많은 문인들**일 한 것처럼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다.

베르사유여, 이제는 녹슬어 버린 감미로운 이름이며, 숲과

드넓은 호수와 대리석들로 이루어진 위대한 왕의 무덤이며,

진정 귀족적이고 풍속을 문란케 하는 장소여. 당시 기쁨을

널리 퍼지게 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과 땀이

악용되었다는 오늘날의 우울한 회한마저 우리네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구나.

   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대의 이름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여러 차례 그대의 분홍색 대리석

수반을 술잔 삼아 술찌끼까지 마셔 대며 가을날의 취기

오르는 씁쓸함 달콤함을 떠벌이기도 했다. 시든 잎과 썩은

잎으로 뒤섞인 대지는 멀리서는 노랑과 보라의 빛바랜

모자이크처럼 보였다. 촌락 근처를 지나가며 바람을 막으려

저고리 깃을 세울 때, 비둘기들이 구구 우는 소리가 내게

들렸다. 도처에 회양목 냄새가 부활절 직전의 성지(聖枝)

주일인 듯 사람을 취하게 했다. 가을날 황폐해진 이런 정원

안에서 어찌 내가 봄날의 하찮은 꽃다발 하나라도 꺾을 수

있겠는가. 바람은 떨고 있는 장미의 꽃잎들을 수면 위로

내던지고 있었다.

  낙엽이 쌓이는 트리아농 별궁에는 하얀 제라늄이

심긴 다리의 가벼운 이치만 바람 때문에 살짝 고개 숙인

꽃들을 얼어붙은 물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노르망디의

울퉁불퉁한 길에서 바닷바람에 실린 소금기를 들이마시며,

꽃핀 만병초 가지들 사이로 반짝이고 있던 바다를 보고

나서부터, 나는 물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식물에겍 큰

은총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낙엽 덮인 둑길에서 차가운

수면 위로 이렇게 우아하고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인 처녀같이

하얀 제라늄. 그 나긋낙긋함 안에 서려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순결함이여. 오 아직은 푸른빛이 남아 있는 숲의 은빛

노년이여, 오 눈물짓는 나뭇가지들, 우울한 숲에게 바친 

항아리인 양 경건하게 여기저기 늘어놓은 연못들이여!

 

 

* 게 드 발자크(1597~1654) 17세기 작가겸 자유사상가로서. 방대한 그의 서간집에

나타난 품격 있는 산문으로 유명했다.

 

** (프루스트의 원주) 특히 모리스 바레스, 앙리 드 레니에, 로베르 드 몽테스키우-페장작 제씨(諸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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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문예 취미

 

 

   오늘날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이 내일에는 당연한 것이

된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기까지 한

고정관념도 과거 한때 첨단 유행을 주도하며 신선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여인들은 모든 고정관념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면서도, 나름의 고정관념에 의지한다. 이를

깨려고 그녀들은 섬세하나 약간 특이한 꽃으로 치장을

하지만, 이로 인해 그 고정관념은 더욱 무거워진다. 여자들은

어떠한 것에도 배경이 없다고 믿기에, 모든 것들을 동일한

평면 위에 놓는다. 그녀들은 인생 자체를 아름다운 오후

한나절처럼 생각하고, 책 한 권을 오렌지인 양 맛본다.

그녀들은 디자이너의 '예술', 파리 생활의 '철학'을 논한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평하며, 매사에 분류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창피해하리라. 과거 어떤

여인이 처신을 잘했다면, 이것은 도덕적 사고가 그녀의

본능적인 천성을 잘 다스렸기 때문. 반면 오늘날 여인이

행동을 잘한다면, 이제는 그녀의 본성이 그녀의 예정된

부도덕성을 제압했기 때문이다.(알레비아 메이악*의 재치

넘치는 코미디를 보라.)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관계가 극단적으로

느슨해짐으로써, 부도덕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난 여인들은

자연스레 선량한 본능으로 흘러들게 된다. 그녀들은

관능만을 추구하는데, 관능이란 애써 구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법. 여성들의 회의적인 문예 취미는 유행이 지난

장신구처럼 책 속에서도 눈에 거슬린다. 그녀들은 정신적

유행의 예언자이기는커녕, 차라리 뒷북치는 앵무새일 뿐.

그러나 여전히 문예 취미는 그녀들의 마음에 들 뿐만 아니라

그녀들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녀들의 판단을 왜곡하고

행동을 약화시키는 문예 취미는 여인들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러워 보이겠지만 분명 퇴색해 버린 재능이다. 세련된

문명 속에서 우리들은 여인들로 인해 손쉽게 감미로운

열락에 이를 수 있다. 끊임없이 정신적 시테르**를 향한 배에

오르는 그녀들의 태도에는 모정의 관능이 스며든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축제는 여인들의 둔한 감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들의 상상력, 심정, 정신, 시각, 후각, 청각을 위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시대의 가장 정확한 초상화가는

여인들을 긴장되고 경직되게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의 삶은 풀어헤친 머릿결처럼 달콤한 내음을 풍기고

있으니까.

 

* 뤼도빅 알레비(Ludovic Halevy, 1834~1908)와 앙리 메이악(Henri Meilhac:1831~1897) 으로

공동으로 작업한 각본 작가들이다.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들과 비제의 가극 「카르멘」이 대표작이다.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섬 키티라의 프랑스어명.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여겨진,

고대 아프로디테 신앙의 근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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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지는 태양

 

 

   인간의 지성도 자연처럼 자신의 풍광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주 나를 흥분시켜 눈물짓게 하는 일출이나 월광도 열정적

감동에 있어서만큼은 낙조의 우울하고 광대한 불길을

결코 능가할 수 없다. 불타는 일몰은 저녁에 바닷가를

거니는 우리 영혼 안에 수많은 물결을 물들여서, 수면 위로

반짝이게 한다. 이때 우리는 어두운 밤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애마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욱 도취되는

기수처럼, 우리는 확신과 기쁨에 몸을 떨며 점점 더 저항할

수 없이 깊이 빠져들지만 훤히 알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활기찬 생각들에 몰두하게 된다.

   어두워진 들판을 돌아다닐 때 우리가 바로 이런 감흥을

품고 있기에, 햇빛 찬란한 벌판인 양 또 우리를 유혹하고

도취시키는 충동의 웅장한 증인들인 양 밤 그늘로 가득한

참나무 숲에 다정스레 인사하게 된다. 하늘로 눈을 들어,

태양의 작별에 아직도 놀라고 있는 구름들 사이로 신비롭게

하늘에 반영된 우리 생각을 흥분하지 않고 알아볼 수 있다.

이윽고 우리는 더 빨리 들판으로 파고들어 간다. 따라오는

개나 우리를 태운 말 또은 말 없는 친구, 양복 단춧구멍에

꽂은 꽃이나 들뜬 우리 손 안에서 경쾌하게 돌려지는

지팡이가 이런 망상의 멜랑콜리한 보상으로 우리의 눈물

고인 시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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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1871년 파리의과대학교의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계 금융업자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힌다.
소르본대학교에 진학했으나 학업보다 글쓰기에 전념. 딜레탕트를 자처하며 사교계를 기웃거리고,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극장, 살롱 등을 드나들었으며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 미술품을 감상한다.
오랜 칩거 생활로 완성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해 결국 자비로 출간하게 된다. 이후 대작을 알아본 갈리마르출판사에서 1919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그해 콩쿠르상,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를 훈장 받음. 1922년 마지막 순간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원고를 다듬다 51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여기에 인용한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은 1896년 그의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에 수록된 산문시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품은 씨앗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 민음사,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