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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아수라
(mental sketch modified)
심상의 잿빛 강철에서
으름덩굴 구름에 휘감기고
찔레꽃 덤불과 부식된 습지
여기나 저기나 아첨의 무늬
(정오를 알리는 소리보다 드높이
호박 조각들이 쏟아질 무렵)
분노의 쓸쓸한 혹은 미숙함
4월의 대기층 쏟아지는 햇빛 속을
침 뱉고 이 갈며 이리저리 오가는
나는 하나의 아수라로다
(풍경은 눈물에 아른거리고)
조각난 구름 떼 망망히 펼쳐진
더없이 영롱한 하늘의 바다에
수정처럼 투명한 바람이 불고
ZYPRESSEN* 봄의 행렬
새까만 빛 알갱이 들이마시는
나무의 그 어두운 걸음걸음에는
눈 덮인 산등성마저 반짝이는데
(아지랑이 물결과 새하얀 편광)
진실한 말은 설 자리를 잃고
구름은 가리가리 하늘을 난다
아아 빛나는 4월의 밑바닥을
이 갈고 성내며 이리저리 오가는
나는 하나의 아수라로다
(광물의 결을 닮은 구름이 흐르고
어디선가 우는 봄날의 새)
태양이 푸르게 일렁거리면
아수라는 수풀과 한데 어우러진다
움푹 꺼져 어둑한 하늘 속에서
검은 나무 군락이 뻗어 나오며
슬프도록 무성한 줄기를 이루니
이 모든 이중의 풍경
상심의 숲속 가지 끝에서
번뜩이며 날아오르는 까마귀
(대기층도 이윽고 드맑게 개어
편백나무 고요히 하늘을 우러를 무렵)
금빛 초원을 빠져나온 자
무사히 사람의 형태를 갖춘 자
도롱이 걸치고 나를 보는 저 농부는
정말로 내가 보이는 것일까
눈부신 대기권 바다 밑에서
(슬픔은 푸릇푸릇 깊어만 가니)
ZYPRESSEN 고요히 흔들리고
새는 또다시 창공을 가른다
(진실한 말은 이곳에 없으니
아수라의 눈물이 대지를 적시네)
새삼 하늘 향해 숨을 내쉬면
폐는 희끄무레 오므라들고
(이 몸뚱이 하늘의 티끌로 흩어져)
은행나무 우듬지 다시 빛나니
ZYPRESSEN 마침내 검어지고
구름의 불꽃이 쏟아져 내린다
* (獨)[쯔프레센] 측백나무와 사이프러스의 복수형. 겐지는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를
본 후 그 감격을 시로 남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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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용매
(Eine Phantasie im Morgen*)
융동融銅**은 아직 이글거리지 않고
하얀 햇무리도 타오르기 전
지평선만 밝아졌다 그늘이 졌다
반쯤 녹았다 가라앉았다
아까부터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무성히 새로 자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다
그중 한 그루 수평으로 뻗은 가지에
유리처럼 반짝이는 근사한 새싹이
제대로 된 삼각 모양을 갖추고
하늘을 비추며 매달려 있다
하지만 물론 이건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난 그저 휘파람을 불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은행잎들은 모두 푸르고
다시금 무성히 흔들리고 있다
지금 이곳은 alcohol 병 속 풍경
하얗게 빛나는 구름은 여기저기 잘려나가
저 영구한 바닷속 짙푸름이 얼굴을 내민다
이어지는 하늘의 신선한 해삼 향
그나저나 내가 지팡이를 너무 휘둘렀나 보다
느닷없이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부신 잔디밭이 그득그득 펼쳐진 것을 보면
그렇고 말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3킬로도 더 지나왔고
들판의 청록 줄무늬 속에서
병사들이 아침 훈련을 한다
화창하게 샘솟는 이른 새벽 상쾌함에
얼어붙은 종달새도 노래를 한다
그 맑고 깨끗한 울림이
하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구름이 점차 푸른 허공에 녹아
이윽고 지금은
둥글게 빚은 파라핀 경단이 되어
동실동실 고요히 떠오른다
지평선으 줄곧 흔들리고
저편에 코 빨간 회색빛 신사가
말만 한 흰 개를 데리고
걷는 모습이 또렷하다
(아 안녕하세요)
(오 날씨가 좋군요)
(어디 산책이라도 가십니까
그래요 그런데 어제
존넨타르***가 죽었다는데
아시는지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어쩌다가요)
(사과에 당했다고 합니다)
(오 저런 사과라니
저기 보이는 저 사과겠군요)
아득히 짙푸른 남빛 지면에서
금색 사과나무가
일렁일렁 뻗어 있다
(금사과를 껍질째 먹은 겁니다)
(그것 참 안됐군요
[···이하 생략···]( ※ 이 시는 12쪽에 달하는 장시로, 본 글에서는 3쪽만 옮김)
* (獨) 어느 아침의 환상
** 구리를 녹인 물. 겐지는 태양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 (獨) 태양의 골짜기. 네안데르탈인을 이른다는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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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와이 농장
파트 2
탬버린도 먼 하늘에서 울고
오늘 비는 괜찮다 내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마차가 빠르다지만
별로 대단하지도 않군
그렇게 달려서 겨우 저기야
여기서 저기까지 이 길을 곧장 달려
화산재 깔린 길까지 갔구나
저곳은 마침 길모퉁이
말라가는 풀 이삭도 가벼이 흔들린다
(산은 온통 푸른 구름으로 빛나고
달리는 마차는 검고 아름답다)
종달새 종달새
은빛 티끌 흩어지는 하늘로
지금 막 솟아오른 종달새
가뭇하고 재빠른 황금색이다
하늘에 펼쳐지는 Brownian movement*
더군다나 녀석의 날개를 보니
딱정벌레처럼 네 장이다
누렇게 반짝이는 것과 옻칠한 듯 딱딱한 것
두 겹의 날개
꽤나 멋지게 노래한다
하늘의 빛 가득히 삼키며
빛의 파도로 잠겨드는 중이다
물론 한참 먼 곳에서는
더 많은 새가 지저귀고 있다
저쪽 새들은 배경이다
거기서는 이쪽 새가 용감해 보이겠지
5월의 어느 날
긴 검정 외투를 입은
의사 같은 사람이 뒤에서 다가왔다
흘끗흘끗 이쪽을 보는 듯하다
외길을 걸을 때
심심찮게 있는 일이다
겨울에도 이렇게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다가와
'본부로 가는 길 맞습니까' 하고
먼 데서 언어의 부표를 던졌다
울퉁불퉁한 길을
겨우 곱씹는 듯한 걸음걸이로
'본부로 가는 길 맞습니까' 하고
불안한 듯 내게 물었다
나는 무뚝뚝하게 '으음' 대꾸했는데
딱 그만큼 그가 가여웠다
오늘은 더 멀리서 온다
*(英) 브라운 운동. 액체나 기체에서 열운동 충돌로 미립자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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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전신주
비와 구름이 지면에 드리워
참억새의 붉은 이삭도 씻기고
들판은 더없이 상쾌해졌으니
하나마키 마을* 그랜드 전신주
백의 뚱딴지로 모여드는 참새
이삭을 훔치러 논에 들어갔다가
휘릭휘릭 휘릭휘릭 날아서
구름과 비로 반짝이는 빛 속을
재바르게 지나 하나마키 마을 교차로
전신주로 돌아오는 참새들
* 겐지가 나고 자란 이와테현 중서부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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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어째서 짖는 걸까 두 마리 모두
짖으며 이쪽으로 달려오는군
(동틀 녘 편백나무는 심사의 하늘)
개는 본래 사람을 따른다
꼬리를 흔드는 건 무섭지 않아
그런데 너희는
왜 그리 저돌적으로 짖어대느냐
어스름한 새벽에 개 두 마리
한 마리는 잿빛
한 마리는 꼬리가 갈색 부들 같구나
뒤로 달려와 으르렁거리는데
내 걸음걸이에 문제는 없다
개의 내면에 있는 이리의 카메라가 무섭기도 하고
내게 그리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므로
개는 사위가 밝아오며 용해한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끝에 전자음도 있다
늘 걷는 길인데 어째서 짖는 게냐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자
제대로 얼굴을 보여주자고
누군가와 나란히 걸어가다가
개가 짖으면 말해줘야지
모자가 너무 큰 데가
고개를 숙이고 걸은 탓에
짖어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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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みやざわけんじ(宮沢賢治): 1896~1933. 일본 이와테현 하나마키시 출신의 동화작가이자 시인이자 교육자이다. 농업학교의 교사로 일하다가 직접 농민의 삶에 뛰어들어 농민 계옹과 농촌 발전을 위해 애썼다. 동화작가와 시인으로 활동 꾸준히 이어감.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첼로 켜는 고슈』 등 총 100여 편의 동화와 400여편의 시를 썼다. ---도서출한 읻지 '책날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