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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로트레아몽 Le comte de Lautréamont,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첫번째 노래 [3] & 두번째 노래 [6] & 네번째 노래 [8]

by 시 박스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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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아몽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 표지

 

 

 

첫번째 노래 [3]

 

 

  나는 말도로르*가 어린 시절 얼마나 착했던가를 몇 줄에 걸

쳐 밝히려 하는데, 그 시절 그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것은 끝난 일

이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악하게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이상야릇

한 숙명이로다! 그는  아주 여러 해 동안, 가능한 한 자신의 성격을

숨겼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이 집중 때문

에, 매일 피가 머리까지 오르곤 했으며, 그와 같은 삶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그는 끝내 악의 길에······ 그 감미로운 환경에 결정적

으로 몸을 던졌던 것이다! 누가 그렇게 되리라고 말할 수 있었을

까! 그가 어린아이를, 장밋빛 얼굴의 어린아이를 껴안을 때면, 면

도날로 그 뺨을 도려내고 싶어할 것이라고, 또 만일 법이 징벌의 

긴 나열로 번번이 그를 막지만 않았더라면, 매우 자주 그 일을 저

지르고 말았을 것이라고. 그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어서, 진실을 고

백했으며, 자신이 잔혹하다고 말하곤 하였다. 인간들이여, 들었는

가? 그가 떨리는 이 펜으로 감히 그 말을 다시 하는구나!** 그러니

까, 의지보다 더 강한 어떤 힘이 있는 것이다 ······ 바로 저주!

이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려 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

다, 악이 선과 결합하고 싶어하더라도, 내가 위에서 말했던 바가

이것이다.

 

※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신을 부르는 말은 여러가지다. 신, 섭리, 영원한 자, 전능한 자, 위대한 전체 등.

로트레아몽은 이들 호칭을 대문자로 썼고, 번역에서는 이를 고딕체로 표시했다.

* '말도로르Maldoror'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이 이름을 풀어서 'Mal d'aurore(여명의 악)으로 해석하거나

'공포'를 뜻하는 'horror'에 연결시키려는 등 여러 시도가 있으나 이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

지 않았다.

** 말도로르는 한 문단 안에서, 때로는 한 문장 안에서, 삼인칭이 되기도 하고 일인칭이 되기도

한다. 말도로르는 주인공으로 행동하는 존재인 동시에 이 글을 쓰는 존재다.

<  >

 

 

두번째 노래 [6]

 

 

  튈르리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이 어린애, 그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의 대담한 눈길은 허공 저멀리 보이지 않는 어

떤 것을 쏘아보고 있다. 여덟 살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

건만, 아이는 보통 그래야 할 것처럼 놀고 있지 않다. 아무튼 혼자

있기보다는 어떤 친구와 웃고 있거나 산책을 해야 마땅할 것이나,

그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다.

  튈르리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이 어린애, 그는 얼마나 사랑

스러운가! 한 남자가, 숨긴 의도에 부추김을 받아, 수상한 발걸음

으로 다가와, 바로 그 벤치에, 아이의 옆에 앉는다. 그는 누구인

가? 당신에게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그의 음흉한 대화

를 듣고 그를 알아볼 테니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들을 방해하

지 말자:

     -얘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늘나라를 생각했어요.

     -네가 하늘나라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땅을 생각하는 것으로

도 벌써 충분하다. 사는 데 지쳤니, 이제 갓 태어난 네가?

     -아니요. 하지만 누구나 땅보다 하늘나라를 더 좋아해요.

     -그런가, 나는 아니야. 하늘나라도 땅처럼 신에 의해 만들어

졌으니, 거기서도 이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만날 것이라

고 생각해야지. 네가 죽은 후, 너의 선행에 따라 네가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땅에서 누가 네게 불의를 저지른다면(너는

나중에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할 것이다), 다음 생에서도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야. 네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신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네가 네 자신에게 정의로운 대갚

음을 해주는 일이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네 친구들

가운데 어느 녀석이 너를 해코지하면, 너도 그 녀석을 죽이고 싶

지 않겠니?

     -하지만 그건 금지된 일인데요.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금지된 건 아니야. 잡히지 않는

것이 다만 문제일 뿐이지. 법률이 베푸는 정의는 아무 가치가 없

다. 중요한 것은 해코지당한 사람의 법률해석이다. 네가 네 친구

를 중의 한 녀석을 미워하는데, 그 녀석이 시도 때도 없이 네 눈앞

에 떠오른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일이 아니겠어?

     -그거야 그렇지요.

     -결국 네 친구들 중의 한 녀석이 너를 평생 불행하게 하겠구

나. 네 증오가 단지 수동적일 뿐인 것을 알고, 그 녀석이 계속해서

너를 업신여기면서,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네게 악을 저지를 테

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그 상황을 끝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자기 원수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까지 하려는 것은,

지금의 이 사회가 어떤 바탕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네게 알려주

기 위해서다. 저마다 저 자신에게 정의로운 대갚음을 해주어야 한

다. 바보가 아니라면. 제 동류들을 누르고 승리를 쟁취하는 자는

가장 교활하고 가장 강한 자이다. 너는 어느 날인가 네 동류들을

지배하고 싶지 않니?

     -네, 그래요.

     -그렇다면, 가장 강하고 가장 교활한 자가 되어라. 네가 가장

강한 자가 되기에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오늘부터 너는 책략을

사용할 수 있다. 천재들의 가장 아름다운 도구지. 양치기 다윗이

돌팔매질 끈으로 돌 하나를 던져 거인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었을

때, 훌륭하다고 해야 할 것은 다윗이 제 적을 오직 책략으로 무찔

렀기에 망정이지, 반대로 그들이 완력으로 맞붙었더라면 거인이

그를 파리처럼 짓이겨버렸으리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아니겠느

냐?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네 의지를 펼쳐 다스리고 싶은 사람들

이 있는데, 맞싸움으로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

나 술책으로는 너 혼자서도 모든 사람과 대항하여 싸울 수 있다.

너는 부와 아름다운 궁전과 명예를 얻고 싶지? 아니면 네가 나한

테 이런 고상한 포부들을 늘어놓으면서 나를 속인 것이냐?

     -아니에요, 아니에요, 속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나는 내가 원

하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얻고 싶어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텐데. 착하고 우직한 방법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보다 강한 지렛대와 더 영리한 술

책에 일을 맡겨야 한다. 네가 너의 미덕으로 이름을 떨치고 목적

을 달성하기도 전에, 백 명의 다른 사람들이 네 등에 올라탈 시

간을 벌어 너보다 먼저 출세가도의 목적지에 이를 테니, 너의 좁

은 소견으로 차지할 자리는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보

다 더 크게, 현재 이 시간의 지평선을 두루 내다볼 줄 알아야 한

다. 예를 들어, 승리가 가져올 무한한 영광에 대해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느냐? 그러나, 승리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승

리를 만들어내어 정복자의 발아래 가져다놓으려면, 피를, 많은 피

를 쏟아야 한다.(이하 생략)

<  >

 

 

네번째 노래 [8]

 

 

  밤마다, 내 날개폭을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잠그고, 나는 팔머

의 기억을 떠올렸다 ······ 밤마다. 그의 금발, 그의 달걀형 얼굴,

그의 위엄 어린 표정이 여전히 내 상상력에 찍혀 있었다 ······ 지

울 수 없이 ······  특히 그의 금발 머리가. 치워라, 그러니 치워라,

머리카락이 없는,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반들거리는 이 머리를. 그

는 열네 살이었고, 나는 그보다 한 살이 더 많을 뿐이었다. 저 침

울한 목소리는 침묵하라. 이 목소리가 왜 나와서 나를 고발하는

가? 그러나 말하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혀를 사용

하여 내 생각을 내보내면서, 나는 내 입술이 움직이고 있음을, 말

을 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내 젊은 날의

이력을 이야기하며,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회환을 느끼며 ······  바

로 나 자신이다. 내가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나 자신이다,

말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느 한 살이 더 많을 뿐이었

다. 내가 암시하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지난날에 가졌던

친구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렇다. 나는 이미 그의 이름

이 무엇인지 말했으며 ······  또다시 그 여섯 글자의 철자를 한 자

한 자 짚어 말하고 싶지 않다, 아니다, 아니다. 내가 한 살이 더 많

다고 되풀이하는 것도 역시 쓸데없는 짓이다. 누가 알겠는가? 하

여튼 되풀이하자, 그러나 고통스러운 중얼거림으로: 내가 한 살이

더 많을 뿐이었다. 그렇더라도, 내 체력의 우위는 오히려 인생의

거친 오솔길을 헤쳐나가며 나에게 몸을 의탁한 자를 부축하는 동

기였지, 눈에 띄게 더 약한 존재를 학대하는 동기가 아니었다. 그

런데, 나는 사실 그가 더 약했다고 생각한다 ······ 그렇더라도. 내

가 지난날에 가졌던 친구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 체력의 우위

는 ······ 밤마다 ······ 특히 그의 금발이. 대머리를 본 적이 있는 인

간은 하나둘이 아니다. 노화, 질병, 고뇌는(이들 셋이 함께든 따로

따로든) 이 부정적인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한다. 어느 학자에게

내가 그 현상에 관해 묻는다면, 적어도 그가 내게 해줄 대답이 이

와 같다. 노화, 질병, 고뇌, 그러나 내가 모르지 않는바(나도 역시

학자다), 어느 날, 내가 한 여자의 가슴을 찌르려고 단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가 내 손을 저지한 까닭으로, 내가 강철 팔로 그의

머리칼이 내 손에 남고, 그의 육체가 원심력으로 내던져져 떡갈나

무의 둥치에 처박히고 ······  나는 어느 날 그이 머리칼이 내 손에

남은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나도 역시 학자다. 그렇다, 그렇다, 나는

이미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했다. 나는 어느 날 내가 수치스러

운 짓을 자행했으며, 그때 그의 육체가 원심력으로 내던져졌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열네 살이었다. 정신착란이 발작하는 가운

데, 내가 성유물처럼 오래 간직해온 핑 흐르는 물건을 가슴에 끌

어안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갈 때, 나를 쫓는 어린아이들 ······ 돌

팔매질을 하며 나를 쫓는 어린아이들과 늙은 여자들은 비통한 신

음소리를 내지른다. "저걸 봐라, 팔머의 머리칼이다." 치워라, 그러

니 치워라.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반들거리는 이 대머리를 ······ 피

흐르는 물건을. 그러나 말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의 달걀형

얼굴, 그의 위엄 어린 표정. 그런데, 나는 사실 그가 더 약했다고

생각한다. 늙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그런데 나는 사실 ······ 내가

무슨 소리를 하려 했던가? ······  그런데, 나는 사실 그가 더 약했다

고 생각한다. 강철 팔로, 이 충격이, 이 충격이 그를 죽였는가? 그

의 뼈가 나무에 부딪쳐 부러졌는가 ······  돌이킬 수 없이? 이것이

그를 죽였는가, 한 장사의 힘에서 태어난 이 충격이? 그는 생명을

보전했는가, 그의 뼈가 돌이킬 수 없이 부러졌어도 ······  돌이킬 수

없이? 이 충격이 그를 죽였는가? 나는 감긴 내 두 눈이 목격하지

못한 그 일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 사실 ······ 특히 그의 금발. 사

실, 나는 그때부터 용서할 줄 모르는 양심을 품고 멀리 도망쳤다.

그는 열네 살이었다. 그때부터 용서할 줄 모르는 양심을 품고. 밤

마다. 영광을 꿈꾸는 한 젊은이가, 육층 방에서, 한밤의 고요한 시

간에, 작업대에 엎드려 있다가, 무엇의 탓이라고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낮은 소리를 감지할 때, 그는 명상과 먼지 낀 수고手稿로

무거워진 머리를 사방팔방으로 돌리지만, 그리도 희미하게 들리

는 것의 원인을 밝혀주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제 촛불의 연기가

주위의 공기를 가로질러 천정으로 날아오르며, 벽에 박힌 못에 걸

린 종이 한 장을 거의 감지할 수도 없이 떨리게 하고 있음을 알아

차린다. 육층에서. 영광을 꿈꾸는 한 젊은이가 무엇의 탓이라고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낮은 소리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 귀에 속삭이는 구성진 목소리 하나를 듣는다: "말도로르!" 그

러나 제 착각을 끝내기 전까지는, 한 마리 모기의 날갯소리를 듣

고 있다고 ······  작업대에 엎드려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꿈

을 꾸는 것이 아니다, 내가 비단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무슨 대수인

가? 나는 냉정한 마음으로 날카롭게 직시한다, 비록 장밋빛 도미

노와 가장무도회의 시간이지만, 내가 눈을 뜨고 있음을. 전혀 ······ 

오! 아니다, 전혀! 어떤 죽음의 목소리가 이런 천사 같은 억양으로

고통에 찬 우아함을, 그리도 떨면서 내 이름의 철자를 들려주지

않았다! 한 마리 모기의 날갯소리 ······  그 목소리는 얼마나 친절

한가 ······  그는 그럼 나를 용서했는가? 그의 육체는 떡갈나무 둥

치에 처박혔다 ······ "말도로르!"

 

                                                                             네번째 노래 끝

 

 

 

로트레아몽: 1846~1870. 본명은 이지도르 뒤카스 Isidore L. Ducasse.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1859년에 프랑스로 넘어돠 타르브와 포의 리세에서 기숙생으로 수학했다. 무명시인으로 살다 스물넷에 요절했다.
1868년 「첫번째 노래」가 이름 대신 별 세 개로 표시되어 먼저 발표되었고, 이듬해 1869년에 총 여섯 편의 노래가 담긴 『말도로르의 노래』가 '로트레아몽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당시 바이런, 미츠카에비치, 보들레르 등을 비롯해 로망 누아르 작가한테 영향을 받음.
『말도로르의 노래』는 작가 사후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저주받은 천재의 광기와 독창성이 빚어낸 걸작으로 재평가되면서 유명해졌다. 185가지의 동물로 역동적으로 변신하면서 손발톱, 흡반, 부리, 턱으로 이 세상의 창조주와 인간을 공격하는 이 잔악무도한 반항아의 전무후무한 노래는, 여러 문인과 예술가를 경악과 충격에 빠뜨렸다.
바슐라르, 블랑쇼, 브르통, 엘뤼아르, 발레리, 아르토, 카뮈, 솔레르스, 크리스테바 등 작가들은 물론 달리, 마그리트, 모딜리아니, 미로 등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오늘날 현대 무용가들과 음악가들에게까지 독창적인 영감의 샘이 되고 있다.
                                                                                                 -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책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