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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여자 과(科)
나는 홀린 마녀, 밖으로 싸돌아다녔지,
검은 대기에 출몰하고, 밤엔 더 용감하지.
악마를 꿈꾸며, 나는 평범한 집들
너머로 휙휙 불빛들을 타고 다니지.
외로운 것, 손가락은 열두 개, 정신 나간,
그런 여자는 여자도 아니겠지, 분명.
나는 그런 여자 과.
숲속에서 나는 따뜻한 동굴들을 발견했고,
동굴을 프라이팬, 큰 포크들과 선반들,
벽장, 실크, 셀 수 없는 물건들로 채웠지;
벌레와 요정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고:
훌쩍이며, 어질러진 걸 다시 정리했지.
그런 여자는 이해받지 못해.
나는 그런 여자 과.
나는 당신 수레에 올라탔어, 마부여,
지나는 동네마다 내 맨팔을 마구 흔들어 댔지,
최후의 바른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그 길에서는 당신 불꽃이 아직도 내 허벅지를 물어뜯고
내 갈비뼈는 당신 바퀴들이 도는 데서 부서지고.
그런 여자는 죽는 것도 부끄럽지 않아.
나는 그런 여자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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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어여쁜 것들
아버지, 올해의 불운이 우릴 그만 갈라 놓네요
당신은 차가운 잠에 빠진 엄마를 따라가신 거지요;
두 번째 쇼크가 그 돌멩이를 당신 심장에다 달구었지요.
당신이 감당할 수 없었던 집에서
당신을 해방시키고 나는 여기 버려 놓았지요:
황금 열쇠, 당신 분신인 방적기,
던스에서 맞춘 양복 스무 벌, 영국제 포드,
다른 유서엔 연인 이야기, 장황한 법의 문장
내가 모르는 사람들 사진이 들어 있는 상자들.
나는 그 종이 얼굴들을 만져 봅니다. 그들은 떠나야만 해요.
하지만 그 눈들, 이 앨범 속 숲처럼 빽빽한 그 눈들이
나를 붙잡네요. 여기서 멈춰 버린 나, 어린 소년이
주름 장식 드레스를 붙잡고 누가 오길 기다리네요······
나팔을 장난감처럼 움켜쥔 군인이거나
웃지 못하는 벨벳 옷 입은 여인이거나.
이분은 당신 아버지의 아버지인가요? 우편배달부 옷을
입은 준장은요? 그새 시간이 흘러, 아버지,
당신이 누굴 찾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네요.
난 이 얼굴들이 대체 다 뭔지 절대로 알지 못할 거예요.
나는 이제 그들을 책 속에 닫고 치워 버립니다.
이건 노란 스크랩북, 내가 태어난 해에
당신이 시작한 것. 이젠 담뱃잎처럼 바스락거리고
쭈글쭈글하네요. 오려진 기사엔 후버가 민주당을 추월한
이야기, 후버는 나와 금주법을 향해 마른 손가락을
꼼지락하네요. 힌덴부르크 비행선이 추락했다는 기사도,
당신이 전쟁에 대해 열 올리던 그 몇 년이죠.
올해엔, 능력은 있으나 편찬으셨던 당신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그 예쁜 미망인과 결혼하려고 했지요.
두 번째 기회를 잡기도 전에 저는 당신 넓은 어깨에 기대어
울고 말았지요, 그리고 3일 뒤 당신은 돌아가셨어요.
결혼 생활 스냅 사진들, 여기저기서 나를 멈추게 하네요.
이번엔 나소를 향한 철길에 나란히 서 있군요;
여기에는 쾌속정 경주에 나가 딴 우승컵이 있네요.
여기엔 무도회가 끝날 때쯤 당신이 인사를 하고 있네요.
여기엔 발그레한 눈의 우리 개 사육장 옆에서,
우리 속의 전시용 돼지들처럼 뛰고 있네요.
여기선, 마술(馬術) 경기에서 내 여동생이 상을 받고 있고요.
이제 나는 당신을 접습니다, 나의 술고래, 나의 항해사,
사라져 버린 내 첫 보호자, 사랑하는, 나중에 보게 될 당신.
나는 엄마가 3년간 써 왔던 5년짜리 일기장을
들고 있어요, 여기엔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던 아빠의
술버릇이 적혀 있네요. 아빠가 늦잠을 잤다고,
엄마가 적어 놓았네요. 세상에, 아빠, 매 성탄절마다 당신
와인 잔으로 한잔해도 될까요? 저는 당신 핏줄이니.
아빠의 요란법석한 날들이 기록된 일기장은
제 책장으로 가 저의 시대가 지나길 기다리겠지요.
이렇게 축적된 세월 속에서만 사랑이 버티겠지요.
당신이 어여쁘든 아니든, 나는 당신보다 더 오래 살지요.
어색한 내 얼굴 당신 얼굴을 굽어보며 당신을 용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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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내 입이 피어나네, 베인 상처처럼.
나, 그 세월에 잘못했네, 지루한
밤들, 다만 그 밤에는 거친 팔꿈치들과
울보야, 울보야, 바보탱이야
부르는 크리넥스 고운 상자들만 있었지.
어제만 해도 내 몸은 쓸모가 없었어.
이제 네모난 모서리에서 내 몸은 찢어지고 있어.
그것은 늙은 성모님의 옷을 찢고 있어, 매듭 마디마다
자 봐 - 이제 그것은 전율하는 번개로 가득 찬 발사.
띵! 부활!
한때 그것은 보트였어, 나무로 만들어진
하릴없는 보트, 그 아래엔 소금기 있는 물도 없고
페인트칠이 좀 필요한 보트였어. 다만 한 무더기 판자였어.
하지만 당신이 그 보트를 끌어 올려 여기저기 손을 봤지.
보트는 선택된 거야.
내 신경이 켜졌어. 나는 신경을
악기처럼 듣고 있어. 침묵이 있는 곳에
드럼과 줄들이 구제불능처럼 놀고 있네, 당신이 이걸 했어.
순수한 천재기가 발동한 것. 자기 말야, 그 작곡가가
불을 붙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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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1974.
20세기 미국 시문학사에서 실비아 플러스, 에이드리언 리치 등과 더불어 여성의 이야기를 대범하게 그린 작가.
메사추세츠 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엄격한 훈육과 정서적 결핍으로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못했고, 평생 우울증, 양극성장애, 죽음충동과 맞서 싸웠다. 아내이자 엄마, 가정의 천사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던 시기에, 몸에 대한 예민한 인식, 성, 섹스, 자살, 낙태, 불륜, 욕망, 정신질환 등 그동안 시에서 잘 다루지 않던 금기된 소재를 과감하게 드러냈다.
시집 『살거나 죽거나』로 '퓰리처 상'(1967년)을 받았으나, 마흔여섯의 나이에 죽음을 택한다.
"홀린 마녀"처럼 시대의 금기와 씨름하며 걸어온 삶의 길에서 시는 생을 지탱하는 치료제였고 힘이었다. 가부장제의 틀 속에 매였으나 마음은 새로운 영토를 꿈꾸는 여성들, 엄마이자 딸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속울음과 갈망과 상실의 목소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낸 시인은 많지 않다. (시집, 『밤엔 더 용감하지』 날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