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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내 사랑의 그림자』 수록 시 5편: 1915년 2월 9일의 시& 군용열차 & 있다 & 나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 이것은

by 시 박스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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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욤 아폴리네르, 『내 사랑의 그림자』(아티초크) 표지

 

 

1915년 2월 9일의 시

 

 

 

  [거울]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보이는 건 바로 너 아주

열정적이고 씩씩한 내 영혼의 역전된 반영처럼 나를 닮

은 나의 루

 

  [신전]

  나는 또한 매력적이고 우아한 신들께 바치는 신전을

짓는다 바로 너 말이다 나의 루 너는 남신(男神)이다 자

웅동체 여신(女神)이다 내가 너를 창조했고 내가 너를

숭배한다 신령 남자사제 여자사제 남자애인 여자애인

그러고도 너는 또한 너 자신을 위한 제단에 바쳐야 할

희생제물이기도 하다 내가 애원하며 매달리는 음탕한

신 나의 루

 

  [대포]

  프랑스 만세 안녕 나의 루 이 75밀리 대포로 네가 좋

아하는 입맞춤을 발사한다 전차가 궤도를 미끄러져 굴

러가듯 내 사랑은 네 사랑에 맞물려 돌아간다 너는 멀리

기차를 타고 간다 너는 걸어간다 시계 제조업이 성황인

님므에 비가 내린다 오 나의 루

 

아폴리네르 시, 「1915년 2월 9일의 시」 원형

  [검]

  검(劍)처럼 해가 솟았다 그리고 나는 햇빛을 사랑하는

만큼 너를 사랑한다 내 사랑아

 

  [루의 초상]

  너를 알아보겠니 커다란 밀짚모자을 쓴 이 사랑스러운

인물이 바로 너야 눈 코 입 너의 계란형 얼굴 섬세한 너

의 목선 결국 구름 너머 보이듯 경탄할 만한 네 흉상의

불완전한 이미지가 되어 버렸네 하지만 조금 더 내려가

면 너의 심장이 뛰고 있지

 

  [오렌지]

  툴롱에서 날아온 네 편지를 받았어 너를 사랑해 또 만

날 때까지 안녕 여긴 구슬프게 비가 내리고 나는 우울해

나의 루 바라티에의 오렌지는 프랑스 최고지 이 오렌지

를 닮은 태양처럼 따스한 너의 살맛이 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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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열차

 

 

 

  우리는 전진한다 걸음을 떼지 않고도 전진한다

  우리는 식사가 끝날 즈음 수통을 들이켠다

  디종 지나기 전 우리가 보았던 마지막 꽃나무는

  (님므 주변에선 꽃이 다 진 상태이기에)

  온통 너의 순결한 젖가슴 같은 분홍빛이었다

  내 삶은 어제 신문처럼 유행에 뒤떨어지고

  우리는 오 여자들이여 그대들 모습을 사랑한다

  우리는 새장 속 새들처럼 기차간에 처박혀있다

  소스펠*의 안개를 너는 아직도 기억하느냐

  한 소녀가 너의 근원적인 악덕을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그라스 가기 전 방스에서의 우리 밤

  망통의 그 호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오 나의 젊고 어여쁜 여자야 너 또한 늙어

  너의 아름다운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올 때

  그리하여 내 이름이 지상을 뒤덮어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이름이 도처에서 들리면

  너는 우쭐대며 말하리라 그가 나를 사랑했노라고

  그러니 너의 마음을 열도록 하자 이미 너는 내게 품을

허락했다

  추억 그것은 한계가 없는 정원

  그곳 두꺼비 창공의 쪽빛 외침에 은은한 가락을 붙인다

  필사적인 침묵의 암사슴이 빠르게 지나간다

  내가 장미꽃을 꺾었던 네 몸의 장미나무에 앉아

  사랑에 멍든 꾀꼬리 한 마리가 노래한다

  우리의 심장이 같은 석류나무에 맺혀 있다

  그 사이사이 피어난 석류꽃들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지면서 오솔길을 수놓는다

  나무들이 힘차게 달린다 나무들이 달리고 또 달린다

 

 

* 소스펠(Sospel): 몬테카를로와 이탈리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 남동부 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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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기막히게 멋진 작은 교량들이 있다

  너를 위해 뛰는 내 심장이 있다

  길 위에 슬픈 여인이 한 명 있다

  정원에 작고 아름다운 별장이 한 채 있다

  미친 사람처럼 흥에 들뜬 병사 여섯이 있다

  너의 모습을 찾는 나의 두 눈이 있다

 

  언덕 위에 매혹적인 작은 숲 하나 있다

  그리고 한 늙은 향토방위군이 우리가 지나갈 때 소변을 본다

  예쁘장한 루를 꿈꾸는 시인이 한 명 있다

  이 거대한 도시 파리에 루라고 하는 세련되고 예쁜 사람이 한 명 있다

  숲 속에 포대(砲臺)가 있다

  양떼를 치는 목동이 한 명 있다

  너의 것인 내 인생이 있다

  물 흐르듯 흐르는 나의 만년필이 있다

  우아하고 우아하게 드리워진 포플러나무 커튼이 있다

  영영 지나가버린 지난 내 모든 삶이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눴던 망통의 좁은 골목길들이 있다

  동료들을 매질하는 소스펠 출신 소녀가 한 명 있다

 

  내 귀리자루 안에 말몰이용 채찍이 있다

  선로 위에 벨기에 열차가 있다

  나의 사랑이 있다

  삶 전체가 있다

  나는 너를 사모한다

  <  > 

 

 

나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저녁 나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수문(水門) 앞에서

  절망을 빚어내면서도 이 마음 들뜨게 하는

                   저 별 

 

  나의 슬픔 나의 열정 나의 사랑 오 루

                  날이 흐르고

  낮이 가듯 밤이 가 버리니

                  어둠이 펼쳐진다

 

  독일놈 포탄들 줄줄이 불경한 로자리오*

                  봄이로구나

  사방에서 새들이 흥청거리니

                  우린 만족한다

 

  강가에서 우리 만족한다

                  숲 속에서

  만족한다 죽음이 세상에 만연하지만

                  우리 준비되었다

 

  죽을 준비되었어 행복 속에서

                  너만은 살아가도록

  포탄이 불태워 버린 것은 음탕한 꽃들과

                  또 다른 꽃

 

  내 마음에 피어난 그 꽃의 이름은

                  추억

  꽃의 자취로 남은 유령은

                  욕정

 

  내가 조는 사이 찾아든 것은 오직 밤이니

                  낮이여 오너라

  금빛 숲이 화창해지는구나

                  사랑을 하나 보다

 

  구름은 세상을 질주하는데

                 우리 두 사람

  언제 금빛 모래사장 질주할까

                 언제 무릎 꿇어

 

  광활한 바다 바라보며 기도할까

                 오렌지나무엔

  너 닮은 금빛 열매 익어가는데

                 언제 우리 두 사람

 

  죽은 듯 꼼짝 않고 귀 기울일까

                 한밤중 잔인한 파도는

  줄줄이 익사한 수부들의 죽음을 노래하는데

                 오 루 모두가 잠든 시각

 

  나 홀로 편지를 쓴다 흔들리븐 장작불

                 불빛 벗 삼아

  때때로 들려오는 포탄의 탄식 소리

                 이따금

 

  길 위를 달리는 기병의

                 말발굽 소리

  가끔 불길한 까치 울음 솟구치고

                 내 손은

 

  밤에 이 손금들 힘겹게 아로새겨

                 안녕 내 사랑아

  나 또한 신비스럽게 별자리를 더듬는다

                 거대한 행운의 별자리

 

  오 나의 신비스러운 사랑 오 루

                 삶은 우리에게

  다함 없는 희열을 허락하리라

                 우리 차지가 되리라

 

  유일한 사랑이 될 어떤 사랑

                 안녕 나의 연인아

  저기 저 반짝이는 신비의 별

                 그 빛깔이

 

  너의 아리송한 눈빛이로구나

                 시선이 느껴진다

  나 그 때문에 예리한 상처 얻었지만

                안녕 늦은 시각이다

 

* 로자리오(chapelet): 묵주(默珠). 전쟁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미지를 통해 그 폭력성을 배가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  >

 

 

이것은

 

 

 

  이것은 내가 바라는 내 마음을 사진 찍은 현실

  오로지 이런 현실 다른 것 말고 오직 이것

  내 심장은 연설가의 입처럼 끊임없이 이를 되풀이한다

이를 되뇐다

 

                     심장이 뛸 때마다

  그밖에 세상의 다른 모든 이미지는 가짜

             망령의 허상 말고는 없지

  금속으로 식물로 지하로 나를 에워싸는

                      기이한 세계*

                      오 아침 태양을 갈망하는 삶이여

  조명탄이 요란하게 장식하는 이 우주야말로

       마법이 조화를 부린 모종의 결과물이 아닐런지

           그 옛날 악마숭배 창궐했던

                      톨레도**에서

  연구했을 법한 마법의 조화 말이야

          그런데 나에게는 훨씬 더 정교하고 확고한 우주가 있어

 

                     너의 이미지를 따서 만든 우주

 

  * 기이한 세계: 무기와 숲 참호로 이루어진 전장을 암시한다

** 톨레도: 에스파냐의 도시 톨레도(Tolèdo)에서는 12세기에 마법에 관한 연구가 최고조에 달해, 산술과 기하학 대신

마법이 정규 학업과목에 포함될 정도였다.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는 20세기 초 유럽,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적 능력이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시기, 최전방에서 시와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한 시인.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미라보 다리」처럼 대중적이며 걸출한 서정성의 시를 부정할 수는 없으나, 『알코올』(1913), 『칼리그람』(1918)과 같은 독보적인 시집을 출판하고,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의 대담한 모험 정신에 활력을 넣었다.

그는 길지 않은 일생 동안 창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빛냈고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치열하게 살면서, 아픔과 상처-욕망과 희열- 그 모든 빛과 그림자 하나하나까지 "기념하듯" 시로 써내려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진정 그는, 언어의 승리를 자신했다.  - 『내 사랑의 그림자』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