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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시집, 『충만한 힘』 에서 시 읽기: 시인의 의무 & 탑에서 & 아이 씻기기 & 탄생 &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by 시 박스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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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집, 『충만한 힘』 표지

 

 

시인의 의무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문을 연다,

  희미하나 뚜렷한 동요가 시작되고,

  천둥의 긴 우르릉 소리가 이 행성의 무게와

  거품에 스스로를 더하며,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별은 그 광관光冠 속에서 급속히 진동하며,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 하고

  두 눈을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流沙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  >

 

 

탑에서

 

 

  이 장엄한 탑에는

  투쟁이 없다.

  안개, 공기, 날日이

  그걸 둘러쌌고 떠났으며

  나는 하늘과 종이와 더불어 머물렀다,

  고독한 기쁨과 부채負債와 함께.

  증오가 있는 지상의 투명한 탑 그리고

  하늘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먼 바다.

  그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가,

  그 단어에는? 내가 말했던가?

 

  이슬의 불안은 아름다워라---

  그건 아침에 떨어진다

  새벽에서 밤을 

  분리하며

  그리고 그 차가운 선물

  불확실하게 매달려 있다

  강렬한 태양이

  그걸 죽게 하기를 기다리며.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밤이

  우리 속에서 별 박힌 눈을 뜨는 건지,

  어떤 문이 열릴 때까지

  그게 우리 꿈의 벽에 구멍을 파는 건지.

  그러나 꿈은

  한순간의 휙 지나가는 의복일 뿐,

  어둠의

  한 번의 고동 속에 소모되고,

  우리 발 앞에 떨어져, 벗어던진다

  날이 움직여 우리와 함께 출범할 때.

  

  이게 거기서 내가 내려다보는 탑이다,

  빛과 말수가 적은 물 사이,

  칼을 지닌 시간,

  그러고 나서 나는 살기 위해 서두른다,

  나는 온 공기를 마시고

  도시에 들어찬 불모의

  빌딩들에 간담이 서늘하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혼잣말을 한다,

  높은 곳들의

  침묵에서 한 잎씩 떼어내며.

 

 

아이 씻기기

 

  지상에서 제일 오래된 사랑이

  아이들의 조상彫像을 씻기고 머리 빗겨,

  다리와 무릎을 정상으로 만든다;

  물은 솟아오르고, 비누는 미끄러지고,

  티 없는 몸이 꽃과 어머니의

  공기를 숨쉬기 위해 솟아오른다.

 

  오 그 주의 깊은 조심성,

  귀여운 속임수,

  그 사랑스런 투쟁!

 

  이제 머리카락은

  목탄으로 이리저리 그어서 얽힌 생가죽,

  톱밥과 오일,

  검댕, 철사 그리고 게들로 얽힌---

  그리하여 사랑이 참을성 있게,

  참을성 있게,

  양동이와 스펀지

  빗과 타월을 준비하면

  문지름과 빗질과 호박琥珀에서

  오래된 검약에서 그리고 재스민에서

  아이가 솟아오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져서,

  어머니의 팔에서 뛰어나오고,

  다시 그 회오리바람을 타고 기어오르고,

  진흙, 오일, 오줌, 그리고 잉크를 찾고,

  스스로 다치고, 돌에 걸려 넘어진다.

  그렇게, 새로 씻겨, 아이는 삶으로 뛰어든다;

  나중에는 청결을 유지하는 시간밖에

  없을 터이니, 그것도 그때는 생기 없이.

<  >

 

 

탄생

 

 

  우리는 죽음의 기억 같은 건 지니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 관해

  우리는 실로 참을성 있었다,

  숫자들을 적어놓고,

  날짜, 해와 달들,

  머리카락, 우리가 키스하는 입들을 적으며,

  그리고 죽는 순간은

  적지 않고 지나보낸다---

  우리는 그걸 다른 이들한테 기억으로 남긴다,

  또는 단지 물에게 남긴다,

  물에게, 공기에게, 시간에게.

  탄생의 기억조차도

  우리는 지니지 않는다,

  존재하게 되는 건 소란스럽고 새로운 일이었는데도;

  그리고 이제는 단 하나의 세목도 기억하지 않으며

  당신의 최초의 빛의

  흔적조차도 지니지 않았다.

 

  우리가 태어났다는 건 잘 알려진 일.

 

  그건 잘 알려져 있다, 방 안에

  또는 숲속에

  또는 어부들이 사는 곳의 숙소에

  또는 서걱대는 등나무밭에

  아주 이상한 침묵이 깃들어 있다는 건,

  여자가 출산하려고 할 때와 같은

  엄숙하고 덤덤한 시간.

 

  우리가 모두 태어났다는 건 잘 알려진 일.

 

  그러나 그 격렬한 진동---

  비존재에서 존재로, 손을 가진 것으로,

  보고, 눈을 갖고,

  먹고, 울고, 넘쳐흐르고

  사랑하고 사랑하며 괴롭고 괴로운 것으로,

  그 전이轉移, 그 전격적인 현존의

  진동, 살아 있는 컵과도 같은

  한 몸 더 솟아오르기,

  그리고 텅 빈 채 남겨진 여자,

  그녀 피 속에 그리고

  찢긴 충만 속에 남겨진 어머니,

  그리고 그 끝과 그 시작, 그리고

  모든 게 모이고 목숨에 매듭이

  하나 더 보태질 때까지

  맥박, 마루, 커버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질서,

  한 파도를 일으키고 나무에서

  알 수 없는 사과를 따낸 그 야생의 바다의 

  어떤 것도 당신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이 기억하는 유일한 건 당신의 삶이다.

<  >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서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그는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1973.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남.
열아홉 살 때 첫 시집 『황혼의 노래』를 출간했고, 스무 살 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남미 전역에서 유명한 시인이 되었음.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으며 정치가로도 활동하였음.
시집으로 『지상의 거처 Ⅰ·Ⅱ·Ⅲ』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100편의 사랑 소네트』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에스트라바가리오』 『충만한 힘』 등이 있음.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