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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폴 엘뤼아르 Paul Éluard, 『엘뤼아르 시 선집』에서 읽은 시: 평화를 위한 시 & 동물이 웃는다 외 1편 & 약간 일그러진 얼굴 외 1편 & 이곳에 살기 위하여 & 사랑의 힘에 대해 말한다

by 시 박스 2024.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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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뤼아르 시 선집 표지

 

평화를 위한 시(1918)

 

 

 

 

모든 행복한 여자는.

남편을 되찾았네---태양으로부터 돌아온 그는

그만큼의 온기를 가져다주네.

그는 웃고 감미롭게 안녕이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경이로움과 포옹하지.

 

 

 

일하라.

내 열 손가락의 일과 내 머리의 일,

신의 일, 짐승의 일,

나의 삶과 매일 꿈꾸는 우리의 희망,

식량과 우리의 사랑,

일하라.

 

 

 

나는 오랫동안 쓸모없는 얼굴을 갖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

나 사랑받기 위한 얼굴을 갖고 있네,

나 행복하기 위한 얼굴을 갖고 있네.

 

 

 

나는 온갖 미녀를 꿈꾸지

여행하는 달과 함께

매우 고요히,

밤을 거니는,

 

 

과일나무에 핀 온갖 꽃이 나의 정원을 밝힌다,

아름다움의 나무들과 과일나무들,

그리고 나는 일한다 그리고 나는 내 정원에 홀로 있다.

그리고 태양은 내 손 위에서 어두운 불길로 타오른다.

 

 

동물이 웃는다(1920)

 

 

 세상이 웃는다.

세상은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즐겁다.

입술이 열리고, 제 날개를 펼치고는 다시 착륙한다.

 

젊은 입술들이 다시 착륙한다.

늙은 입술들이 다시 착륙한다.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찡그린 얼굴로부터 기쁨을 펼치면서.

지상의 모든 장소에서

털이 흔들리고, 양털이 춤을 추고

새들은 제 깃털을 떨군다.

 

동물 한 마리도 웃으며

저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세상이 웃는다.

동물 한 마리도 웃는다.

동물 한 마리가 달아난다.

 

 

성(性)의 평등 (1924)

 

 

  네 눈은 어딘지 모를 나라의 출신

  그곳에서는 누구도 시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어

  눈의 아름다움, 돌의 아름다움,

  물방울의 아름다움, 벽장 안 진주의 아름다움도 알지 못했지,

 

  알몸의 뼈대 없는 돌멩이들, 오 내 조각상이여,

  눈부신 태양이 네게 거울이 되었다가

  저녁의 힘에 굴복한 것 같다면

  그건 네 얼굴이 눈감았기 때문이지, 오 쓰러진 조각상이여

 

  내 사랑으로 내 날것의 계책들로.

  내 미동 없는 욕망은 네 마지막 받침대

  하여 나는 전쟁 없이 너를 가져가네,

  내 나약함으로 끊어지고 내 인연들로 붙들린 오 내 이미지여.

  <  >

 

 

약간 일그러진 얼굴(1932)

 

 

  슬픔이여 잘 가

  슬픔이여 어서 와

  너는 천장의 윤곽 속에 새겨져 있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눈 속에 새겨져 있네

  너는 완전히 비참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가장 가엾은 입술이

  미소로 네게 알리고 있으니까

  슬픔이여 어서 와

  온순한 육체들의 사랑

  사랑의 힘이 지닌

  다정함이 육체 없는 괴물처럼

  솟아나네

  낙담한 얼굴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얼굴이여.

  <  >

 

 

나는 어떻게 되었던가? (1938)

 

 

 

  시간이 늦었어 하늘이 방을 떠나고 있어

  오늘 저녁 나느 나의 염소들을 팔아야 해

  나는 섬세한 빛의

  무리를 따라 걸어가고 있지

  나를 인도하던 나무들이

  문을 닫았어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스럽지

 

  오늘 저녁 나는 특별한 밤을 만들 거야

  태양처럼 형체가 없는

  나의 밤을

  여자 농부들의 손 아래에서 빚어진 둥근 언덕 안에 담긴 모

든 밤

  나 자신을 잊는 완벽한 모든 밤을

 

  정지한 무희와 그녀 다리의 무게

  만일 내가 그녀에게 입맞춤하러 간다면

  그녀의 경박한 공범자들이 그녀 주위를 서성이겠지

 

  그녀들은 샹들리에의 줄을 타고 높은 곳에서 어른거리겠지

  나는 바닥과 지붕을 검은색으로 표시할 거야

  검은색으로 그리고 휴식과 부재와 행복으로

  손바닥과 눈꺼풀 사이 쾌락의 무리는

  잠에 이르는 길 전부를 차지하고 있네

 

  오늘 저녁 나는 눈(雪) 속에서 불을 피울 거야.

  <  >

 

 

이곳에 살기 위하여(1940)

 

                                              Ⅰ

 

  창공이 나를 버렸을 때, 나는 불을 피웠네,

  그의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의 어둠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

  더욱 잘 살기 위한 불을.

 

  낮이 내게 베풀어 준 모든 것을 나는 불에게 바쳤지.

  숲, 덤불, 보리밭, 포도밭,

  보금자리들과 그들의 새, 집들과 그들의 열쇠,

  벌레, 꽃, 모피, 축제.

 

  나는 불꽃이 파닥거리며 튀는 소리만으로,

  불꽃의 열기가 뿜어내는 냄새만으로 살았지.

  나는 흐르지 않는 물속에 침몰하는 선박과 같아,

  죽은 자처럼 단 하나의 원소만을 가졌네.

 

 

                                              Ⅴ

 

  어떠한 인간도 사라지지 않으며

  어떠한 인간도 자신 안에서 잊히지 않으며

  어떠한 그림자도 투명하지 않다

 

  나는 나밖에 없는 곳에서 사람들을 본다

  내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부서지고

  나는 매우 감미로운 말들이 내 심각한 목소리와 만나 내는 소

리를 듣는다

  내 눈은 순수한 시선의 망을 받치고 있다

 

  우리는 험난한 산과 바다를 지나간다

  미친 나무들은 맹세하는 내 손과 맞선다

  떠도는 짐승들은 내게 그들 삶의 토막들을 제공한다

  무슨 상관인가 내 이미지가 늘어났던 것이

  무슨 상관인가 자연과 거울이 흐려졌던 것이

  무슨 상관인가 하늘이 비어 있었던 것이 나는 혼자가 아닌

것을.

  <  > 

 

 

사랑의 힘에 대해 말한다(1948)

 

 

 

  내 온갖 고통 사이에 죽음과 나 사이에

  내 절망과 살아갈 이유 사이에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불의와

  인간의 불행이 있다 나의 분노가 있다

 

  스페인의 핏빛을 지닌 마키들*이 있다

  그리스의 하늘 빛깔을 지닌 마키들이 있다

  악을 증오하는 모든 무고한 사람을 위한

  빵 피 하늘 그리고 희망에 대한 권리가 있다

 

  언제나 있는 빛은 곧 꺼지려 하고

  언제나 있는 삶은 거름 ㄴ더미가 되려 하지만

  끝나지 않았던 봄이 다시 태어난다

  새싹이 어둠 속에서 솟아나고 온기가 퍼진다

 

  그리고 온기는 이기주의자들을 이겨 내리라

  그들의 퇴화된 감각이 온기에 저항하지 못하리라

  나는 냉담함을 비웃으며 불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내 살로 이뤄진 너 그 섬세한 의식이여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너 나를 만들어 준 너

  너는 억압도 불의도 참지 않았다

  너는 대지 위의 행복을 꿈꾸며 노래했다

 

  너는 자유롭기를 꿈꾸었고 나는 너를 계승한다.

  <  >

 

-폴 엘뤼아르 Paul Éluard: 1895년 파리 외곽에 있는 생드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이고, 
필명 엘뤼아르는 외할머니 이름에서 따왔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엘뤼아르는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12~1914까지 스위스의 요양원에서 생활했다. 이곳에서 갈라를 만나 1917년 결혼하여 이듬해 딸 세실을 얻었다.
그러나 훗날 갈라가 살바도르 달리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혼, 1934년 뉘슈와 결혼했다.
갈라와 뉘슈는 엘뤼아르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엘뤼아르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에 평화주의 및 자유주의 사상을 품은 첫 시집 
『의무와 불안』(1917)을 발표한다. 그리고 루이 아라공, 앙드레 브르통, 차라 등과 만나면서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한다. 『동물들과 그들의 인간들, 인간들과 그의 동물들』(1920), 『삶의 필연성과 꿈의 결과』(1921) 등의 시집에서 다다이즘 성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1924년에 약 7개월간 혼자 세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잠적한 이유에 대해 별다른 해명 없이 초현실주의 운동에 앞장선다. 이후 1936년까지 초현실주의 절정기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중 걸작으로 꼽히는 시집으로는 『고뇌의 수도』(1926), 『대중의 장미』(1934), 『비옥한 눈』(1936) 등이 있다.
엘뤼아르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을 목격하고 참여 시인으로 변모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전념한다. 1942년 공산당에 재가입하고,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진 『시와 진실 1942』(1942)를 펴낸다. 
1946년 뉘슈가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자 절망과 공허에 빠진다.
1949년 도미니크를 만나 생의 기쁨을 되찾고 그녀와 세 번째 결혼을 했으나 1952년 폐렴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마지막 시집 『끊임없는 시 Ⅱ』(1953)는 사후에 출간된다.

-엘뤼아르는 개인적 사랑과 인류애, 시와 현실적 참여를 결합하면서 현실에 대한 시적 대응을 치열하게 모색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시대에 절망하고 아파한 민중에게 희망과 위안을 안겨 주었다. 한편 엘뤼아르의 시 언어는 소박하고 평이하며 투명하지만 단어들 간의 뜻밖의 조합이나 경구들의 쇄신 등으로 다르게 보기를 구현한다. 그래서 일상적인 말에 숨어 있는 시적 잠재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해독하기 어려운 난해함이나 낯선 이미지를 품고 있다. 이는 엘뤼아르의 시가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고, 시대를 불문하고 오늘날까지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뤼아르의 작품은 참신한 표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엘뤼아르 시 전집》 뒤표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