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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에서 읽은 시13

『현대시』 2024년 9월 호에서 눈에 띈 시: 「불현듯 짐승이」 외 1편(최문자), 「월요일」외 1편(이원), 「동양화」외 1편(고명재), 「찬장의 시」외 2편(안희연). 불현듯 짐승이최문자      사람들이 당신을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지만  나는 당신이 자꾸 사람으로 보여   가끔  당신한테서 툭툭 튀어나오는 짐승  나는 사람만도 못한 그런 짐승이 좋아   그 짐승  그 짐승을 찾으러  당신의 뒤로 가서  더 뒤로 가서  당신을 바라보았어  도대체 어떤 짐승이길래   불현듯   당신은 말했어  사람으로 가는 구간 구간 그들이 서 있어  짐승이 너무 많아  짐승이 자욱해  사람으로 하다가  사람이 부족하면  짐승으로 하다가  짐승이 부족하면  짐승만도 사람만도 못해졌어   어느 날  당신은  이미 눈물이 말라 있고  흘러넘치는 사람의 전원까지 꺼버리고  개처럼 뛰어다니는 당신을 보았어   긴 줄 끝에 텅 빈 자리  사람의 폐를 숨기고 거기 서 있는 당신을 뭐라 부를지.. 2024. 9. 12.
『현대시』 2024년 8월 호에서 눈에 띈 시: 「노아의 연산일기」(함기석), 「올빼미의 눈을 감기려」(김경후), 「영원과 에러」(김선오), 「팀파니 연주자여 내게 사랑을」외 2편(권민경). 노아의 연산일기- 함기석                                         끝없이 폭우가 내렸다  신의 연산놀이, 무더운 덧셈이 시작되었다 하늘이 제 몸의 흙탕물 피를 빼 인간의 땅에 뿌렸다                   온 세상이 홍수에 잠겼다 별들은 색색 눈동자, 은하수 타고 먼 우주로 달아났고                  자연은 가혹한 곱셈에 잠겼다              바람이 회오리쳐 인간의 신전을 습격했다어제와 오늘이 용이 되어 내려왔다 내일의 불을 뿜으며              하루를 빛과 어둠으로 나눈 왕이 타죽고노아는 여자와 배를 나누었다 외로운 괄호 내가 태어났다                                 { }                    .. 2024. 8. 20.
『문학동네』2024년 여름호(제31권 제2호)에서 눈에 눈에 띈 시;「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 「야적장」(강지혜)& 「선영線影」, 「나와 평생 보낼 유리」 (박규현) & 「신과 함께」, 「바람 나무 해파리 영혼」 (변혜지). 「  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 강지혜       안녕하세요 내가 그 야적장을 낳은 여자예요 야적장은 잘 있나요 벽돌과 모래와 덤프트럭과 철근과 전선 드럼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뼈와 기쁨이 아직 잘 살아 있나요 야적장에게 전해주세요 우리 한바탕 울고 나면 너도 나도 죽진 않을 수 있다고 깊은 잠을 자라고 내가 어떻게이 시간까지 잤지 되묻게 되는 잠을 자라고 이제 내가 옆에 있겠다고 건물이 되지 못한 건축자재가 쌓인 곳에서도 광대풀 꽃은 지겹게 살아 있었다 제초제를 뿌려도 그때뿐 뿌리를 들어내도 그때뿐 모든 씨앗을 막을수는 없으니까     야적장 둘레는 철근과 철판으로 엮여 있고 비를 맞고 눈을 맞아도 철들은 녹슬지 않았다 야적장의 외부를 관리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도야.. 2024. 8. 2.
『창작과 비평』 2024년 여름호(통권 204호)에서 눈에 띄는 시: 「최전선」 외, (김수우) & 「언덕 위 재개발지역」 외, (박형준), & ,「여름, 여름 아이」 외, (송정원), 「사운드트랙」외 (한여진). 김수우 시인: 1959년 부산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 『뿌리주의자』 등이 있음. 최전선     바구미 한마리 모니터 앞을 기어간다 수상하다, 느릿느릿   오래된 만행인 듯 어린 척후병인 듯 돌아본다   다음 날 선풍기 옆에 또 한마리 서성인다 조심조심, 의아하다   부엌서 베란다서 자꾸 마주치는 여섯개 발목을 가진 점, 점들, 점들   밤을 새웠는지 큰 산을 넘었는지 비틀비틀, 어디서 출발했을까   나흘 만에 그 첫 길을 발견한 날 후두염이 시작됐다   묵은 쌀 봉지에서 새까맣게 기어나온 무수한 바구미의 무수한 이데아   그 치밀한 절망 그 꼬깃꼬깃한 혁명을 막을 수 있을까   모든 고독은, 모든 모순은 최전선을 가지고 있다   우끄라이.. 2024.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