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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무덤은 나를 꺼내려 하고
개인의 자격으로 나는 무덤 같은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공동체
자살은 국가에 반역하는 과오라는 말을 부정하며 주카이에게 갔다.
주카이는 내게 죽음처럼 생긴 모자를 건넸다.
혼자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나를 꺼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죽고 싶어, 주카이, 나는 마술사의 모자처럼 모자라지
않으면서 모자란 사람이니까.
사람들은 늘 내가 보는 앞에서 떠나가, 그때마다 이미
죽은 생각은 무릎을 웅크리며 "그런데 무덤은 왜 공동체처
럼 몰려 있는 거지?"
죽어서도 국가를 만드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잡초처럼
뽑힌 기분이야, 주카이
공동체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무덤은 나를 꺼내려 하고
개인의 자격으로 나는 무덤 같은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정말 죽고 싶었는데, 망각이 위로가 되는 곳에서도 나의
우울은 2센티나 자랐지,
온몸이 붓지 않을 정도로만 실패한 나는 네 이름을 불
렀는데, 주카이,
네 이름만 부르면 죽고 싶어, 모자 안에서보다 더 모자
같아졌는데,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준비되지 않는 마술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마술이기 때문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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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시에 목이 만져지지 않는다면 밤새 어디론가 돌아다니다
아침이 되어서야 제자리로 돌아온 목이 몸에 불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것이라고 했다.
방
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석탄, 곰팡이, 울타리, 의뭉스러
워, 거미, 송곳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묘혈(墓穴)이라고도 불렀다. 참고로 나는 묘혈의 현대어
는 염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금서처럼 갇혀 있다. 발견되지 않은 능에서 찾은 금서는
묶어 둔 혓바닥 혹은 축축한 살갗이다. 묶어 둔 혓바닥을 펼
쳐 보려는 사람을 축축한 살갗으로 만드는 사람에 대해 들
려준 사람이 있었다. 정전(正典)이 정전(停電)이 되지 않게 이
야기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인지시키며,
그 사람은 열두 동물을 이십사 시간 안에 채워 넣은 다
음 토끼를 고양이로 바꾼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묘
시에 목이 만져지지 않는다면 밤새 어디론가 돌아다니다
아침이 되어서야 제자리로 돌아온 목이 몸에 불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기웃거리는 목처럼 내내
내 곁을 서성거려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은 애도를 표했다.
애도가 사람의 몸처럼 누워 있다. 사람처럼 습하고 어둡
게. 그래서 금기시하는 관습이 생겼다. 금기는 선택 사항이
기는 하지만 금지(禁止)에 가깝다.
금지(禁止)에서 금지(金地)가 되어 가는 사람에게 나는
종교 없는 믿음을 발견한다. 늘 난항인 발견에 예를 갖추
는 사람이 되도록 한다. 유독(幽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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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나를 조였는데
나는 문을 닫았는데
겹쳐 놓은 자궁 같다
마니코미오(manicomio)
그들은 나를 폐쇄된 마니코미오로 끌고가
광기란 인간의 한 상태이긴 하지만
사회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노랑과 나방을 겹치고, 목과 혀를 겹치고, 원숭이와 구
름을 겹치고······ 확신이 필요해
저녁을 흙 속에 심었다 물 없이도 자라나는 어둠
또 한 번 얼굴에 화분을 쏟아부었다
모자이크처럼 두서없이 예뻐 보여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
하고 싶었는데
화분에 섞인
얼굴 얼굴들
나는 나에게 가능한의 정성을 보여 주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자궁을 나사로 조였다
환자였다 평생 동안
예쁠 일 없다
빠진 머리카락을 모은 적이 있었는데 정체성을 과시하
고 싶어서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침대 위에서 나는 참 거추장스럽게 하얗구나 가라앉혀
야겠구나
부풀어 오르는 위안을 염려해야겠구나
목이 나를 조였는데
나는 문을 닫았는데
겹쳐 놓은 자궁 같다
불쑥
9월
쓰레기통을 뒤지는
11월
(10월은 덜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자존심은 끊어진 혈관가 같아 다락과 앵무새를 겹치고,
왼발과 오른발을 겹치고,
폐와 창을 겹치고 ······ 기다렸다 심홍색의 저녁에 무럭무
럭 마음
쏟아진 얼굴은 또 한 번 악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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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에서 자궁처럼 꺼내어진 나는 탯줄을 끊을 때처럼
스타카토의 폭력에 익숙해지고
알코올
아버지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때, 아버지가 "다음부
터는"이라고 말할 때, 여섯 살 때,
무심코 밟힌 얼굴이 아직도 장롱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찾고 싶어, 장롱을 열면,
나는 오줌처럼 축축한 코
나는 주전자를 쏟고 길 잃어버리고 물구나무서고
장롱을 닫으면 몸통부터 튀어나오는 용수철 같은 아버지
장롱의 입은 다물어라
장롱의 귀는 벽이 되어라
장롱의 눈은 최대한 커다랗게 감아라
장롱에서 자궁처럼 꺼내어진 나는 탯줄을 끊을 때처럼
스타카토의 폭력에 익숙해지고
나는 나를 철창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는 나를 계단에서 굴러 떨어뜨리고
덜컥덜컥 떨어져 있지만 붙어 있는 입술로
덕지덕지 이마 옆의 귀 앞의 코를 붙이며
아버지의 방법으로
방법적인 아버지로
아버지처럼 "무지해서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법에 익
숙해지고
내 몸에 알코올을 뿌렸을 때, 라이터로 오래 열을 가했
을 때, 무지개 같은 여섯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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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처럼 극단적으로 유순하고
사육제처럼 즐거움의 가면을 쓰고 불의의 사고를 기대
하는 경향이 있다
고백
밥 먹다 웃다 수다 떨다
칼로 눈동자를 도려냈다
악의는 없어?
물음은 칼이다
무분별해서 우스워 보이고 계속, 계속, 나는
이런 얼굴
저런 웃음
낄낄낄 꽃다발처럼 떨고 있는 고백이다
가령, 60도로 기울어진 언덕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인사
했다고 하자
나는, 사랑은 60도 각도에서 시작된다,라고, 고백했다고
하자
아니, 그런 종류의 고백이 아니라고 정정했다고 하자
부딪치는 순간 잠깐만요 고개를 갸웃거리고
스쳐 지나가고 함부로 인연을 믿고
정말? 비가 내리면
발랄하게, 치욕스럽게,
어떤 것이든 반성해야 해?
되묻는 고백은 모서리
움푹움푹 파먹힌 기분
그러므로
들쥐 들쥐들
입술 입술들
덫이 필요하다고 하자
쓰다듬으면 얼굴 할퀴는 고양이가 등장해
모자를 쓰고 모래가 되었다가 유충처럼 산양의 입을 뒤
집은 다음 다시 모자를 쓰고
벗고
유쾌해
정말? 무례해
칼로
눈동자를
도려내고
아무렇지 않아서 기만이다
아니, 기만이 아니다, 갸웃거리는 고개를 잡고서
기어코, 기만이다, 고백은
채식주의자처럼 극단적으로 유순하고
사육제처럼 즐거움의 가면을 쓰고 불의의 사고를 기대
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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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박 시인: 201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2019년 『이해할 차례이다』로 김수영 문학상 수상. 이후 『아름답습니까』
『사랑과 시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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