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가로질러온 바람이 허공에 모래먼지를 뿌리고 지나
갔다. 이내 그가 적은 말들이 바람에 불려 쓸려나갔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아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산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복잡한 수식이 적힌 노
트를 들여다보며 아이는 중력 암흑물질 벌레구멍 따위를 떠
올리고 있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소
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의 사방연속무늬를 헤아리고 있었다.
소년의 머릿속 은하계 저편에서 죽어가는 별이 다른 우주
로 건너가기 위해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청년은 욕실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세면대에 한 방울씩 수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그는 언젠가 교수대 위
에서 자기 목을 죄어들어오던 밧줄의 섬뜩한 촉감을 기억
해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주름진 손으로 백지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사막을 가로질러온 바람이 허공에 모래먼지를 뿌리고 지나
갔다. 이내 그가 적은 말들이 바람에 불려 쓸려나갔다. 나
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붙박이장을 열고
두터운 옷들을 헤치고 들어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멀
리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고 비행기 편대가 날아
와 공습을 시작했다. 개가 짖어댔고 고양이가 담벼락 너머
로 사라졌고 전선 위의 새들이 깃을 치며 날아올랐고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밤샘 작업을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힘겹게 침대를 향해 가다가 거실 벽에 걸린
전신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을 보았다. 중력 암흑물질 벌
레구멍 같은 말들이 빠르게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어
둑한 방 한가운데 먼 혹성에서 온 노인이 불길한 미소를 띤
채 아득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마
지막 문제였다.
남진우 시인: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사랑의 어두운 저편』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타오르는 책』 『죽은 자를 위한 기도』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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