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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폴의 슬픔을 멈추게 할까. 어떤 말로 폴을 안도하게 할까.
어떤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며, 폴의 손에 쥐여 줄까.
이 마법 자두 하나로 울고 있는 이 밤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운명과 자두의 힘
-서사시의 형식으로
······ 부분 생략 ······
아무도 모르겠지만, 크로스베너 부인은 짐작도 하지 못
할 테지만, 매일 밤 폴은 엄마를 그리워한다. 폴이 매일
밤 뭔가를 쥐고 자야 하는 건 그것 때문이다. 폴은 매일
떨면서 잔다. 내 심장과 폴의 심장은 함께 떤다. 폴이 태어
나 한 달이 되었을 때, 6개월이 되었을 때, 한 살이 되고
세 살이 되었을 때도, 부인은 폴을 안아 준 적이 없다. 폴
을 안아 주는 건 하녀가 하는 것이고, 폴에게는 전문 교
사들이 있고, 폴에게는 멋진 저택이 있다.
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고 인류가 존경하는 아
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업적을 길이길이 빛내는 시대와 기
술이 있는데, 폴은 손톱을 물어뜯는다. 자기 머리카락을 뽑는
다. 구석에 들어가 무섭다고 운다. 그래서 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운다. 폴이 울면 사실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나의 나라가 없어진 것보다, 나의 어
머니가 무참히 버려진 것보다, 나의 이름을 아무도 부르지
않는 것보다, 나는 더 힘들다.
폴과 나, 우리는 끝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했지만, 세상
이 이미 다 끝날 걸 알고 있다. 다른 곳도 어차피 똑같
을 테지만, 떠나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끝난
걸 계속 확인하고, 계속 더 봐야 하기 때문에, 뒤척여 보
고 뒤집어 보고, 뒤돌아 가 봐야 하기 때문에, 떠나고 나
면 떠나는 곳으 다시 상상해 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잠시
나마 좀 편안해지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열매를 찾아야 한다. 안 그러면 폴이 운다. 폴
이 잠을 못 잔다. 폴이 울면 모두가 깨어나고 모두가 피곤
하고 모두가 분노하고 모두가 나의 책임으로 돌린다. 모두
가 나를 공격한다. 나의 죄는 그렇게 성립된다. 모두의 합
창으로, 모두의 일치로, 무참하게 만들어진다. 폴의 불행
은 나의 불행이고 나는 그 불행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
때, 나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돌멩이 하나를 사시나무
밑에서 찾았다. 손톱으로 긁으면 쉽게 가루가 되는 것인
데, 좀 특별하게 색이 곱다. 나는 돌을 쥐고 뛰었다. 단단
히 동그랗게 뭉치고 매만지며 뛰었다.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모든 걸 다해. 제정신이 아니었
다. 달님. 폴을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잠을 못 잔다고 죽는
건 아닌데, 아니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찾은 돌
이, 마치 내가 찾은 나라가 되는 것 마냥. 귀중한 나의 나
라가 12시가 되면 연기로 변해서 사라질까 봐. 나의 마법
이 너무 빨리 식어 버릴까 봐. 나는 호텔 로비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절실했다. 외국인 직원에게 통하지 않는 말로, 몸짓으
로, 총난리 법석을 떨어서, 겨우 반짝이는 호일 껍데기를
얻었다. 돌멩이에 호일을 감쌌다. 은빛 호일을 감싼 돌멩이
는 은빛 열매처럼 보였다. 근사했다.
언젠가 폴이 그림으로 그렸던 내 고향의 은색 자두처
럼. 내가 들려준 나의 고향 이야기를 마법의 순간으로 만
들었던 그 아이. 이 마법의 자두는 폭우에도 죽지 않는
새가 낳은 알 같기도 하고, 초겨울 흐려진 달이 빌려준 알
맹이 같기도 하다. 어떤 말로 이 자두를 소개할까. 어떻게
폴의 슬픔을 멈추게 할까. 어떤 말로 폴을 안도하게 할까.
어떤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며, 폴의 손에 쥐여 줄까. 이
마법 자두 하나로 울고 있는 이 밤을 어떻게 멈출 수 있
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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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부담 없이
감시와 작용과 티타임, 보닛 위의 낮잠 자는 길고양이들
미래가 끝난 다음에도
귀여운 것보다 좀 강직한 거
흠, 타기는 포스터 속에서
굵은 것, 떠는 것, 공기와 멀어지는 것
빈집의 가스 밸브와 라디오 디제이와 바람과 빗방울이
키워 내는 것, 가져 보는 거
모처럼 부담 없이
감시와 작용과 티타임, 보닛 위의 낮잠 자는 길고양이들
물티슈로 지워 보는 나의 삶과 나의 소식
흠, 타기는 포스터 속에서
넘치는 것, 깨끗한 사과를 피워 내는 거
숯불을 가까이 쳐다보다, 코끝도 타 버리고
이내 타기는 쿵쿵 쾅콩 벽을 뚫고 날아가며
약속 없이
손전등과 가로등이 필요한 사람
그 밑에서 장기를 두는 차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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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극장은 딱히 어떤 소재나 주제를 따지지는 않아
그저 표를 많이 팔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나는 지금 열여섯 칸의 장관을 이어 붙인 네모난 무
대를 걸레로 닦고 있어
조약돌 소극장
- 서사시의 형식으로
비가 와. 구름은 보이지 않지만, 어두워진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자동차 위로, 사라지는 신발 옆으로 비가 떨
어져
저 멀리엔 지붕 위에서 망치질을 하는 노인이 있어. 땅
탕 땅 탕 규칙적으로 멈추긴 하지. 노인은 규칙적으로 쉬
고 규칙적으로 깨어 있긴 해. 망치질 소리와 빗소리가 이
렇게 멈추지 않고 나흘째를 넘기는 어떤 밤이면, 요정들
이 나타난다는데, 그것도 맑고 예쁜 색색의 사탕 요정들
이 나타나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가져간다는데,
그러고선 사람들의 죽은 눈동자들이 다시 겨울의 빗방
울로 태어나,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서성인대. 그래
서 사람들은 빗방울로 만든 음악을 듣나 봐.
내가 사는 곳은
도쿄에서 서쪽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
좀 시끄럽고 화려한 곳이야.
이 골목엔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소극장이 있었어.
대부분 지하였고 돈이 없는 소극장은 지하 주차장
카센터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지
가부키나 노, 그런 전통극만 올리는 곳도 있었고
코미디극이나
로맨스극을 올리는 곳 등등 다채로웠어
나는 지금 무대를 닦고 있어
우리 극장은 딱히 어떤 소재나 주제를 따지지는 않아
그저 표를 많이 팔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나는 지금 열여섯 칸의 장관을 이어 붙인 네모난 무
대를 걸레로 닦고 있어
마치 상추 이파리를 타고 가는 산호랑이 애벌레처럼
헉, 헉,
느리게, 느리게
멀리서 어떤 외계인이나 신이
이런 나를 보고 있다면
나의 고통 따윈 관심 없이
약간은 특이한 행성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봐 줄 수도 있을 거야
처음엔 두 칸씩 야무지게 닦다가
팔목과 허리가 아플 때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사선으로 짧게 여기저기 엉망진창의 걸레질로
나름, 즐거운 리듬을 찾아 무대를 닦곤 했어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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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 속삭이는 걸 잘해
나는 누구보다 이용하는 걸 잘하지
내가 이룬 감동은 모든 게 거래
현장은 실체의 진리가 되는데
까마귀라는 언어
0.
개척지
농노들의 성지
이제부터 이 구역의 개념을 바로 잡고자 하여
잘하면 나는 거, 높이 나는 거, 그런 걸 보여 줄게
아직도 울고 있는
어린 편견과 상실에게 포클레인 열여덟 조각을 선물해
주고 싶어
다 맞추면 모래 놀이 하고 있으렴
1.
나는 누구보다 속삭이는 걸 잘해
나는 누구보다 이용하는 걸 잘하지
내가 이룬 감동은 모든 게 거래
현장은 실체의 진리가 되는데
너는 기계실에서
울면서 전화했지
나를 포기할 순 없다고
참, 고마운 말씀
그렇다면 우리가 싸움 구경하다가
놓친
날갯죽지 격파를 새롭게 준비하고자 한다
영업 나갔다가 실패한 검은 물소들의 표정도
양동이를 들고 있는 하늘도
흐린 약도만 쳐다보지 말고
뜨끔뜨끔
시원한 유머가 필요한 인생이지만
2.
욕조의 미학은 무덤이 아니다
유령의 친구도 유리가 아니다
다만 얇고 가벼운 숲이었다 얇고 가벼운 털로 가득했다
그 숲에서 죽은 동생과 형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러워
서 내가 눈물을 흘리면, 눈물방울이 통통 통후추가 되어
버려서, 인간들의 식욕에 오래 축적되니
나는 근사한 자연도, 갈등도 아니다
비 오는 날이면 까만 입술을 날렸지
언어가 늘어날까 봐
비 오는 날이면 우울과 기쁨에게 딥키스를 시켰다
너는 또 기계실에서
울면서 전화했지
나를 포기할 순 없다고
우리가 만나선 안된다
참, 당연한 말씀
3.
긴 밤에는 라이프니츠를 존경하던 개념서를 정리했다
왜 이해가 되지 않냐고
신소재공학과 소요학파의 진지함, 그니깐 이걸 종합하
여 공통감각을 도출하면, 새로운 소재를 창조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창공의 혁명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감동이 반복될 땐
우리들의 텁텁한 갑상선에
겨울을 담가 두기로 하자
4.
벽이 많으면 벽을 깬다
차례차례
순수는 깨끗한 게 아니지
순리는 미끄러지고
미디어와 탈주
미래와 메모
중요한 말은 귀중한 법이다 나의 본질은 고가 밑에 쌓
아 둔 철근이다
뜨끈뜨끈 후루룩 삼키는 것이지
고가가 무겁게 흔들리면 젖은 산에 머리띠로 해 주면
된다
세계의 美 따위 반납하는 것이다
< >
심전도
형광등
개방 시간, 기회 논리
에칭프레소
연두색 사과는 테이블에 있고 찌꺼기는 믹서 안에 들
어 있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온다
희곡을 외우고 있다
응, 그러니까 통조림을 들고 한참 서 있다 공통되는 부
분을 공감이라고 하나
통계적으로 비율이 높은 것
가가운 서사를 이해하며
편의점에 왔다 갔다 한다
결말이 있을 거라고
티브이 속, 면봉을 들고 있는 해마가 나를 본다
혁신인가
오해인가
잠깐이라도 울면 안 된다
테니스 장
활기찬 사람들
모처럼
몽환과 행동 사이에서
등에 번거로운 사람이 있다 날카로운 뚜껑을 버려야 하
는데 난처해져서, 뛴다 흘리지 않으려고 뛴다 발목 아픈
걸 좀 줄이려고
숨어서 모르는 짓을 하고 와서 악마를 잘라 달라고 한
다 바구니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돌아서서 팔꿈치만 흔
든다
풍선을 해골 같아 어서 집어 치워,
갑자기 나는 취한 척한다 감정이 많은 것처럼
치약을 많이 쓰면 덧니가 없어진다는데, 좋은데 경멸하
는 거, 둘 다 믿는다
생명성
접촉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한다
끝내
제조일자와 어떤 사람의 생일을 같게 한다 나는 통조림
을 들고 서 있다 취재는 아니다 통조림을 내 신념을 모른다
심전도
형광등
개방 시간, 기회 논리
가로등은
다친 아이를 비춰 주고 있다
현기증이 희곡을 외운다, 일어서서, 어떤 이들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여 적당한 우정과 친화에 즐
거워했고
나는 통조림을 들고 한참 서 있다
현실인지 추상인지, 대결과 문제는 있는지
생활의 논란
몽환과 행동 사이에서
죽은 돼지에게 약물을 투여한다
말투를 바꾼다
죽을 때까지 친모를 찾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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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시인: 2000년 《월간문학》 희곡 부문 신인상을, 2015년 《쿨투라》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
시집으로 『오트 쿠튀르』 『이렇게나 뽀송해』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 이론서 『한국 시극 작품에 나타난 공간성』.
제4회 박상륭상, 제19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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