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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빈 시인의 시■ 커밍아웃 & 미니멀리스트 & 일곱 베일의 숲 & 바깥의 사과 & 밤의 팔레트 옷장에서 알록달록한 비밀이 흘러나와자라지 않는 발목 아래로, 말은 잊은 양탄자 사이로기꺼이 불가능한 토마토에게로  커밍아웃      축축한 비밀 잘 데리고 있거든  일찌감치 날짜가 지난 토마토 들키지 않고  물컹한 표정은 냉장고에 두고  나는 현관문을 확인해야 해  아픈 적 없는 내일을 마중 나가며   취한 바람이 호기롭게 골목을 휘돌아 나갈 때  나뭇잎이 되고 싶어 아무 데서나 바스러지는  우리가 서로를 껴안을 때 흔들리는 그늘  더 낮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가는데   아무도 모르는 놀이터에서 치마를 까고 그네를 탔어  미끄럼틀과 시소의 표정  낮지도 높지도 않은 마음을 가지자  혼자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면   얼음 땡,  크레파스 냄새 나는 빨주노초 아이들  웃음먼지를 풍기며 뛰어나가고  배 속에선 만.. 2024. 5. 11.
■ 배수연 시인의 시 ■ 조이와의 키스 & 청혼 & 조이라고 말하면 조이라고 & 그는 참 좋은 토스트였습니다 & 야간 비행 우리의 키스는 조이가 매일 쏟았던 홍차의 테두리를 더 진하게, 진하게 그려 줄 것이다                                                               조이와의 키스    *  조이의 어금니 중 하나는 박하사탕일 것이다  나는 늘 그 안쪽을 열심히 핥아 주고 싶었다  조이네 집 아치 위로 무거워지는 장미  조이는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  나는 조이네 집 뒤에 서서 팔목을 흔드는 널린 이불  피로해진 그 애가 눈을 감으면 비밀이 눈뜨는 오후의 티타임    졸린 조이는 테이블 위로 홍차들 쏟을 것이다    테이블보는 내 옆에 널릴 것이고 나와 태양은 숨은 얼룩을 다시 찾아낼 것이다   *    자주 물구나무를 서는 조이    다리 사이로 발목을 감싸는 매끄.. 2024. 5. 10.
■ 이소호 시인의 시 ■ 플라스틱 하우스 & 홈 스위트 홈 &어느 고독한 게이트볼 선수의 일대기 & 컴백홈 우리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플라스틱 하우스     조심해요 엄마  하얀 선에서 떨어지면 죽어요  닳은 무릎으로 4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집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한쪽 다리가 끊긴 개미는 기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배를 깔고 누워 잘린 천을 모아  꽃잎을 만들며 말했다   여름에는 쥐가 없어서 좋아   우리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는 방 안에 꼼짝 않고 밤새 노안은 절대로 살필 수없을 만한 크기의 글씨로 빈 바닥을 조용히 채웠다   살려주세요 홈 스위트 홈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   내.. 2024. 5. 8.
■ 황인찬 시인의 시 ■ 이미지 사진 & 받아쓰기 & 호프는 독일어지만 호프집은 한국어다 &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사진관에 모이는 것으로 마음을 남기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내려오는 저녁이 하나 휘어지는 빛이 둘  이미지 사진     아름다움 하나  나무의자 둘   잠시 찾아와서 내려앉는 빛   이 장면은 폐기되었고   이해하자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 하나  서양 난 화분이 쓰러진 모양이 둘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니(다 날아가고 눈 코 입만남은 사진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날들의 기억)   사진관에 모이는 것으로 마음을 남기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내려오는 저녁이 하나 휘어지는 빛이 둘   (이 순간을 어떤 영화에서 본 것만 같다고 잠시 느꼈을 때, 그것이 어떤 시절에만 가능한 착각이라는 점을 뒤늦게알아차리고 나서의 부끄러움)   죽은 아름다움 하나  부서진 나무 의자 다섯   자꾸 뭘 기억하려고 그.. 2024.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