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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

■ 배수연 시인의 시 ■ 조이와의 키스 & 청혼 & 조이라고 말하면 조이라고 & 그는 참 좋은 토스트였습니다 & 야간 비행

by 시 박스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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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는 연인의 실루엣

 

우리의 키스는 조이가 매일 쏟았던 홍차의 테두리를 더
진하게, 진하게 그려 줄 것이다

                                                               

조이와의 키스

 

 

  *

  조이의 어금니 중 하나는 박하사탕일 것이다

  나는 늘 그 안쪽을 열심히 핥아 주고 싶었다

  조이네 집 아치 위로 무거워지는 장미

  조이는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까

 

  *

  나는 조이네 집 뒤에 서서 팔목을 흔드는 널린 이불

  피로해진 그 애가 눈을 감으면 비밀이 눈뜨는 오후의 티

타임 

  졸린 조이는 테이블 위로 홍차들 쏟을 것이다 

  테이블보는 내 옆에 널릴 것이고 나와 태양은 숨은 얼룩

을 다시 찾아낼 것이다

 

  * 

  자주 물구나무를 서는 조이 

  다리 사이로 발목을 감싸는 매끄러운 얼굴 

  거꾸로 선 사이 신발 위로 구름처럼 흘러갔을 조이의 유년 

  나는 기억나지 않는 꿈속에서도 늘 그 시간을 베껴 그렸다

 

  * 

  오늘 조이의 눈은 새 자전거처럼 현관에 기대어 있다

 

  * 

  분명 키스를 아껴 두었을 조이 

  조이의 첫 키스는 아치 위로 핀 장미 꽃잎을 모두 떨어

뜨릴 것이다 

  그 날이 다가오면 나는 빨랫줄에서 내려와 무척 하얄 것

이고 조금은 지쳐 있을 것이다 

  우리의 키스는 조이가 매일 쏟았던 홍차의 테두리를 더

진하게, 진하게 그려 줄 것이다

 

  조이와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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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청혼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쉿, 숲 속의 양들이 춤을 추고 있네 

  캐럴에 흔들리는 종처럼 신이 나기 시작했어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볼래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바람 없는 날의 나뭇잎은 정말 

  움직이지 않는 걸까 

  우리가 함께 서 있을 때에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나의 지친 헝겊들을 네가 알아봐

줄까 

  너의 외투 속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 

  그 새의 둥지를 부수지 않고 

  너를 꼭 안아 줄 수 있을까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큼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양들은 색 전구를 켜러 집으로 돌아가고 

  목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남았구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아직 잊지 않았다면 

  매일매일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함께 호호 불어 가며 익은 앵두를 먹자

 

  수많은 낮과 밤 

  피어오른 수증기가 우리의 머리에 폭설로 앉는 동안 

  나의 눈은 너의 곁에서 

  깜빡깜빡 입맞춤을 하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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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라고 말하면

  손을 내밀면

  아래로 바람이 많이도 지나가네

 

조이라고 말하면 조이라고

 

 

 

  조이라고 말하면

  눈을 감으면

  해를 보고 아픈 눈이 그리는 잔상

  긴 코를 하고

 

  몰약을 타러 줄을 섰던 오후

  탐지견에 목이 물려 마법사는 죽었다고

  줄을 선 채 장례를 치르자 또 다른 마법사가 선출됐다

 

  조이라고 말하면

  손을 내밀면

  아래로 바람이 많이도 지나가네

  다리를 털리는 일 익숙하지만

  빈 주머니 요란하게 부풀 때마다

  나는 머쓱하게 웃어야 했다

 

  조이라고 말하고

  욕조를 채우면 수도꼭지처럼

  긴 콧물을 하고

  내가 죽인 화초들을 욕조 안에 넣는 손

 

  조이

  그것들은 모두 약을 타러 간 사이에 죽은 거야

  수가 놓인 소매에 코를 묻히며

  우린 열심히 열심히 줄을 섰잖아

  네가 떠나던 날 뒤통수에 대고 외쳤지만

  너는 매일 저녁밥을 지어 돌아오고

 

  어둠 속에서

  나를 건널 수 있게 해 줘

  지구라는 바다에 긴 성호를 긋는 밤

 

  조이라고 말하면

  그래 나는 조이

  대양을 벌려 한 번 더 말해 주는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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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긴 속살이 뿌옇게 풀어지는 것을

  포악한 오리와 잉어들이 달려드는 것을

  우리는 막지 못했습니다

 

그는 참 좋은 토스트였습니다

 

 

 

  그는 참 좋은 토스트였습니다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못난이 핫도그가 추도문을 읽었

습니다

 

  그는 아름다웠지만 뽐내지 않았고

  그는 가진 것이 적었지만 인색하지 않았고

  그는 경직된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아, 솜사탕은 이 대목이 너무 슬픈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아랫도리를 적셔 버렸습니다

 

  토스트의 두 귀는 얼마나 적당한 갈색이었는지

  아침 햇살에 윤이 나는 정수리는 얼마나 단정했는지

  그의 가슴은 얼마나 바삭하고 부드러웠는지

  토스트기에서 튀어 오르던 그의 명랑한 까꿍

 

  모두가 눈을 감고 그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가 모는 버스는 그를 닮은 진실된 사각형이었습니다

  버스 안은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고

  우리는 따뜻한 배를 두드리며 아기 엉덩이 같은 일출을

함께 본 친구였습니다

  아, 누가 그의 버스를 호수로 몰게 했습니까?

  그날따라 호수의 우유는 왜 그리 불어났던 건가요?

  그의 성긴 속살이 뿌옇게 풀어지는 것을

  포악한 오리와 잉어들이 달려드는 것을

  우리는 막지 못했습니다

 

  성가가 울려 퍼지고

  딸기 잼과 땅콩 버터는 이마를 맞대고 흐느꼈습니다

  가로세로 4×6, 호두나무로 짠 관 위로 무수한 국화꽃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토스트가 없는 아침을 맞아야 합니다

  차가운 시리얼을 삼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그는 참 좋은 토스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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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밑으로 캄캄한 하늘이 있다면

  오늘 나의 비행기에 올라타

  네가 다니던 골목들을 날자

 

야간 비행

 

 

 

  엄마는

  다리 저는 사람보다

  다리 저는 짐승을 더 안타까워했다

 

  지이이잉 형광등의 엔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손톱 아래에 난 사마귀를 꾹 눌렀다

  창의 겨드랑이가 벌컥 열리고

 

  팔꿈치가 까칠한 남자와

  요구르트 마차를 끄는 여자가 사는 집

  포도 알보다 더 새카만 길고양이의 점프

 

  밤 골목은 활주로 없이도 날 수 있는

  아름다운 협곡

 

  개의 눈꺼풀에도 다래끼가 난다는 것을

  함께 살던 수롱이를 보고 알았다

  얇은 눈꺼풀에 입을 맞출 때마다

  단단하고 매끈한 눈동자가 착하게 감기는 짧은 인사

 

  그날 개는 인사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우리는 그를 땅속에 묻어 두고는

  하늘로 갔다고 이야기했다

 

  땅 밑으로 캄캄한 하늘이 있다면

  오늘 나의 비행기에 올라타

  네가 다니던 골목들을 날자

  나는 너의 조수가 되고

  

  너의 두 눈이 감기는 것은

  단지 속력이 너무 빠른 탓

  우리는 실눈을 뜨고 밤과 골목 사이를 비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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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시인: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으로 『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 『쥐와 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