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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움은 오브제로 단순하게 들고 있기. 미
신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죽은 자의 혼령이 떠돌아다닌다
고 믿었던 무당은 돌을 들어야 했지요.
충돌과 반동*
할머니는 돌이 없는 곳에서 돌을 들고 있다. 모두가 돌
은 아니지만 돌이 존재하는 곳. 할머니는 꼿꼿이 서서 밖
을 내다본다. 나는 할머니의 돌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할
머니는 하반신이 없다. 하반신이 있음에도. 돌이 할머니의
상반신을 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돌은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액자 속의 두 손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반복이다.
들고 있는 사물은 이제는 잊혔지만 돌이라 불렸던 것이
라고. 지구의 유물처럼 남은 거라고.
거기는 돌이 없구나. 내가 손을 내밀자 거기에 돌이 있
다. 59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30년생. 92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30년생. 둘은 이제 동갑이 아니다.
"왜 돌을 들게 했어? 할머니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 커
다란 돌을 들었어?"
내 돌은 할머니의 돌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돌이 반복된다. 할머니가 액자에 들어 있어서. 돌을 든
할머니가 액자가 쳐다봐서. 돌은 영영 눈을 맞추지 못할
텐데.
두 개의 액자를 나란히 걸어 놓은 곳.
먼저 죽은 할머니와 방금 죽은 할머니와 무거운 돌과
더 무거운 돌. 무거움은 오브제로 단순하게 들고 있기. 미
신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죽은 자의 혼령이 떠돌아다닌다
고 믿었던 무당은 돌을 들어야 했지요.
이제 돌은 액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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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돌을 수집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진짜 돌
나는 겉모습입니까 내부입니까
풍화를 겪으면
어떤 것이 상처인지 본질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돌을 수집하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나는 언제부터 나를 갖게 되었습니까
최초의 기억은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흰 가운을 입은 자가 뺨을 때렸습니다
처음 몇 초간은
나를 흔들면서
자신이 흔들릴 줄은 몰랐을 겁니다
돌을 던지고
돌의 항로를 따라 활주로는 길어지고
앞과 뒤가 똑같은 출발선에
나는 서 있어요
비행운을 바라봅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군
방금 이륙한 것처럼
발밑이 뜨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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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철창을 두 손으로 붙잡고) 꼼짝없이 갇혀 있군요.
당신은 덥지 않나요?
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열대야······
선택
Day
간밤에 네가 다녀갔지
현관에 신발이 수십 켤레 있었는데도
발에 맞는 건 하나도 없더라
창문 너머 화단, 때늦게 만개한 장미들 때문에
발바닥까지 뜨거워졌다
잘못 번역된 자막처럼
고장 난 틈새
장미: (철창을 두 손으로 붙잡고) 꼼짝없이 갇혀 있군요.
당신은 덥지 않나요?
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열대야······
조그만 창문에는
우리를 부추기는 습기도 있지
내가 열어 놓고 간 곳으로 쏟아지는 빛
발목이 아파 잠에서 깼는데
그 장면만 빠져 있는
스크린 위
벌거벗은 밤과 더 많은 발가락
나의 독립영화가 비로소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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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가 오기 전부터 구원받은 선민들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견고함
그게 벽이라고
상상선*
문을 연다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가까워지는 당신의 거리
비릿한 쇠 냄새가
내 손을 포박한다
깊숙이 파고드는 문 없는 방의 내부
열려 있으므로
열릴 필요 없는 구멍
메시아가 오기 전부터 구원받은 선민들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견고함
그게 벽이라고
문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를 돌린다
당신에게 돌려주지 못한 칼로
장미가
떨어져 있다
* 180-디르리 룰(degree rule). 영화 문법에서 카메라가 상상선 한쪽에 머
물러 있어야 한다는 180도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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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기억대로
서서히 접히고 서서히 펴지는 종이의 모양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
죽음이 빠져 있는 사전을 본 적 있다
잠을 많이 자면 계속 졸리다 어딘가로 자꾸 쏟아지는 것처럼 액체처럼 계속해서 생겨나는 점의 세계
허물은 어디에 있나 내가 들어가야 할 곳에
지우개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한 사람 얼룩으로 걸어 나가고 구겨진 기억대로
서서히 접히고 서서히 펴지는 종이의 모양
*
장미는 여러 겹의 불면증으로 감싸여 있다
잠을 다 썼으니까
불가능할 것 같던 낮과
가능할 것 같던 밤이 화투 패처럼 섞여 있는
한 잎씩 떨어뜨리며
빚을 갚듯 잠을 끌어다 쓴다
빌리는 것만으로도 꿈이 생긴다
*
처음부터 내 옆에 앉아
종이꽃을 만들던 사람
잘 접으려면
접힐 방향으로 미리 접어야 했다
직선으로
반듯하게 접힌
미로를 따라가면
한 번쯤 와 본 곳 같아
종이가 닫히기 전에
얼마쯤 누워 있었나
꼬깃꼬깃한
무릎을 폈을 때
책 속에서 오래전 잃어버린 개를 발견한다
개는 납작하게 끼워져 있다
구겨진 개의 털을 하나하나 펴 주었더니 목줄을 물고
온다
손금은
오래 목줄을 쥐었던 자국
개가 나를 끌고 산책 간다
내가 얼마나 늙어 버린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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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때만 벗어나는
돌의 상상 속에서
가짜 돌
어제 나는 당신을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흰 가운을 입었다
처음 몇 초간은
몸이 마구 흔들렸고
시끄러운 굉음이 났다
두 귀를 닫았다
아주 잠시 하늘을 날았던 것
정지한 사람들을 본다
돌처럼
쥐고
던지고
빠뜨리고
차 본다
움직일 때만 벗어나는
돌의 상상 속에서
나는 적군
매복 중이다
김석영 시인: 2015년 시와반시 신인상 등단. 시집, 『밤의 영향권』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가 있다.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로 제4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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