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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

■ 마윤지 시인의 시 ■ 아이들 & 여름 촉감 & 여름 방학 & 이 세계를 걱정하는 방법 & 타임 코드

by 시 박스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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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잎과 매미

 

 

시시해

  놀이터에 종을 놓고 돌아왔어

 

  매일매일 생각나

  매일매일 그렸어

 

아이들

 

 

 

  *

  종을 흔들었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어

 

  시시해

  놀이터에 종을 놓고 돌아왔어

 

  매일매일 생각나

  매일매일 그렸어

 

 

  *

  옛날 옛적에 귀신이 살았습니다

  

  귀신이 살아 있어?

 

  아 귀신이 죽었습니다 죽고 나서 귀신이 되었습니다

 

 

  *

  이제 볼 수 있지 휘파람

  둥지에 웅크린 휘파람

  휘파람을

  떨어트려 죽이는 휘파람

  차에 치인 휘파람

  다시 다시

  알을 깨고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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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옷이 따뜻해

  속이 다 비치는데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것같이

 

여름 촉감

 

 

 

  분수 광장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한 줄로 걷는다

 

  물이 솟는 블록을 찾아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가

 

  더 가까이

 

  낮은 환하고

  광장은 캄캄하다

  저 나란함이 빛나기 위해

 

  젖은 옷이 따뜻해

  속이 다 비치는데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것같이

 

  때때로 진동하며

  튀어오르는 물줄기의 전조처럼

  광장 밑에는 사람들이 묻혀 있다

 

  몸의 몸

  더 끝에 있는 몸

 

  어떤 물기둥은

  바른 자세로 고개를 숙인

  기도의 모양

 

  야아 신기해 팔 벌려 봐 되게 무겁다

 

  아이들이 물줄기를 꺾어 햇빛에 뉘인다

 

  한없이 예쁜

  저 입체가 두렵다

  바라볼 뿐인데

 

  있는 힘껏 옷을 쥐어짜고도

  물이 뚝뚝 흐르는 수건을 가방에 넣어

  가장자리로 달려가는 목소리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금방 잊혀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만져지는 건 늘 뒷목

  나타나기 전에 이미 닿아 있는

  <  >

 

 

너 매미가 언제 우는지 알아?

 

  동트기 전부터 아침 먹을 때까지 우는 애가 참매미다

  아침부터 낮까지 우는 매미는 말매미고

여름 방학

 

 

 

  너 매미가 언제 우는지 알아?

 

  동트기 전부터 아침 먹을 때까지 우는 애가 참매미다

  아침부터 낮까지 우는 매미는 말매미고

 

  에스파뇰 공부를 한다고 했지

  우리는 마당에 앉아서

  따르르르 아르르르 한참 연습했다

  보쏘뜨로-스 보쏘뜨라-스

 

  뜨거운 날엔 옥상에 물을 뿌렸다

  크고 넓은 나뭇잎

  1층 대문 밖 골목

  옆집 뒷집에까지 몰래 그렇게 했다

 

  너넨 울면서

  새도 쫓고 더위도 잊는다고 하던데

 

  아니야 매미는 떨면서 소리를 내는 거야

 

  가득 찬 고무 대야

  아주 느리게 헤엄치는 날개들

 

  불이 너무 뜨거워 불 속에 손을 넣었다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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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우리가 어떤 농담을 하는지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 세계를 걱정하는 방법

 

 

 

  우리는 농담을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나는 평생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

  손에 땀이 났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여기에 왜 왔나요?

  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말해 보세요

 

  돌아가면서 농담하는 시간인가 봐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우리가 어떤 농담을 하는지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

 

  당신 차례가 되었습니다

 

  안동에서는 조문객들이 절을 할 때마다

 

  어이 어이 어이 어이

  곡소리를 낸다고

 

  그러면 상주와 가족들이

 

  어이 어이 어이 어이

  곡을 받는다고

 

  사흘장이 끝날 때면 목이 아파

  아무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했습니다

 

  선생님이 창문을 반쯤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서울에서 밤을 보내며

  흠흠. 목을 가다듬고 소리 내어 말해 봅니다

 

  개구리가 저기서 맹하면 여기서 꽁한다

  그게 맹꽁이다

 

  날이 무더워지기 전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초여름

 

  장독대 안에는 분명 매실이 있습니다

  <  >

 

 

다시는 돌아오지 말자

  말하며

  당신이 도착한 자리

 

  영영:영영:영영:영영

타임 코드

 

 

 

  긴 시간이 흘러

 

  세계는 빛보다 빨라졌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얼굴과 시간이 뒤엉키며

  만에 하나

  서로의 등과 등이 닿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정거장에만 남아 있는 것들과 당신

 

  소풍이나 새벽

  오토바이 또는 리듬

  담배와 적막 같은

 

  도심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한 사람의 빛을 읽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될까

  아예 모르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아름답다고 짐작해 보았습니다

 

  내 몸이 새카맣게 꺼져 가기 시작했을 때

  비행기 없이 아주 멀리 간 그 나라에서

 

  09:00:15:49의 나와

  84:00:72:13의 당신이

  부딪칩니다

 

  가슴과 옆구리

  쏟아져 내립니다

 

  동시에

 

  벗겨집니다

 

  환하고 멀어

  잊혀진 사람들의 등이 다리처럼 늘어섭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자

  말하며

  당신이 도착한 자리

 

  영영:영영:영영:영영

  내가 사는 시간의 주소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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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윤지 시인: 2022년 《계간 파란》 신인상으로 등단. 첫 시집, 『개구리극장』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