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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

◆ 박상순 시인의 시 ◆ 양 세 마리 &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 & 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2년 뒤 & 자네트가 아픈 날 1

by 시 박스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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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세 마리

<  >

 

 

풀밭에는 분홍 나무

  풀밭에는 양 세 마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한 마리는 옆을 보고

 

양 세 마리

 

 

 

  풀밭에는 분홍 나무

  풀밭에는 양 세 마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한 마리는 옆을 보고

 

  오른쪽 가슴으로

  굵은 선이 지나가는

  그림 찍힌 

  티셔츠

 

  한 장 샀어요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풀밭에는 양 세 마리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오른쪽 가슴으로

 

  굵은 선이 지나는

  그림 찍힌 티셔츠

 

  한 장 샀어요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  >

 

 

나는 그녀를 통해 사라지는 세계를 본다. 사라져가는 세계

의 푹풍에 취해 그녀가, 흰 천 위에 나뒹굴 때//
나는 피를 뽑는다 ···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

 

 

 

  언제부터인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한 사람씩 사라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언제부턴가 비가 수평으로 내리

기 시작했다. 구름이 수직으로 흐르고 지붕은 쓸모없게

었다.

 

  언제부턴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마라나는 누웠다.

시간에 눕고 먹구름 속에 눕고 봄빛과 가을빛에 누웠다.

나는 그녀를 통해 사라지는 세계를 본다. 사라져가는 세계

푹풍에 취해 그녀가, 흰 천 위에 나뒹굴 때

 

  나는 피를 뽑는다. 그녀의 옷가지를 허리에 둘둘 감고 오

후 2시에서 3시를 넘기며 이 세계의 끝에 쓰러진 그녀의 피

를 뽑는다. 어느 날 강변에서 그녀가 내 허리에 푸명한

체를 바르던 그때처럼.

 

  나; 오고

  마라나; 가고

 

  나; 가고

  마라나; 오고

 

  문 여는 소리

  문 닫는 소리

 

  마지막 전람회가

  끝나는 소리

 

  마라나; 가고

  나; 오고

  <  > 

 

 

잘 가세요. 그 여자는 물속에서 다시 떠오를 거예요. 당

신의 빵 공장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 기차가 지나가

고 있나요?

 

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2년 뒤

 

 

 

  알고 있지요? 어머니는 사진을 찍어요. 파리에서요. 나는

작년까지 에콜 드 보자르에 다녔어요. 일 년 반 동안. 그 뒤

로는 쭈욱 이곳에서 살아요. 브뤼셀 남부역까지는 이십 분

이 걸려요. 저 아래서 지하철을 타세요. 당신도 한때는 화

가였군요. 유화를 그렸어요. 당신처럼요.

 

  알고 있지요? 난 이게 더 즐거워요. 대리석도 그리고, 나

무결도 그려요. 벽지로 쓸 거예요. 이걸 붙이면, 낡은 집도

대리석이 되지요. 한번 보세요.

 

  알고 있지요? 내 이름은 오필리예요. 아, 슬퍼요. 셰익스

피어가 그랬어요. 알고 있지요? 프랑스식이예요. 영국에는

오필리아가 있겠지요. 물속에서 떠오를 아름다운 여인의 주

검. 나도 그 그림을 알아요. 오필리아의 죽음. 화가가 누구

였지요?

 

  그렇군요. 그래요. 아, 그건 내 공책이에요. 뒷장에 당신

이름을 써보세요. 무슨 뜻이죠?

  

  그렇군요. 그래요. 삼십 분 전이에요. 어디까지 가세요?

아마 자정쯤엔 도착할 거예요. 이것으로 끝이네요. 두 시간

은 되었지요. 이곳에서요. 그런데 누구지요? 아, 그렇지요.

그래요.

 

  잘 가세요. 그 여자는 물속에서 다시 떠오를 거예요. 당

신의 빵 공장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 기차가 지나가

고 있나요?

 

  그 기차는 빵을 싣고 가나요? 저 아래서 지하철을 타세요.

내 어머니가 기다리실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만난다 할지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없겠지요? 그렇

군요. 그래요. 당신 그림엔 당신이 없겠군요. 그렇겠지요

  

  알고 있나요? 뷔리셀 남부역까지는 이십 분이 걸려요.

  <  >

 

 

 왜지, 왜, 왜냐구? - 병실에 누운 그녀는

  잠든다.

  그는 떠난다.

 

자네트가 아픈 날 1

 

 

 

  왜지, 왜, 왜냐고? -대답 대신 잎이 진다.

  갑자기 가을이 오고

  그는 떠난다.

 

  잎이 진다. -몸을 떨며 잎이 진다.

  몸을 비틀며 떨어지는 잎 뒤로

  돋아나는 바람.

 

  떨어진 마른 잎은 길 위에 부숴지고

  홀로 돌아가는 바람.

 

  왜지, 왜, 왜냐구? - 병실에 누운 그녀는

  잠든다.

  그는 떠난다.

 

  나는 여기 눕는다. - 왼손을 편다.

  손바닥에서 물방울이 돋는다.

 

  돋아난 물방울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먹구름이 모이고

  천둥이 운다.

 

  나의 그녀는 오늘도

  병실에 누워

  가을을 먹는다.

 

  왜지, 왜냐구? - 그는 묻는다

  자네트가 아픈 날.

 

  나는 여기 눕는다.

  내 머릿속에서 수평파가

  두통같은 수평파가 다 지워진 뒤에도

 

  동그랗게 뭉쳐진 머리

  내 머리를 찬찬히 펼쳐

  왜지, 왜, 왜냐고? - 내 발목을 덮는다.

  < >

 

 

박상순 시인: 1991년 《작가세계》 봄호에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외 8편의 시로 등단.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Love Adagio』 『슬픈 감자 200그램』 『밤이, 밤이, 밤이』가 있다. 현대시동인상, 현대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