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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

■ 손 미 시인의 시 ■ 몽돌 해수욕장 & 혼잣말을 하는 사람 & 이어지는 사람 & 필담 & 시럽은 어디까지 흘러가나요.

by 시 박스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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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돌 돌 돌 돌 돌 돌 돌

  사방으로 부서진

 

  이토록 많은 충돌

  이토록 많은 생각

 

몽돌 해수욕장

 

 

 

  네가 돌이 됐다고 해서 찾아왔다

 

  나는 아무 돌이나 붙들고

  안아봤다

 

  거기 있는 돌을 모두 밟았다

  돌을 아프게 해보았다

 

  돌들에게 소리지르고

  돌 위에 글씨를 써보았다

 

  옷을 벗고 

  누워보았다

  돌에게 내가 전염됐다

 

  이쪽저쪽으로 굴러보았다

 

  돌 돌 돌 돌 돌 돌 돌

  사방으로 부서진

 

  이토록 많은 충돌

  이토록 많은 생각

 

  절대 뒤를 보면 안 돼

  다시 사람이 될 거야

 

  움켜쥐면 말하는 돌

 

  너는 누구인가

 

  돌을 집어

  네 위에 올려놓고

  손을 모은다

  <  >

 

 

말이 끝나면 정말 끝이 날까봐

  나는 계속 말을 했다

 

혼잣말을 하는 사람

 

 

 

  우리는 공간을 메우기 위해 계속 말을 했다

  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람이 지나가고

  잔이 깨지고

  피투성이 바람이 지나가고

 

  우리는 멀어지는 사이를 메우기 위해

  계속 말을 했다

  말은 떠다니고

  그러다

  너는 박차고 일어나

  걸어 나가고

 

  말이 끝나면 정말 끝이 날까봐

  나는 계속 말을 했다

 

  빈 의자는 입을 닫고

  나는 계속 말을 했다

  너와 나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메우기 위해 말을 했다

 

  너와 나 사이로

  방금 발사된 우주선이 올라간다

 

  하늘이 찢어지는 것을 보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보면서

 

  내 뒤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이

  저기요, 좀 비켜줄래요?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던 생물들이

  가로막은 나를 피해

  이쪽과 저쪽으로 고개를 내민다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먹을 때

  잘리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강바닥에 박힌 자동차 이쪽과 저쪽으로

  물이 갈라지고

 

  점등사가 불을 켤 때

  커다란 사람의 이쪽과 저쪽으로

  빛이 갈라져 나오는 곳에서

 

  나는 계속 말을 했다

  공간을 다시 메우기 위해

  

  연고처럼 끈적한 말을

  계속 계속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몸을 흔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공간을 찢으면서 걷는다

 

  다시 오지 않을 것들에게

  멀어지는 것들에게

  말을 걸면서

 

  빈 곳을 메우기 위해

  혼잣말을 한다

  <  >

 

 

오래전부터 죽는다던 사람이 죽지 않고 있음

 

  그런 생각은 옮을 수 있음

  대대로 이어짐

 

 

이어지는 사람

 

 

 

  2021년엔 죽어 있었음

  아무것도 안 썼음

  기록 없음

 

  폭우가 창문을 열고 내 뱃속으로 떨어졌음

 

  아버지는 소 마취제를 구하려다 실패했음

  소 마취제를 조금만 주사하면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음

  아프게 죽긴 싫음

 

  나에게 다정해줘

  안 그럼 죽어버릴 거야

 

  태어나려는 뱃속 빗방울과

  죽으려는 사람이 한 식탁에서 고기를 먹고 있음

 

  오래전부터 죽는다던 사람이 죽지 않고 있음

 

  그런 생각은 옮을 수 있음

  대대로 이어짐

 

  강에 아기를 던졌음

  나를 던졌음

 

  괴롭히는 사람은 언제부터 괴롭히는 사람이 되었을까?

 

  마취된 소는 내 뱃속으로 떨어졌음

 

  나에게 다정해줘

  안 그럼 죽어버릴 거야

  아무도 구할 수 없음

  움직일 수 없음

 

  뱃속에서 마취된 몸에 팔다리가 생김

  죽겠다던 사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

 

  아무도 구할 수 없음

 

  사람은 계속 이어지고 있음

  < >

 

 

 

필담

 

 

 

  펜을 들고 있는데

 

  나의 종이에 저절로 글씨가

 

  거, 기, 누, 구, 세, 요?

 

  종이의 혈관을

  찢고 나오려고

 

  저기서 누가 쓴다

 

  누, 구, 세, 요?

 

  내 발밑에 너의 발이 있다

  우리는 발바닥을 맞대고 자석처럼 끌려간다

  끌어당기는 백지

  내가 걷고 있어서 글씨가 써진다

 

  내가 땅에 엎드려서 널 내려다볼 때

  종이 밑에서 볼록하게 올라오는 얼굴 자국

 

  누구세요?

  왜 이토록 차갑나요?

 

  주먹으로 내리친 벽 뒤에 사람이 있다

 

  백지에 낙오된 내가 젖은 발로 걸어서

  너의 종이에 얼룩이 번진다

  < >

 

 

연결하는 것처럼

  하나의 밧줄에

  매달려 있는 방울방울들

 

  어디까지 너이고

  어디까지 나인가

 

시럽은 어디까지 흘러가나요

   

                                                    자연의 고정된 외곽선은

                                                                모두 임의적이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존 버거

 

 

 

  번지점프대에 서 있을 때

  내 발바닥과 맞대고

  거꾸로 매달린 누가 있다

 

  설탕을 뿌리자 볼록하게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

 

  하늘에서 우수수 별가루가 떨어져

  나는 너를 용서해야 한다

  잠깐 내 볼을 잡고 가는 바람에

  다닥다닥 붙은 것이 있다

 

  나는 혼자 뛰고 있는데

  돌아보니 설탕가루가 하얗다

  돌고래는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라진다

 

  주로 혼자 있네요

 

  몸에 칼을 대면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요

  풍선처럼 매달려 있어요

 

  천궁을 읽는 점술사의 말에

  움찔하고 불이 붙던 발바닥

  불타는 발로 어린 잔디를 밟고

  하나 둘 셋 번지

  땅 아래로

  뛰어들 수 있을 것처럼

 

  종종 자고 일어난 자리에

  검게 탄 설탕이 떨어져 있다

 

  침대 아래, 아래, 그 아래로

  느리게 설탕이 흐른다

 

  연결하는 것처럼

  하나의 밧줄에

  매달려 있는 방울방울들

 

  어디까지 너이고

  어디까지 나인가

 

  굳은 얼굴로 마주보는

  우리는 왜 이리 긴가

  <  >

 

손 미: 200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양파 공동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산문시집 『삼화맨션』,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가 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