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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

■ 양안다 시인의 시 ■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잔디와 청보리의 세계, 탄포포 그리고 시인의 말

by 시 박스 202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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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내가 외면한 슬픔의 총체인 걸까.
 우리는 아름다운 종류의 괴물을 천사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는데.
 우리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해줘.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내가 내 문제를 끝낼 수 있게 도와줘.

 

  우리는 혼절한 단어를 너무 많이 받아 적었잖아.

  우리는 해롭고 틀린 방식으로 기절합니다. 새벽이면 우리의 방에 청색 리듬이 필요합니다. 등불이 밤새도록 헤엄치고, 목구멍은 가끔 악기가 되어서, 슬픔에 잠긴 돌, 이름을 붙여줄까요? 중력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무너지는 집을 떠나야죠. 척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연함은 우리의 전공입니다. 그래요. 새벽에 적응하지 못한 짐승이 졸도하는 시간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눈뜨고 잠든 건 나무가 아니라

 

  우리였습니까?

 

  짐승이 되는 꿈은

  해일을 일으킨다. 악몽은 당신을 가파른 협곡으로 몰아붙인다.

  당신의 발에 두 손을 얹을게. 새벽 욕조의 푸른색으로.

  온수입니다. 물속에서 빛나는 우리의 발목을 봐. 어떤 어류가 우리를 간질인다.

  피울 때마다 안개가 드리웠지요. 입맞추기 전에 기도를 가볍게 올렸어요.

  우리는 인어의 방식으로 익사하지 않는다.

 

  잠깐 잊은 꿈을 말해줄게.

  그 꿈에서 우리는 온순한 짐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작은 나룻배가 적란운 사이를 떠다녔지.

  당신은 악몽을 떨쳐내려 밤의 악보를 소리 내어 읽었어.

  가라앉은 문장들이 우리의 목소리라고 하지 말아줘.

  멀고 공허해. 텅 빈 공간도 망령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었잖아.

  별들은 오리온자리 배열로 빛나는데, 그래, 내가 잘게 흩어졌어.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지평선이 불탄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우리 반지의 테두리가 빛난다고 말했다.

  당신은 내가 외면한 슬픔의 총체인 걸까.

  우리는 아름다운 종류의 괴물을 천사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는데.

  우리가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해줘.

  이곳에서 기절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좋은 부부가 될 거야.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거야.

  알 수 없는 구름 속으로 나룻배가 산산조각나고 있어. 내가 절반 이상 죽은 줄 알았어.

  그리고 가느다란 월식.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의 문을

 

  노크할 때.

 

  창문에서 새벽빛이 쏟아진다. 블루.

 

< >

 

스텝에 밟힌 잔디가 다시 일어난다. 광장 바닥으로부터. 느린 속도로.
나는 잔디와 같은 마음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춤도 아닌 몸부림을 사랑했다.

 

 

잔디와 청보리의 세계

 

 

 

  1

 

  폐가 앞에서 춤추는 일. 한낮을 다 소모할 때까지 우리는 빛 속에서.

  나는 굶주릴 계획이야.

  생각하고 있다. 지난 휴가 때 빛나던 그의 손가락을 떠올리며.

  바닷물이 닿으면 살갗이 저렸지.

  반투명한 손톱. 내가 이렇게도 많은 주름을 가졌구나. 흰옷이 검게 변할 때까지.

 

  종소리가 들린다. 놀란 새들의 날갯짓.

 

 

2

 

  보리밭이 녹색으로 흔들린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봐요.

  개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그를 겁먹게 만든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니까. 나는 망상 속에서 겁을 먹는다.

  폐가의 문이 삐걱거리는데. 바람은 어디까지나 무서워지려고.

  누가 이곳에 종을 달아놓은 걸까.

 

  손길 닿지 않은 보리들이  

  물결친다.

  우리에겐 삐걱거리지 않는 창 하나가 필요했지.

 

3

 

  그의 발을 움켜쥐고 나면 손가락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춤추는 모습을 사랑했다.

  광장 정중앙에 놓인 무용수 조형물이 광장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지. 위대한 토슈즈-마을 사람들은 무용수를 그렇게 불렀다.

  낭만과 존경, 사랑을 투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광장 외곽에는 외곽의 풍경이 있어. 아이들은 침을 길게 늘어뜨리며.

  입가에 거품이 묻은 줄도 모르지.

  그는 잔디밭에 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해. 나는 종종 딴생각에 빠지곤 하니까. 나는 그가 부탁한 길고양이 밥을 잊은 적 있고

  그의 영혼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잊기도 했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춤을 추면 나무토막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는 시체 같지 않아서 보기 좋다고 했다.

  그게 싫었던 거야.

  나는 춤을 싫어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 그게 나의 전부라는 듯이 말을 하는 게.

  그러나 그와 함께 느린 속도로 발을 움직이며.

  심박수는 심장의 춤. 산책자들은 광장의 혈액처럼. 그는 푸른 핏줄이 불거진 내 손목을 붙잡았지.

  발목에 닿는 잔디가 간지러워 웃음이 조금 새어나와버렸다.

  왜 웃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웃긴 일이 생각나서요.

  무슨 일이 그렇게 웃긴데요?

  개들이요. 이 드넓은 광장에 개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누구는 목줄을 묶지도 않고요. 대변을 치우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다 털만 날리고 가는 거죠.

  모두가 그렇진 않아요.

  지금 우린 그곳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그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언제까지나 굶주리고 싶었다.

  그의 발을 움켜쥐면 버터 녹는 냄새가 났고 졸렸다.  잠기운에 혼곤한 내게 그가 말했다. "사람이 꿈이라는 걸 꾼다는 게 하나의 신비로 느껴져요. 나는 꿈을 꾸지 않는 물체 같아요." 그것은 그날의 마지막 목소리.

 

  육체가 지쳐 잠들면 영혼은 피크닉을 떠난다.  개들은 잔디밭에 뛰어놀고 싶다. 목줄에서 벗어나려고.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한다.  우리는 어느 액자 속 초식동물 같다. 그가 원해서 손을 잡았고  목줄을 쥔 이들이 원해서 춤을 추었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증오.  그러니까 조화이자 자살이고  무용수가 남기고 간 유산은 성공적이었으나 정작 그의 인생은 실패작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꿈이자 영혼이자 피크닉.  스텝에 밟힌 잔디가 다시 일어난다. 광장 바닥으로부터. 느린 속도로. 나는 잔디와 같은 마음이 없어서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춤도 아닌 몸부림을 사랑했다.  철창 속 기린은 무슨 기분일까.

 

 

4

 

  나는 전보다 더 큰 허기를 느끼며. 푸른 보리밭을 통째로 뽑아 끓인다면.

 

  질주하는 개가 있었다. 입가에는 거품.

 

  언젠가 이곳에서 잠든 적이 있었는지 견딜 수 없었다.

 

  개조심 표지판이 휘어져 있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휴가에서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가 나였다니 그걸 늦게 알아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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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떠나실 건가요? 내가
떡잎부터 알아봤지. 우리는 사라질 거야. 우리는 사라질
거야. 우린 종말을 대비해야
할 거야.

 

 

탄포포

 

 

 

  40만 평방미터의

  밤 들판이라 했습니다. 바위에 올라탄 아이들이

  돛을 펼치고 깃발을 꽂습니다. 배의 후미를

 

  조심하세요.

 

  - 바람에 나부끼는 파도 좀 보세요.

  그것은 갈대였습니다.

 

  - 무기력한 등대 좀 보세요.

  그것은 나무였습니다.

 

  흉곽이 노출된 채로 죽은

  물새를 주워오면 손이 파랗게 젖어 있다.

  아이들은 엉엉 울지. "군인이 되어야겠어요."

  "저는 집행자가 될래요. 소중한 걸 살리고

  반대하는 것들을 해하겠어요."

 

  그리고 춘곤. 찰나의 잠.

  꿈에서

  낯선 이들에게 대접받았다. 꿈에서 깨면 그들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실 건가요? 내가

  떡잎부터 알아봤지. 우리는 사라질 거야. 우리는 사라질

거야. 우린 종말을

  대비해야 할 거야.

 

  ······끈. 붕대. 선전용 문구. 지구인력. 주근깨 환자. 목적

어. 무관심한. 여장. 의연하게. 미안. 그만 가봐야 해. 물새

가 너무 많이 죽어 있었어. 그러나 너를 좋아해.

 

  40만 평방미터의

  들판에서, 밤하늘 전체에, 쏟아져버리도록, 사중주의 계

절에서 ······

 

  아이들은 소원을 빌었지. 두손에 백지를 끼우고.

 

  민들레는 탄포포.

  양파는 어니언.

 

  노란 태풍 속에서 흰 두개골 ······ 쏟아진다.

 

  별무리. 아이들의 두 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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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이 시들을 쓰면서 나는 대체로 취해 있었고 새벽이었다. 문득 시인의 말을 편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를 쓰는 동안 나의 친구가 자주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 지내? 너는 천사가 나오는 시를 싫어했지. 천사라는 존재가 특별하고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이 싫다고 했잖아. 내가 너의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해뜰 때까지 다투는 날이 많았지.

 

언제나 미러볼과 전자음악과 알코올의 밤이었다. 어쩌다 우리가 멀어지게 된 걸까? 서로를 너무 많이 낭비한 탓일까?

하지만 나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어.

 

지금 만나게 되면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눌까. 너는 여전히 졸린 눈으로 취하고, 춤을 추고, 시시한 대화를 즐기곤 할까.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썼다. 특별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천사를.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천사에 대한 시를. 너는 이 시집을 마음에 들어할까?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면

 

이제 다투지 않게 될까? 어디선가

나의 친구, 네가 이걸 읽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다 괜찮아진다.

 

아직도 헤매며 이 세계 어디서 너 혼자.

 

양안다 시인: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숲의 소실점을 향해』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가 있다.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