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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있다 가 놀고 있다 발바닥에 비누칠하고 호호
비눗방울 불면서 영감탱이처럼
죽어 있다 가 죽어 있다
등에 죽창 구멍 뚫린 채 백 년 동안
백 년 동안의 웃음
포도나무
아래는 3행이다 미끈미끈 할머니께 아침저녁으로 지청구 듣는
놀고 있다 가 놀고 있다 발바닥에 비누칠하고 호호 비눗방울 불면서 영감탱이처럼
죽어 있다 가 죽어 있다 등에 죽창 구멍 뚫린 채 백 년 동안
구름에서 달걀들이 쏟아진다 와 빨간 털모자 쓰고 촐랑촐랑 눈이 내린다 와 똑같은 모습으로 백 년 만에 첫, 할머니 눈이 내린다
와! 3행에서 죽은 할머니가 자라목을 쏙 내밀고 목적어를 부르자 나팔꽃 꽃눈 흐드러진 초가집 변소에서 할아버지 주어가 엉덩이부터 나온다
엉거주춤 바지를 올리며 눈 덮인 칠흑 세상 사방팔방 두리번거리다, 에잇! 3행으로 쏙 들어가, 백 년 동안 미끄러진다
말, 말, 말, 말들이 말한다 잘 왔수 영감! 그동안 나 심심해서 죽을 뻔했수
3행에서 백골이 산 사람 틀니를 빼 들고 한 행 한 행 쪼글쪼글 웃는
크리스마스이브다 눈이 바쁜 제삿집 마당에서 눈이 예쁜 소녀 이브는 눈사람 아담을 만들고
눈이 나쁜 나는 눈사람이 꽈리 참새 두 마리가 되어 지평선 너머 세계의 끝, 인간의 마을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노란 조등 걸린 감나무 대문 앞 백 년 신혼 귀신 한 쌍이 짜글짜글 웃음 손을 흔들고 눈 내리는 대나무 밭 한 칸 아래
두 칸 무덤에서 밤하늘이 피 끓는 소리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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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시계
-Composition 0
뱀장어(13시는)
미녀에게 없는 마녀의 점(14시에)
당신이 만지면(꽃피는 15시)
백 년 동안의 웃음(16시를 잘라 만든)
낱말 케이크(17시)
비행 소년 행갈이의 비행 때문에(18시는 비)
너무도(비만증을 앓는 19시)
바짝 마른 김(20시에 심장 정지)
서울의 타잔(21시는)
발발이 아줌마는 바빠(22시의 모텔)
새를 위한 목적어 침대(23시에 회전하는)
이런 세미나(24시 0
불꽃놀이 축제(25시 꿈)
타잔은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사이코 마사이 종족에게 또 잡혀가 고문당할까 겁나서
타잔은 겁나게 달아난다
서울의 타잔
명동 한복판에 타잔이 나타났다
야자 이파리 팬티도 걸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자
상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구경한다
빨간 미니스커트 차림의 레즈비언 아가씨 둘이 지나가며
타잔의 구릿빛 궁둥이를 힐끔거린다
21세기 패션 리더 타잔이 콘크리트 밀림을 걸어간다
KFC 뚱보 영감 불알을 툭 치고 지나가는데
흰 가운을 입은 청년 셋이 정신 병원 구급차에서 내린다
밧줄을 들고 타잔을 잡으러 뛰어간다
타잔은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사이코 마사이 종족에게 또 잡혀가 고문당할까 겁나서
타잔은 겁나게 달아난다
언제 나타났는지 방망이를 든 경찰관 둘도 뒤쫓는다
타잔은 더욱 크게 아~ 아아아~ 소리친다
그러자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린다
경찰관과 청년들, 낄낄거리며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란 족제비눈을 하고 일제히 뒤를 돌아본다
지하철역 쪽에서 코끼리 떼가 몰려오고 있다
표범과 사자와 기린이 몰려오고 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거대한 코끼리가 구급차를 밟아 찌그러트리고
코뿔소가 경찰차를 들이받아 공중으로 날려 버릴 때
빌딩들 창마다 칡넝쿨이 자라난다
넝쿨들은 코끼리 코처럼 꿈틀꿈틀 뻗어 하늘을 덮고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열대 식물들이 돋아 오른다
빌딩 숲은 금세 밀림의 늪지대로 변한다
경찰관 둘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표범이 으르렁거리자 겁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떤다
그때 아~ 아아~ 명동 성당 꼭대기에서
칡넝쿨 밧줄을 타고 타잔이 내려와 표범에게 말한다
잘했다 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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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의 초공간 유머 랜드, 회전문 콘서트
말을 타고 들어가자 삼백 년 전의 홀이다
객석에 생쥐 다섯 마리가 앉아 있다
생쥐들을 바라보며 고양이 네로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미래로 갈 때 먹는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입술 가득 바르고
생쥐들은 R석에서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다
연주가 끝나면 우릴 잡아먹어도 좋아요!
막내 생쥐 도돌이가 말한다
도돌이는 도돌이표 옷을 입고 있다
네로는 입맛을 다시며 점점 빠르게 연주한다
새침떼기 생쥐 달세뇨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돌아가
피네(Fine)를 찾지만
생쥐 피네는 시간 이동 쥐구멍으로 사라지고 없다
객석은 뱀처럼 흰 공중에 떠 있고
죽음은 왼발을 발발 떨면서 계단 아래 숨어 있기에
말을 S석에 앉히고 나는 B석에 앉아
생쥐들을 위한 마지막 콘서트를 감상한다
머리 위로 콩나물 음표와 물고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연주는 끝없이 반복되고 고양이는 점점 지쳐 간다
생쥐들이 고양이 뇌 껌을 씹으며 노래한다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껌은 고양이 뇌로~ 뇌로~
문을 돌아 나가자 삼천 년 후의 사막이다
석관에 고양이가 누워 있다
미라로 발견된 네로를 바라보며
연미복 차림의 생쥐들이 바이올린 조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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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늘 나는 틀린 센텐스
스물다섯 개의 눈과 귀가 달린 광기의 디자인하우스
당신은 지금 틀린 센텐스의 1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어제까지 나는 타임커피숍
그리하여 모레 나는 모래의 집 또는 귀신의 집
그리하여 오늘 나는 틀린 센텐스
스물다섯 개의 눈과 귀가 달린 광기의 디자인하우스
당신은 지금 틀린 센텐스의 1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당신은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의 주검을 검시할
7인의 센텐스에게 목격되는가?
어서 떠나라 나 위험한 센텐스다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끔찍하게 피살될 수 있다
당신이 2층과 3층을 둘러보는 사이
불길이 솟고 아슬아슬 공중에 걸린 화분들이 떨어져
당신 머리를 덮칠 것이다
나는 불가능한 사건이 반드시 터지도록 설계된 다차원 건축물
당신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다
시계는 0시 0분에 정지했는데 바늘은 계속 돌고 돌아
나는 9시 방향에서 4층을 디자인하고
당신은 6시 방향으로 회전해 3층 욕실을 둘러보고 있다
나는 당신에 의해 당신이 피살되도록 설계된
일곱 개 시공간의 7층 건물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은 지금이라고 읽고 있고
나는 당신이 그렇게 읽도록 당신을 디자인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떠나라
이 센텐스에서 검은 모자 쓴 모래 인간이 외출하고 있다
그사이 나는 계속 틀린 센텐스다
그사이 나는 계속 엘리베이터를 타원으로 작동시키고
그사이 나는 계속 당신을 주검의 문양으로 디자인하는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하우스다
갑자기 덜컹,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수평으로 멈추고
5층에서 당신의 비명이 울린다
그 비명을 흡수하며 나는 계속 틀린, 평행 우주 센텐스
비상구 계단 여기저기 발자국이 찍히고 핏방울은 수평으로 떨어지고
당신은 계속 이 센텐스를 수직으로 읽느라
당신은 계속 당신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추론하느라
5층과 6층 사이로 핏물이 흐르고 당신은 도망치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무형의 피살된 주검이 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현장을 목격하고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증언할 유일한 목격자로 남지만
'창에서 비명을 지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처럼 당신은
영원히 센텐스 속의 삭제된 주어다
창밖 어둠 저편에 똑같은 건물들이 보이고
무수한 센텐스 속 당신의 주검을 바라보는 무수한 당신
당신은 이 불길한 센텐스의 삭제된 마침표고 물음표다
천천히 돌아보라 발소리 없이 다가오는 내일처럼
당신의 등 뒤에 권총 쥔 모래 인간이 지구본을 들고 서 있다
구멍 난 당신의 두개골이다 당신은 언제나
'뒤틀린 방향과 시간의 굴절 속에서 파괴된 디자인하우스다'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일까지 타임커피숍
그리하여 모레 세계는 우주는 모래의 집 귀신의 집
그리하여 나는 오늘 똑바로 틀린 센텐스
시인의 말
시간은 분기하는 통로, 지진 중인 눈
(0) 1 2 3 4 5 ··· ···
on=off, 무한 공간 실험실
함기석 시인: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착란의 돌》《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시집 《숫자벌레 》《아무래도 수상해》, 동화 《상상력 학교》《코도둑 비밀탐정대》 등의 창작서와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 등을 출간했다.
박인환문학상, 애지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