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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에서 읽은 시

『문학동네』2024년 여름호(제31권 제2호)에서 눈에 눈에 띈 시;「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 「야적장」(강지혜)& 「선영線影」, 「나와 평생 보낼 유리」 (박규현) & 「신과 함께」, 「바람 나무 해파리 영혼」 (변혜지).

by 시 박스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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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ow you take your child now

-- 강지혜

 

 

 

    안녕하세요 내가 그 야적장을 낳은 여자예요 야적장은 잘 있나요 벽

돌과 모래와 덤프트럭과 철근과 전선 드럼과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뼈

와 기쁨이 아직 잘 살아 있나요 야적장에게 전해주세요 우리 한바탕 울

고 나면 너도 나도 죽진 않을 수 있다고 깊은 잠을 자라고 내가 어떻게

이 시간까지 잤지 되묻게 되는 잠을 자라고 이제 내가 옆에 있겠다고 건

물이 되지 못한 건축자재가 쌓인 곳에서도 광대풀 꽃은 지겹게 살아 있

었다 제초제를 뿌려도 그때뿐 뿌리를 들어내도 그때뿐 모든 씨앗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야적장 둘레는 철근과 철판으로 엮여 있고 비를 맞고 눈을 맞아도 철

들은 녹슬지 않았다 야적장의 외부를 관리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도

야적장 한편에는 조금 더 작은 자재가 정리되어 있는 비닐하우스가 있

고 자재가 들고 나는 것을 체크해야 하니까 사무실 노릇을 하는 컨테이

너가 있다 커다랗게 관리인 전화번호와 경고문이 붙어 있다 도난 방지를

위해 CCTV 촬영중입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바랍니다

 

    우연히 통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울며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갔고 수

화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뒷모습만 보여서 표정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는······ 글쎄, 언젠가 누군가 서기의 우는 얼굴을 보고 놀라서

죽었다는 것 같던데 나는 관리인일지 아니면 어떤 여자의 자식일지 모를

그의 뒷모습을 보고 슬프거나 안타깝지는 않았다 그는 야적장일 테니까

이 야적장은 내가 보기엔 완벽하니까

 

    이 야적장에는 그 흔한 불법 쓰레기 투기도 없어 그저 곤히 잠든 크고

작은 중장비들 있다 정갈한 건설자재들이 쌓인 모습이 아름답다 야적장

을 낳은 여자를 상상해보자 그의 결단과 그의 임신 기간을 감각해보자

후, 나는 못해 나는 아마 어려웠을 거야 나는 그 여자를 어리석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그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 지긋지긋한 들풀의 흔들림을 끝

내 사랑했듯이 복중의 야적장은 힘차게 발길질을 해댔겠지

 

    야적장 바로 옆에는 노란 장미가 두 그루 심어져 있다 사계절 내내 장

미는 빛을 뿜는다 여기에는 없는 게 없다

 

 

*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변용함.

<  >

 

 

야적장

 

 

 

  어떤 죽음은 함께 살기엔

  너무 크게 자라서

 

  야적장에 두어야 한다

 

  비극은 눈물을 흘려서

  세를 불리니까

 

  신새벽, 악을 지르며 내 침대로 찾아드는 아이에게

  쉬이--  쉬--

  나는 항상 여기 있어

  말했지만

 

  정말일까

 

  매순간 우리에게

  시간이 넘실대는데

  질병이 도사리는데

 

  그의 평안은 요원하고

 

  거대한 철제 가림막들은 철제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고

  철제 파이프들은 철사로 이어져 있다

 

  철은 녹슨다

  철은 정직하니까

 

  여기는 보통 사람이 없고

  바람과 벽돌 몇이 웅크리고 앉아

  전쟁이나 시 따위를 태우고 있다

 

  따뜻하려고

 

  아이와 손잡고 야적장 옆을 지날 때

  기다란 꿩 꼬리털을 주위 들고 그가 해사하게 웃을 때

 

  방수포에 덮여 있던 비극이

  얌전히 놓여 있던 죽음이

  부스스 몸을 턴다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나는 무릎을 꿇어 앉는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간절히 기원한다

 

  부디 그에게 평안을 주세요 ······ 그에게 평안을 ······  평안을 ······ 

 

 

강지혜: 2013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가 훔친 기적』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지?』, 산문집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 『내가 감히 너를 사랑하고 있어』 『봄, 시작하는 마음』(공저)이 있다.

 

 

 

선영 線影

--박규현

 

 

 

    왜 그대로인 거야 방문 열자 여전하다 너는 베란다 창 가까이 서 있다

바깥을 내다보는 자세를 하고 있다 올곧은 등이 보인다 얼마간 너를 대

신하여 현관문을 열어주고 승강기 버튼을 눌러주기도 하고 이따금 비상

구 계단을 일러주기도 했지만 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과를 보고

온 이후에도 잠을 자고 난 뒤에도 너는 가만히 있었다 네가 이 집의 먼

지를 다 마셔버릴까봐 청소했다 휴일에도 침대 밖으로 나와 너를 살폈다

더위나 습기에 지쳐 쓰러질 상황을 대비해 약을 종류별로 구비해뒀다 네

가 식사할 수 도 있으니까 늘 넉넉한 음식을 준비하며 너를 기다렸다 베

란다에서 벗어나 부엌 식탁에서 마주앉는 시간을 소원했다 물컵에 담아

둔 각 얼음 녹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동안에도 너는 오지 않았다

유리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동안에도 뒷모습만 남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 하나로 묶어 올린 머리카락 아래

로 보이는 뒷목과 반듯한 양어깨와 날카로운 팔꿈치는 너였다 네가 가만

히 있어도 미래는 생겨난다 밥그릇에 숟가락을 찔러넣어도 죽는 일은 없

다 네가 뒤도는 순간 목격하게 될 얼굴에 도망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러고 싶을 수도 있다 멀리서 누가 휘파람 분다 우리로 남을 수 있다면 슬

프지 않겠지 다만 더 나빠질 뿐

<  >

 

 

나와 평생 보낼 유리

 

 

 

    이제 너도 그럴 나이가 되었지

    그렇다면

 

    유리 탄생 위한 성분을 공부하고 유리 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암기하고 유리 씻기는 법 먹이는 법 온갖 자료를 뒤적이고 오로지 유리

떠올리며 나만의

 

    유리를 데리고 쇼핑몰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

    꽤 많구나 저마다 품안에 유리를 안고 있다 누빔 원단으로 감싸안거

나 한번 쓰다듬은 유리에 생긴 지문을 닦아내느라 바쁘다

    빛을 받을 때마다 번뜩이는 유리가 있는가 하면 움푹한 아랫면에 물

을 담고 철렁이는 유리도 있다 유리, 유리투성이를 보자니 벌써 나의 유

리가

 

    끔찍하다

    끔찍이도 사랑스럽다

    나의 유리는 어떨까 얼마나 찬란할까 오목하고 넓적한 접시일까 길고

반듯하면서도 곡선을 가진 잔일까 햇살 받아서 웃음 터뜨리는 선캐처일

까 상상의 끝에서

    알 것도 같다 모두가 유리 애지중지하는 이유를 어째서 전력으로 헌신

하는지를 모를 수가 없을 것

 

    쇠파이프에 뜨거운 유리를 꽂아 넣는다 이것은 유리답기 이전의 유리

말랑거려 보여도 차마 손댈 수 없는 유리

    파이프에 입술을 갖다댄 찰나, 열기가 끼쳐온다 숨을 불어넣는 순간에

는 망가지는 기도와 저지르는 실수와

 

    유리 식어가는 동안에 그 앞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내 호흡이 들어가

는 바람에 엉망진창인 유리가 되어버리면 너무 무른 구석이 생긴다면 지

나친 사나움으로 한없이 늘어져버린다면

 

    나로 인해 생겨난 유리를 그러쥔다 이것은 화병이 아니다 컵도 아니다

그릇도 모빌도 아니다 이것은 그 어딘가에 걸쳐 있는 쓸모를 찾기 힘든

무엇 모서리의 한쪽 면이 날카로워 베일지도 모름

 

    벨 수도 있을

    반짝거림

    가능하다면 유리와 함께

 

    귀가한다 유리는 혼자 돌아다닐 수 없다 침대에 눕거나 식탁 앞에 앉

을 수 없다 거실에 누워 창으로 투과되는 정오의 빛을 만끽할 수 없다

늘 나를 찾는 유리 나뿐인 유리 나를 위한

 

    집이었는데

    유리가 있음으로 집이라는 걸 믿기 어려워진다 정말로 나의 집인지 모

르겠어

    유리는 투정 부린다 이리저리 뒤척인다 내가 붙들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면  ······ 하루에도 수차례 나직이 중얼거린다 유리 유기하는 일 불법 아

니며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 없으며 그저 잊고 새 유리 만들면 그만이며

 

    유리는 깨어져 유리는 소복이 쌓여

    도리어 힘이 나는 거지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거지

 

    매서운 면을 가진 유리 감싼다

    신문지 겹겹이 두른다

    망치를 가져와 오른팔 들어올린다

    이토록 쉬워도 되는 거냐고 말 건넨다

 

    너는 내가 처음 손댄 녀석이구나 너는 형광등 빛 아래서 유독 생생하

던 부분이구나 무수해진 유리

    흩어져 있다 거세고

    힘차게

    <  >

 

 

박규현 시인: 2022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가 있다.

 

 

신과 함께

--변혜지

 

 

 

   신의 집에 놀러가리도 했다.

 

  163번 버스를 타고 정릉2동 주민센터에 내린다. 그의 집은 나의 집보다

높은 곳에 있다.

 

  두루마리 휴지와 박카스를 받아들고

 

  맨발의 신이 나를 맞이한다.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왓으며, 진심으로 환

영한다고

 

  찻잔을 쥔 나의 손을 감싸안으며, 나의 오랜 염원에 대해 말해보라

고 한다. 그리하여

 

  비좁은 거실에 앉아 신과 함께 만두를 빚는다.

 

  나를 사랑하는 신의 얼굴이 근심으로 가득하여서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두를 빚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인

가요? 나는 가능한 한 예의바르게 질문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질문이 아닙니다.

 

  그는 말없이 웃을 뿐이다. 그러나 녹슨 철문 안쪽에 살고 있는 나의 신

에게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 손아귀에 움켜쥔 질문이나 마음에 품어온 비

애 같은 것도 

 

  식사를 하고 신과 함께 콘솔 게임을 한다. 무인도의 개척자로서 이웃

을 맞이한다. 내가 계단이 없는 육교를 만드는 동안

 

  그는 기다린다.

 

  화면 속에는 나의 이웃이 다정하게 웃고 있다.

 

  여기에도 천국이 있네. 그렇게 말해도

 

  화면 바깥에서 나의 이웃은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울지 말라고

 

  신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내가 위로한다.

 

  나의 바람이 당신의 은총보다 높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  >

 

 

바람 나무 해파리 영혼

 

 

 

  유구한 믿음이 있어. 언젠가 발견될 거라는 믿음. 퇴적암 속에서 화석

을 발굴하듯이, 우리의 생몰을 조심스럽게 복원하려고.

 

  이것은 나의 독백이었나?

 

  중얼거리기 위해 우리는 만난다. 서로를 낱낱이 열어보려고. 나는 너를

만나면 열린다. 공평하게 절망하려고.

 

  우리기 함께 완성한 꿈속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이를테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우리는 정신을 차려보니 텅 빈 거리를 헤매고

있다. 어린 너를 만나기 위해 수십 년을 홀로 떠돌고, 그러는 수십 년 동

안 네가 자라버려서 우리는 만나지 못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너는 모든 담벼락에 적는다.

그 사람은 죽었어. 죽었어. 죽었어. 내가 그렇게 말해야지만 꿈의 뚜껑이

열린다.

 

  수십 년 만에, 수십 년 만에!

 

  희재야,

  나는 이제 네가 아닌 다른 친구를 찾고 싶어.

 

  누군가 말하고

  우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나는 바닥을 믿는다. 나는 바닥을 강구하는 사물들을 믿으며, 나를 중

심으로 끌어당기는 거대한 힘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희재에 대해 생각하

기만 하면 이 모든 믿음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

 

  희재는 바람 나무 해파리 영혼. 사람이라는 너무 큰 옷을 입은

  바람 나무 해파리 영혼

 

  그렇다면

  나는 누구지?

 

  우리는 동시에 묻는다.

 

 

변혜지: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 있다.

 

                                               <문학동네 2024년 여름호 '시' 부문 수록 시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