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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 시선집,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서: 검은 전령, 하나에 천 원이요, 영원한 주사위, 트릴세,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by 시 박스 202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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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전령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 모르겠어.

  신의 증오가 빚은 듯한 고통. 그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괴로움이

  썰물처럼 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

 

  얼마 안 되지만 고통은 고통이지. 굳은 얼굴에도

  단단한 등에도 깊디깊은 골을 파고 마는...

  어쩌면 그것은 길길이 날뛰는 야만족의 망아지,

  아니면, 죽음의 신이 우리에게 보낸 검은 전령.

 

  영혼의 구세주가 거꾸러지며 넘어지는 것.

  운명의 신이 저주하는 어떤 믿음이 넘어지는 것.

  이 처절한 고통은 그리도 기다리던 빵이

  오븐 문 앞에서 타버릴 때 나는 소리.

 

  그러면, 불쌍한... 가엾은... 사람은

  누가 어깨라도 치는 양 천천히 눈을 돌려,

  망연히 바라봐.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은

  회한의 웅덩이가 되어 그의 눈에 고이고.

 

  살다 보면 겪는 고통. 너무도 힘든...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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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 천 원이요

 

 

 

  '하나에 천 원이요'를 소리 높여 외치는 복권장수가

  신의 무슨 기금을 가진 건지 나는 모른다.

 

  입술 모두가 지나쳐버린다. 더 이상은 아니라는

  불쾌함이 주름 하나에 형성된다.

  복권장수가 먹을 수 없는 빵 사이로

  지나간다.

  이름만 존재하는 신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

 

  불쌍한 인간을 바라본다. 그가

  우리에게 마음을 연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가 큰 소리로 외쳐대며

  손에 들고 있는 저 행운이라는 것은

  잔인한 새처럼,

  그도 모르는 곳, 떠돌이 신이 원하는

  그런 곳이 아닌 데에서 멎으리라.

 

  태양 아래에서 머리 숙이고 다니는

  이 미지근한 금요일에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뜻은

  왜 복권장수 옷을 입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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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주사위

                      - 나에게 열정적인 박수를 아끼지 않으셨던

                        위대한 마누엘 곤살레스 프라다 선생께

 

 

 

  오, 주님! 제가 살아 있으므로 울고 있습니다.

  당신의 양식을 먹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생각하는 진흙은

  당신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을 떠날 마리아도 없지 않습니까!

 

  오, 주님! 당신께서 인간이셨더라면,

  오늘은 하느님이 되실 줄 아셨을 겁니다.

  당신의 피조물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항상 안온했던 당신은, 그러나, 인간의

  고통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당신은 멀리 계십니다.

 

  오늘 저의 핏발 선 눈에는 저주받은 인간처럼

  불꽃이 번득입니다.

 

  주님, 당신의 촛불을 모두 켜시고

  닳고 닳은 주사위를 가지고 함께 게임을 해봅시다.

  어쩌면 전 우주를 걸고

  게임을 하다 보면

  죽음의 신의 두 눈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진흙으로 만든 어두운 두 장의 에이스처럼.

 

  오, 주님! 이 캄캄한 밤, 무언의 밤,

  더 이상 게임을 못 하실 겁니다.

  험한 일에 몸을 굴려 닳아지고

  둥글어진 진흙은

  구멍, 그것도 무덤 같은 거대한 구멍이 아니면

  구르는 것을 멈출 수도 없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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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릴세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곳은

  단 하나, 오로지 한군데, 그러나

  우리는 거기 결코 가지 못하리.

 

  그곳에 우리의 발이 어쩌다

  한순간 닿았다 해도 실은

  그렇지 않은 것과 다름없으리니.

 

  매순간 이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곳, 한 줄로 서서 걷다가,

  걷다가 맞닿게 되는 곳.

 

  나 자신보다 더 가까운, 내

  원초적 삶보다 더 가까운, 그러나

  운명에서 항상 멀게 보이는 곳.

 

  그대들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

  순수한 마음으로도 이르는 곳.

  도장이 있을 필요가 없는 곳.

 

  찻빛 지평선은 그곳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몸살을 앓는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아무데'로 만들려고.

 

  그러나 내가 아는 그곳,

  지상의 그곳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정말 시 같은 시들과 함께 걸어간다.

 

  "살짝 열린 저 문을 닫아라.

  거울 속으로 통하는 저 문을."

  "이쪽 문?" "아니, 저쪽 문."

 

  "닫을 수가 없군. 저곳으로

  결코 갈 수가 없어."

  빗방울이 열을 지어 간다.

  내가 아는 그곳은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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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

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 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

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

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

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

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

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

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

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인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

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

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

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

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배고픔이 나의

고통과는 먼 것임을 봅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굶게 된다

면, 적어도 내 무덤에서는 억새풀이라고 하나 자라겠지요. 사

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샘[泉]도 없고 닳지도 않는 나의 피에

비하면 그대의 피는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부모나 자식이 되어야 한

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부

모라서 자식이라서 겪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

기에는 등[背]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

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

에 두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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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바예호(1892~1938): 페루 산티아고 데 추코 출생. 시인, 극작가, 소설가.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 문학의 대표 시인이자 페루의 국민적 시인으로 평가받음. 인디오와 메스티소 사이에서 태어난 바예호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애환을 뼛속 깊이 새기며 성장함.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방학 때 고향에 갔다가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하다, 주변 문인들의 탄원으로 석방 후, 프랑스 파리도 떠남. 파리에서의 가난한 생활을 하며 시인으로 활동했고, 반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는 등 본격적인 사회 참여. 소련을 세 차례 방문하고 공산주의 신문에 글을 기고한 것 때문에 1930년 추방되었다. 그는 스페인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스페인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맹목적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레닌, 스탈린 등에게는 비판적이었다고 함. 
그의 작품은 가난하고 불운한 삶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띈다. 그러나 단순한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신조어를 만들고, 철자와 구문을 의도적으로 바꾸며, 인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을 시에 쓰는 등 초현실주의 미학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음. 체 게베라가 사랑한 시인 중 한 명이다.
시집으로는 『검은 전령』(1919), 『트릴세』(1922),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1937), 『인간의 노래』(193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