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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인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 가을 & 언어 & 실스마리아 & 명성과 영원.

by 시 박스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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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지상에서 안식을 찾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이 가슴

  하늘 높이 들어 올려 주오.

  나 푸른 풀숲에 드러눕네.

  샘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눈은 흐릿해지고, 뺨은 젖고,

  영혼은 환해지며 맑아지네.

  나뭇가지들은 몸을 숙여

  제 그늘로 감싸 주네,

  삶에 지치고 병든 이 몸을,

  마치 고요한 무덤처럼.

 

  푸른 숲속에서 나 죽고 싶네,

  아니야! 아니야! 이딴 쓰린

  생각은 접자! 푸른 숲속에는

  새들의 노랫소리 즐겁게 울리고

  참나무들은 머리를 흔드니

  머지않아 그곳에서는

  숭고한 여러 힘들이

  너의 관을 흔들 테고

  그곳에는 영혼의 평화가

  네 무덤에 깃들 테니.

  영혼의 평화를 통해 너는 이곳

  지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겠지.

 

  구름들은 황금빛 빛살로

  너를 눈처럼 하얗게 에워싸고,

  분노로 둥글게 뭉쳤다가

  번개의 불꽃들을 지상에

  내려보내고, 하늘은 운다,

  이 사랑스러운 봄철에

  환희가 사방에 메아리치는데

  이 세상에 죽음을 바라는 자,

  단 한 사람뿐이구나,

  너를 향해 쓰린 눈물이 떨어지고

  그리고 너는 눈을 뜨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웃는다.

  <  >

 

 

가을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태양은 산으로 기어올라

  오르고 또 오르며

  한 걸음 뗄 때마다 쉰다.

 

  세상은 왜 이리 시들었는가!

  후줄근해진 실들을 타며

  바람이 노래를 연주한다.

  희망은 도망쳤고,

  바람은 사라진 희망을 슬퍼한다.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오, 나무의 열매여,

  너는 떨다가 떨어지는가?

  그 밤이

  네게 어떤 비밀을 가르쳐 주었기에

  얼음 같은 전율이 네 뺨을,

  붉은 네 뺨을 뒤덮는가?

 

  너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는가?

  누가 계속해서 말하는 걸까?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나는 이제 아름답지 않아"

  ----별꽃도라지가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

 

  사람들은 지금도 꽃을 봐야 해,

  내게 몸을 구부려

  아! 나를 꺾어도 돼----

  그러면 그들의 눈에는

  추억이 반짝이지,

  나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억이----

  그것을 보면서, 그것을 보면서, 나는 죽어 갈 거야."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  >

 

 

언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가 나는 좋다.

  이런 언어는 활달하게 뛰어 다가오고,

  상냥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좀 서툴러도 그냥 사랑스러우며,

  안에 피를 품고 있어 씩씩하게 숨 쉬고,

  귀머거리의 귀에조차 기어오른다,

  몸을 돌돌 말고 있다가 이내 파닥인다,

  언어가 하는 일, 언어는 즐거움을 준다.

 

  언어는 섬세한 생명체라서,

  병들기도 하고 낫기도 한다.

  그 조그만 생명이 제 삶을 살도록 둬야 하며,

  잡을 땐 가볍게 살포시 잡아야 한다.

  서툴게 더듬거나 짓누르면 안 된다,

  나쁜 눈길만 닿아도 죽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기 흉한 몰골로 누워 있다,

  영혼도 없이 불쌍하고 차갑게,

  그 작은 시체는 볼품없이 변하다,

  죽음의 손길에 들볶여서.

 

  죽은 언어는 흉측하다,

  울림도 없는 달가닥 소리에 불과하다.

  모든 언어를 죽게 만드는 

  끔찍한 짓들이 창피한 것임을 알라!·

  <  >

 

 

실스마리아*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기다리며, 기다리며 ----뭘 기다린

          것도 아니면서,

  선과 악의 피안에서, 때로는 빛을 즐기고,

  때로는 그림자를 즐기면서, 온통 놀이,

  온통 바다, 온통 한낮, 온통 목표도 없는 시간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벗이여! 하나가 둘이 되었다**----

  ---- 그리고 자라투스트라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

 

 

* 실스마리아는 스위스 알프스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니체에게 창작의 요람이 되어준 곳이다. 

이곳의 한적한 오두막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던 니체는 8월의 한 산책 길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렸다.

**  "하나가 둘이 되었다"는 표현은 시인의 자아가 옛것과 새것으로 나뉘며 탈바꿈하는 것을 뜻한다.

 

 명성과 영원  

 

 

  1

  그대는 벌써 얼마나 오래도록

          그대의 불행 위에 앉아 있었나?

  조심하라! 그대는 아직도 나를 위해서

          알 하나를,

          바실리스크***의 알 하나를

  그대의 오랜 고통으로 품어 부화한다.

 

  왜 자라투스트라는 산 위에 잠복하고 있나?

 

  의심 품은 눈빛, 종기 투성이, 음울한 표정,

  오래 잠복한 자의 모습----

  그러나 갑자기 한 줄기 번개가,

  밝고 무섭게, 벼락이

  심연에서 하늘을 향해 번쩍인다.

  ---- 산의 내장까지

  마구 흔들린다 ······

 

  증오와 번갯불이

  하나가 될 때, 하나의 저주가 될 때,

  산 위에는 이제 자라투스트라의 분노가 살고 있다,

  분노는 먹구름이 되어 제 갈 길을 간다.

 

  남은 한 장의 이불이 있는 자들은 그리로 기어들어라!

  너희 연약한 자들아, 침대로 들어가라!

  이제 둥근 천장 위로 천둥이 구르고,

  들보와 담벼락이 흔들리고,

  번개와 누런 유황빛 진리는 요동친다,

          자라투스트라는 저주한다 ······

 

 

 

 

*** 북아프리카 사막에 산다는 환상의 뱀으로 눈빛만 쏘여도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플리니우스(23-79)의 『박물지에 나온다. 

 

 

  2

 

  세상 어디나

  이 화폐로 지불한다,

  명성이라는 화폐로,

  장갑 낀 손으로 나는 그 화폐를 움켜쥐고,

  구역질을 느끼며 나는 그 화폐를 짓밟는다.

 

  지불받기를 원하는 자 누구인가?

  자신을 팔려 내놓은 사람들 ······

  제 몸을 팔려 내놓은 사람은

  살찐 두 손으로

  어디서나 양철 소리 나는 이 명성을 움켜쥔다!

 

  그대는 명성의 화폐를 사고 싶은가?

  이 명성들은 누구나 살 수 있다.

  어서 더 많이 내놓아라!

  두툼한 지갑을 흔들어라!

  그리하여 명성들을 강하게 하라,

  명성들의 미덕을 강하게 하라 ······

 

  명성들은 모두 미덕을 지녔다.

  명성과 미덕---- 둘은 잘 어울린다.

  이 세상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미덕의 요설을

  명성의 요설로 지불할 것이며,

  세상은 이런 소음을 먹고 살아갈 것이다 ······

 

  모든 미덕 앞에서 나는

          죄를 저지르고 싶다,

  아주 큰 죄를 짓고 싶다!****

  모든 명성의 나팔들 앞에서

  나의 공명심은 구더기가 되고,

  그런 나팔들 아래에서 나는

  가장 낮은 자가 되겠다 ······

 

  세상 어디나

  이 화폐로 지불한다,

  명성이라는 화폐로,

  장갑 낀 손으로 나는 그 화폐를 움켜쥐고,

  구역질을 느끼며 나는 그 화폐를 짓밟는다.

 

  

 

**** 관습적 미덕을 파괴하고 싶은 화자의 뜻이 담긴 구절

 

 

  3

  조용하라!----

  위대한 것들에 대해선 ---- 나는 위대한 것을 본다!

  우리는 침묵하거나

  크게 말해야 한다.

  크게 말하라, 나의 축복받은 지혜여!

 

  나는 올려다본다----

  그곳엔 빛의 바다가 물결친다,

  오, 밤이여, 오, 침묵이여, 오, 죽은 듯 고요한 소음이여! 

  표지가 하나 보인다,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반짝이며 나를 향해 천천히 별자리 하나가 다가온다 ······

 

 

  4

  존재의 드높은 성좌여!

  영원한 조각의 판이여!

  너는 내게로 오는가?

 

  여태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그것은 네 말 없는 아름다움이다----

  어째서? 그 아름다움은 내 눈길을 피하지 않을까?----

 

  필연의 문장(紋章)이여!

  영원한 조각의 판이여!

  ---- 하지만 너는 알 거야,

  모두가 싫어하고

  나만 사랑하는 것,

  그건 네가 영원하다는 것!

  네가 필연적이라는 거야!

  나의 사랑은 이런 필연성을 통해서만

  영원히 불붙거든.

 

  필연의 문장(紋章)이여!

  존재의 드높은 성좌여!

  ---- 어떤 소망도 닿은 적 없고,

  ---- 어떤 부정(否定)도 더럽힌 적 없는,

  존재의 영원한 긍정이여,

  나는 영원한 너의 긍정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오, 영원이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