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 알바트로스는 거대한 바닷새이며, 포르투갈 이름이라고 한다. 큰 날개와 몸통 때문에 높은 공간에서만 날 수 있다.
시에 묘사된 것처럼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의 화살 따위는 우습게 알던 새 중의 새. '창공의 왕자'이며, 그의 흰 날개는
순수함의 상징처럼 보인다. 시인은 흰 날개 달린 알바트로스를 정신주의와 신비주의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 2연과 3연, 4연에서 추락한 알바트로스의 불구가 된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추락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창공의 왕자"에서 '창공'은 푸른 하늘이라는 물질적인 공간 이외에도,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이 이를 수 없는 상징적인
이미로서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구절에서 "구름의 왕자"도 초월적인 세계에 군림하고 싶은 시인의 내적인 욕망을 대변한다.
*** 천박한 뱃놈들에게 갖은 수난을 당하고 있는 추락한 알바트로스는 높은 이상과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식한 대중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당하고 박해받는 불행한 시인의 알레고리이다.
****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에서 "내몰리다"는 표현은 시집 『 악의 꽃 』 의 주요 테마를 담고 있다. 『 악의 꽃 』에는 이곳에 유배되어 온
영혼들의 아픔과 이곳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갈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하 생략]
< >
시지나*
상상해보라, 근사한 차림을 한 「다이아나」가
숲을 가로지르고 가시덤불 헤치고 가는 모습을,
머리칼과 가슴은 바람에 맡기고 몰이꾼의 환성에 취한
그 늠름함, 최상의 기사들도 무색하리!
당신은 보았는가, 살육을 즐기는 테루아뉴**를,
맨발의 민중을 선동해 돌격하게 하고,
뺨과 눈은 불타오르고, 제 맡은 역도 충실하게,
주먹에 검을 쥐고 궁궐의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시지나 또한 그런 모습이다! 허나 다정한 이 여장부는
살육을 즐기는 만큼 따뜻한 마음도 지녀;
그녀의 용맹은 화약과 북소리에 끓어올라도
애원하는 자 앞에서는 무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정열의 불꽃이 휩쓴 그녀 가슴은
그럴만한 사람에겐 언제나 눈물의 저수지 같다.
* 시지나Sisina는 게리Elisa Guerri라는 아가씨의 별명이다. 보들레르는 그녀에게 이 시가 실려 있는 잡지의
별책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사바티에 부인의 친구였고, 보들레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사바티에 부인의
사교 모임 살롱에서였다.
** 테루아누는 대혁명 때 활약한 여성 투사이다. 폭군들을 앞장서서 베르사유 궁전 계단을 오르는 테루아뉴를
연상하는 것은 엘리자 게리가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아당(A.Adam)은 쓰고 있다.
< >
우울
나는 비 많이 내리는 나라의 왕* 같아,
부자이지만 무력하고 아직 젊지만 늙어버려,
스승들의 굽신거림도 거들떠보지 않고,
강아지에도 싫증나고 다른 짐승들에도 싫증이 났다.
사냥감도, 매도, 아무것도 그에게 즐거움 되지 못한다,
발코니 앞에서 죽어가는 자기 백성마저도.
총애받던 광대의 우스꽝스런 노랫가락도
이 견디기 어려운 병자의 이맛살을 펴지 못한다;
나리꽃으로 수놓은 그의 침상은 무덤으로 바뀌고,
왕이라면 아무나 반해버리는 치장 담당 시녀들이
게 아무리 음란한 치장술을 만들어내도
이 젊은 해골로부터 미소를 끌어내지 못한다.
그에게 금을 만들어주는 학자마저도
그의 몸에서 썩은 독소를 뽑아내지 못한다,
권력자들이 말년에 갈망하는
로마인들이 전해준 피의 목욕도
그 속에 피 대신 푸른 「망각의 강」이 흐르는
이 마비된 송장을 데울 수 없다.
* 권태의 포로가 된 젊은 왕 테마는 「영웅적인 죽음」(『파리의 우울』)에 다시 나온다.
< >
백조*
빅토르 위고에게**
Ⅰ
앙드로마크, *** 나 그대를 생각하오! 그 작은 강물은
그대의 끝없이 장엄한 과부의 괴로움을
일찍이 찬란하게 비추던 가엾고 서글픈 거울,
그대의 눈물로 불어난 그 가짜 시모이 강은,
내가 새로 생겨난 카루젤 광장을 지나고 있을 때,****
불현듯 내 풍요한 기억*****을 살아나게 했다.
옛 파리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모습은
아! 사람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구나);
나는 머리 속에만 그려볼 뿐, 진을 친 저 모든 판잣집들을,
산더미 같이 쌓인 윤곽만 드러낸 주두와 기둥들,
잡초며, 웅덩이 물로 파래진 육중한 돌멩이들,
그리고 유리창에 빛나는 뒤죽박죽 골동품들을.
거기 예전엔 동물 우리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나는 보았다, 어느 아침 차가운 맑은 하늘 아래
「노동」이 잠을 깨고, 쓰레기터가 고요한 공기 속에
검은 먼지 내뿜고 있는 시각,
우리를 빠져나온 백조 한 마리*****+
바싹 마른 포도를 오리발 갈퀴로 비비며,
울퉁불퉁한 땅바닥 위로 그 하얀 깃을 끌고 있는 것을.
물도 없는 도랑 가에서 이 짐승 부리를 열고,
먼지 속에 제 날개 안절부절 멱감기며,
제 아름다운 고향 호수 그리는 마음 가득하여 말하기를:
"물이여, 언제 넌 비 되어 내리려니? 너 언제나 울리려니, 우뢰여?"
이 얄궂은 숙명의 신화, 불행한 짐승은
이따금 오비드*****++처럼 하늘을 향해
잔인하게도 파랗기만한 빈정대는 하늘을 향해
마치 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듯,
경련된 목 위에 굶주린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 아름다운 새 백조는 「알바트로스」에 그려진 불행한 알바트로스와 동일한 고통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 새를 통해
유배와 도시적인 성격을 그리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도시의 군중 가운데서 느끼는 고독이라는 역설적인 감정을 매우
깊이 느꼈던 그는 이 감정을 '파리의 우울'이라 이름 붙였고, 프랑스 제 2제정기 변형 중인 수도 파리의 공사 현장을 배경
으로, 도시로 밀려드는 뿌리뽑힌 군중들을 그린다.
** 그 당시의 영불해협 게른지 Guemesey에 망명가 있던 위고에게 시를 바친 것은 시의 주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 크다.
*** 트로이의 장군 헥토르의 아내 앙드로마크는 트로이가 함락되자 미망인이 되고, 적장 피류스에게 사로잡힌다. 그녀는 에피르의
도시 주변에 흐르는 강을 트로이에 흐르는 시모이 강으로 생각하고, 그 옆에 시체도 없는 남편의 무덤을 만들어 죽은 남편과 멀리
떠나온 고향을 생각한다. 그로부터 첫째 시절의 "그대의 눈물로 불어난 그 가짜 시모이 강"과 두번째 부분의 세번째 시절 '빈 무덤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앙드로마크의 모습이 설명된다. [ ···]
이처럼 '백조'라는 시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앙드로마크의 비극적 상황과 숙명적 불행을 사전에 환기시켜 백조의 처지와 불행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시인의 명상은 일상의 산보길에서 부딪치는 광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지금 한창 변형 중인 이 광장을 지나면서
지난 날 언뜻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다. [ ···] 진을 친 듯한 판잣집들도 윤곽이 잡힌 건물의 기둥도 그곳에 흩어져 있는 골동품들도
모두 '알레고리'가 된다.
***** 예사로운 광경이 갑자기 '풍요한 기억'을 자극한다. 물도 없는 파리의 보도에서 헛되이 물을 찾던 백조의 비극적인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 백조의 기억이 시인을 우울한 명상으로 몰고 간다. 보들레르는 이 시을 위고에게 바치며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데,
이것이 그의 시적 방법론을 밝혀 준다.
" 내게 중요한 것은 어떤 이미지, 어떤 사건이 가질 수 있는 암시적인 것입니다."
*****++ 로마의 시인 오비듀스Ovidius는 「Métamorphoses」에서 "하느님이 인간의 머리를 들어올리고 그에게 명하기를 하늘을
바라볼 것이며 시선을 별에 두라 하셨다"고 쓴다.
< >
Ⅱ
파리는 변한다! 그러나 내 우울 속에선
무엇 하나 끄떡하지 않는다! 새로 생긴 궁전도, 발판도, 돌덩이도,
성문 밖 오래된 거리도, 모두 다 내게는 알레고리 되고,
내 소중한 추억은 바위보다 더 무겁다.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나를 짓누르는 하나의 영상이 있어,
나는 생각한다, 미친 듯한 몸짓을 하고
추방당한 자처럼 우스꽝스럽고도 숭고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욕망에 시달리는 내 위대한 백조를! 그리고 그대 앙드로마크,
나는 그대를 생각한다, 위대한 남편의 팔에서,
천한 가축처럼, 뻔뻔스런 피류스의 손에 떨어져,
빈 무덤 곁에 넋을 일고 몸을 구부리고 있는 그대;
아! 헥토르의 미망인, 그리고 헬레뉴스의 아내여!
나는 생각한다, 폐병 들어 야윈 흑인 여자를,
진창을 밟으며 살기 등등한 눈초리로
끝없는 안개 벽 너머 찬란한 아프리카의
이곳에 없는 야자수를 찾고 있던 그 모습을;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눈물로 목 축이고
암이리처럼 「고통」을 젖 빨듯 살아가는
사람들! 꽃처럼 시들어 야위어가는 고아들!
이처럼 내 마음 귀양사는 숲속에
오랜 「추억」은 뿔피리처럼 숨가쁘게 울려퍼지누나!
나는 생각한다, 외딴 섬에 잊혀진 뱃사람들,
포로들, 패배자들! ······ 또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 >
거짓에의 사랑
오 시름에 찬 애인이여, 천장에서 부서지는
악기의 노래에 느릿느릿 발걸음 맞추어,
깊은 눈에 서린 권태로운 빛을 보이며,
그대가 걸어가는 것을 보면;
가스 등불에 물들고, 시름겨운 매력으로 꾸며져,
저녁의 횃불에 새벽이 밝아오는 듯한
창백한 그대 이마와 초상화의 눈처럼
매혹적인 눈을 바라보면,
나는 생각한다, "아 아름답기도! 그리고 이상하게 싱싱하기도!
육중한 황실의 탑처럼 묵직한 추억이
그녀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복숭아처럼 멍든 그녀 마음은
몸뚱이와 함께 능숙한 사람을 받기 위해 무르익었구나"
그대는 풍미 절정인 가을의 과일인가?
어떤 눈물을 기다리는 슬픈 꽃병인가,
머나먼 오아시스 꿈꾸게 하는 향기인가,
애무하는 베개인가, 아니면 꽃바구닌가?
나는 알고 있다, 소중한 비밀을 전혀 감추지 않고도,
가장 우수에 찬 눈이 있음을;
보석 없는 보석 상자, 유물 없는 유물함,
오 「하늘」보다 더 텅 빈 깊은 눈이 있음을!
그러나 진실을 회피하는 내 마음 기쁘게 해주기 위해선,
그대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대가 어리석건 냉당하건 어떠하랴?
가면이건 허식이건 상관없다!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거늘.
< >
보들레르(1821~1867): 19세기 프랑스의 시인. '현대성'의 이슈에 있어 가장 높이 평가되는 시인.
시집으로는 유일하게 『악의 꽃』 한 권을 남겼다. 이 외에 소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이 있고,
『내면의 일기』, 미술·음악 비평, 포 E.A. Poe의 작품 번역, 드퀸시의 작품을 번안한 『인공낙원』 등 산문체의 글들이 있다. 낭만파 시인들의 감정의 과잉과 절제 없는 노출을 혐오하며 탈낭만주의를 선언했다.
예술은 현대적 삶의 직접적인 표현이어야 함을 인식하고 미술 비평 등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비평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