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지상에서 안식을 찾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이 가슴
하늘 높이 들어 올려 주오.
나 푸른 풀숲에 드러눕네.
샘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눈은 흐릿해지고, 뺨은 젖고,
영혼은 환해지며 맑아지네.
나뭇가지들은 몸을 숙여
제 그늘로 감싸 주네,
삶에 지치고 병든 이 몸을,
마치 고요한 무덤처럼.
푸른 숲속에서 나 죽고 싶네,
아니야! 아니야! 이딴 쓰린
생각은 접자! 푸른 숲속에는
새들의 노랫소리 즐겁게 울리고
참나무들은 머리를 흔드니
머지않아 그곳에서는
숭고한 여러 힘들이
너의 관을 흔들 테고
그곳에는 영혼의 평화가
네 무덤에 깃들 테니.
영혼의 평화를 통해 너는 이곳
지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겠지.
구름들은 황금빛 빛살로
너를 눈처럼 하얗게 에워싸고,
분노로 둥글게 뭉쳤다가
번개의 불꽃들을 지상에
내려보내고, 하늘은 운다,
이 사랑스러운 봄철에
환희가 사방에 메아리치는데
이 세상에 죽음을 바라는 자,
단 한 사람뿐이구나,
너를 향해 쓰린 눈물이 떨어지고
그리고 너는 눈을 뜨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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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태양은 산으로 기어올라
오르고 또 오르며
한 걸음 뗄 때마다 쉰다.
세상은 왜 이리 시들었는가!
후줄근해진 실들을 타며
바람이 노래를 연주한다.
희망은 도망쳤고,
바람은 사라진 희망을 슬퍼한다.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오, 나무의 열매여,
너는 떨다가 떨어지는가?
그 밤이
네게 어떤 비밀을 가르쳐 주었기에
얼음 같은 전율이 네 뺨을,
붉은 네 뺨을 뒤덮는가?
너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는가?
누가 계속해서 말하는 걸까?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나는 이제 아름답지 않아"
----별꽃도라지가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
사람들은 지금도 꽃을 봐야 해,
내게 몸을 구부려
아! 나를 꺾어도 돼----
그러면 그들의 눈에는
추억이 반짝이지,
나보다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억이----
그것을 보면서, 그것을 보면서, 나는 죽어 갈 거야."
지금은 가을, 네 마음을 울리는 가을이다!
날아가라! 날아가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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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가 나는 좋다.
이런 언어는 활달하게 뛰어 다가오고,
상냥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좀 서툴러도 그냥 사랑스러우며,
안에 피를 품고 있어 씩씩하게 숨 쉬고,
귀머거리의 귀에조차 기어오른다,
몸을 돌돌 말고 있다가 이내 파닥인다,
언어가 하는 일, 언어는 즐거움을 준다.
언어는 섬세한 생명체라서,
병들기도 하고 낫기도 한다.
그 조그만 생명이 제 삶을 살도록 둬야 하며,
잡을 땐 가볍게 살포시 잡아야 한다.
서툴게 더듬거나 짓누르면 안 된다,
나쁜 눈길만 닿아도 죽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기 흉한 몰골로 누워 있다,
영혼도 없이 불쌍하고 차갑게,
그 작은 시체는 볼품없이 변하다,
죽음의 손길에 들볶여서.
죽은 언어는 흉측하다,
울림도 없는 달가닥 소리에 불과하다.
모든 언어를 죽게 만드는
끔찍한 짓들이 창피한 것임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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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스마리아*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기다리며, 기다리며 ----뭘 기다린
것도 아니면서,
선과 악의 피안에서, 때로는 빛을 즐기고,
때로는 그림자를 즐기면서, 온통 놀이,
온통 바다, 온통 한낮, 온통 목표도 없는 시간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벗이여! 하나가 둘이 되었다**----
---- 그리고 자라투스트라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
* 실스마리아는 스위스 알프스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니체에게 창작의 요람이 되어준 곳이다.
이곳의 한적한 오두막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던 니체는 8월의 한 산책 길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렸다.
** "하나가 둘이 되었다"는 표현은 시인의 자아가 옛것과 새것으로 나뉘며 탈바꿈하는 것을 뜻한다.
명성과 영원
1
그대는 벌써 얼마나 오래도록
그대의 불행 위에 앉아 있었나?
조심하라! 그대는 아직도 나를 위해서
알 하나를,
바실리스크***의 알 하나를
그대의 오랜 고통으로 품어 부화한다.
왜 자라투스트라는 산 위에 잠복하고 있나?
의심 품은 눈빛, 종기 투성이, 음울한 표정,
오래 잠복한 자의 모습----
그러나 갑자기 한 줄기 번개가,
밝고 무섭게, 벼락이
심연에서 하늘을 향해 번쩍인다.
---- 산의 내장까지
마구 흔들린다 ······
증오와 번갯불이
하나가 될 때, 하나의 저주가 될 때,
산 위에는 이제 자라투스트라의 분노가 살고 있다,
분노는 먹구름이 되어 제 갈 길을 간다.
남은 한 장의 이불이 있는 자들은 그리로 기어들어라!
너희 연약한 자들아, 침대로 들어가라!
이제 둥근 천장 위로 천둥이 구르고,
들보와 담벼락이 흔들리고,
번개와 누런 유황빛 진리는 요동친다,
자라투스트라는 저주한다 ······
*** 북아프리카 사막에 산다는 환상의 뱀으로 눈빛만 쏘여도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플리니우스(23-79)의 『박물지』에 나온다.
2
세상 어디나
이 화폐로 지불한다,
명성이라는 화폐로,
장갑 낀 손으로 나는 그 화폐를 움켜쥐고,
구역질을 느끼며 나는 그 화폐를 짓밟는다.
지불받기를 원하는 자 누구인가?
자신을 팔려 내놓은 사람들 ······
제 몸을 팔려 내놓은 사람은
살찐 두 손으로
어디서나 양철 소리 나는 이 명성을 움켜쥔다!
그대는 명성의 화폐를 사고 싶은가?
이 명성들은 누구나 살 수 있다.
어서 더 많이 내놓아라!
두툼한 지갑을 흔들어라!
그리하여 명성들을 강하게 하라,
명성들의 미덕을 강하게 하라 ······
명성들은 모두 미덕을 지녔다.
명성과 미덕---- 둘은 잘 어울린다.
이 세상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미덕의 요설을
명성의 요설로 지불할 것이며,
세상은 이런 소음을 먹고 살아갈 것이다 ······
모든 미덕 앞에서 나는
죄를 저지르고 싶다,
아주 큰 죄를 짓고 싶다!****
모든 명성의 나팔들 앞에서
나의 공명심은 구더기가 되고,
그런 나팔들 아래에서 나는
가장 낮은 자가 되겠다 ······
세상 어디나
이 화폐로 지불한다,
명성이라는 화폐로,
장갑 낀 손으로 나는 그 화폐를 움켜쥐고,
구역질을 느끼며 나는 그 화폐를 짓밟는다.
**** 관습적 미덕을 파괴하고 싶은 화자의 뜻이 담긴 구절
3
조용하라!----
위대한 것들에 대해선 ---- 나는 위대한 것을 본다!
우리는 침묵하거나
크게 말해야 한다.
크게 말하라, 나의 축복받은 지혜여!
나는 올려다본다----
그곳엔 빛의 바다가 물결친다,
오, 밤이여, 오, 침묵이여, 오, 죽은 듯 고요한 소음이여!
표지가 하나 보인다,
까마득히 먼 곳으로부터
반짝이며 나를 향해 천천히 별자리 하나가 다가온다 ······
4
존재의 드높은 성좌여!
영원한 조각의 판이여!
너는 내게로 오는가?
여태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그것은 네 말 없는 아름다움이다----
어째서? 그 아름다움은 내 눈길을 피하지 않을까?----
필연의 문장(紋章)이여!
영원한 조각의 판이여!
---- 하지만 너는 알 거야,
모두가 싫어하고
나만 사랑하는 것,
그건 네가 영원하다는 것!
네가 필연적이라는 거야!
나의 사랑은 이런 필연성을 통해서만
영원히 불붙거든.
필연의 문장(紋章)이여!
존재의 드높은 성좌여!
---- 어떤 소망도 닿은 적 없고,
---- 어떤 부정(否定)도 더럽힌 적 없는,
존재의 영원한 긍정이여,
나는 영원한 너의 긍정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오, 영원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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