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작은 총 9편입니다. 수상작의 분량을 고려하여 1부와 2부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
강산에
유현성
여기의 동물들은 거짓말을 사고 판다.
훌륭한 거짓말은 세계에 신빙성을 더해줌으로
우리에게 더욱 현실적인 진실은 필요가 없다.
토끼의 경우
어렸을 적 불렀던 노래 가사가 금서에 일부라는 것을 토끼는 알고 있
다. 생산라인 A동에서 머릿속으로 가사를 부르며 토끼는 유물들 위로
공업용 거짓말을 붓는다. 공업용 거짓말은 3% 정도의 사실로 구성된 액
체 유형의 말로 발음되는 휘발성이 매우 높아 늘 공업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독성의 거짓말에 감염될 수 있어 대화가 불투명
해질 수 있다.
생산라인 B공장의 한 구석에서는 필리핀 앵무새를 사육장에 가둬두
고 약간의 사실과 함께 거짓말을 읊게 하는데 이때 흘리는 침을 모아
90% 이상의 거짓 농도로 압축해 드럼통에 담는다. 이것은 악취가 매우
심하며 필리핀 앵무새들이 가끔 괴롭다고 이야기하면 방독면을 부리에
씌우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게 한다.
생산된 거짓말 드럼통은 제약 회사에서 가공해 코미디언을 위한 알
약으로 판매된다. 코미디언들은 대체로 긴장하면 진실을 내뱉기 마련이
라 우환청심환처럼 해당 알약을 복용해 유려한 유머를 선사한다. 웃음
이란 건 대체로 진실된 경우가 많다. 체내에서 거짓말을 해독하면서 나
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토끼는 공장 뒤 편으로 가 담배를 태운다. 비가 내린
다. 공장 내부는 안전처럼 침묵이 가장 중요함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
다. 토끼는 연기와 함께 말을 내뱉는다. 강물에 몸을 던져 쓴 편지는
어디로 흘러가나
코끼리의 경우
코끼리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유서 깊은 노래가 코끼리에 대한 예언을 한다. 예언은 유예된 거짓말
이라서 예언의 시간이 되지 않으면 거짓일지, 진실일지 모른다. 오늘도
코끼리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라서 인간들은 코끼리코를 하고 빙빙 돈다. 한쪽
손으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코끼리 코를 만든다. 회전하는 인간들의
어지러움은 마치 원심분리기처럼 거짓된 마음을 뽑아내는 장치와 같다.
코끼리는 고무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나라에서 가장 많은 거짓된 마
음을 생산한다. 마음은 먹기에 달렸으므로 코끼리는 마음을 주면 코로
먹는다. 코로 먹은 마음은 엔돌핀을 생산하며 이 엔돌핀은 거짓말을 하
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준다. 코끼리의 조증은 거짓말의 증상이다.
코끼리는 마음에 취해 꽤 오래 일어나지 못한다. 육중한 몸을 코로 일
으키는 것이 불가능함으로 앉은 채로 비틀거린다. 그 시간이 왔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래.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서 수출 품목에 해당 되지 않는다.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반쯤은 맞는 말이라서
원숭이는 야유하며 바나나 껍질을 던진다.
원숭이의 경우
이 원숭이는 코끼리 띠다. 십이지신 중에 거짓말을 한 동물은 쥐라서
이 나라는 쥐를 잡지 않는다. 원숭이는 속이기 위해 거짓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진심을 가질 수 있다. 진심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불행
한 것이다.
원숭이는 유일하게 동물로 수출된다. 수출된 원숭이는 필요에 따라
TV에 등장하며 TV는 과도한 현실을 보여준다. 과도한 현실에 따라 사
상이 구축되는 이 동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혼란에 빠진 것은 쥐들이
었다. 쥐들은 드럼통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었다. 너무 많은 생존의 진심
들이 가득해서 세상을 위협할 수 있었다.
원숭이는 이때 이 드럼통을 관리한다. 도시의 인간이 쥐를 관리하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거짓말이다. 코끼리 띠 인 것도,
그래서 원숭이로 하자는 것은 모두 코끼리 빼고 결정한 것이었다.
인간의 경우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 드럼통을 도시에 떨구기도
한다. 드럼통이 터지면 생존한 단 한 마리의 쥐가 배를 두르리며 노래한
다. 강물에 몸을 던져 쓴 편지는 어디로 흘러가나, 코끼리는 코
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 코로 먹지요. 어린이들은 이를 따라 부른다.
공장에서 탈출한 앵무새가 창공을 날며 이를 따라 부른다. 독재자가 예
언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강물에 몸을 던져 쓴 편지를 읽은 것이다. 역
사는 흐른다.
< >
취업전선
초음파를 쏘는 돌고래는 지금 초음파실에서 잘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력서에 사주를 써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
주풀이도 틀렸습니다. 후···. 선생님, 옛날에 지방간으로 유명하셨든, 지
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이제 선생님은 그냥 일반적인 오리
일뿐이라고요. 예전에 자기 간이 최상급 푸아그라였든 아니든, 기업이
원하는 밥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뭐 나중에 제사상에서 유명해지려면
계속 그러셔도 상관없어요. 적어도 자식들 주둥이에 뭐라도 넣어야 하
지 않겠습니다. 폭탄주 드셔가며 지방간을 늘려가는 게 요즘 취업 트렌
드는 아니라고요. 그게 한 시절의 자랑이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이
너스입니다. 마이너스.
그러니까, 인간은 앞으로 친구를 낳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은 적어도
유사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일을 시켜주지 않아요.
아까 얘기했던 돌고래도 결국 병원의 작은 수조관에서 초음파를 쏘며
내장 검사에 일조하고 있어요. 기계가 아니라 나름의 생체적 장점이라
는 거죠. 거미는 미싱 공장에서 수선 시다를 하면서 돈 좀 만지고 있고
요. 아아, 그렇죠. 사실 침팬지로 태어나지 않으면 요즘엔 취업이 힘든
거, 알죠. 그럼 전생에 좀 덕을 쌓던가 해야 하는데 동물이신 건 어쨌든
전생을 잘 못 사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전생이 입시처럼 변하고 나서부
터는 지금이라도 인간을 도우며 덕을 쌓아야 다음 생이든 자식이든 잘
살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려고 양에게 고개를 숙여가면서 재생을
배우고 있어요. 호랑이도 사실 게으름과 나태함을 타고난 게 아니거든
요. 이름을 남기려니 양이 되어야 하는 상황. 억울한 거 다 참고 살아요.
그 자존심 강한 호랑이도요.
그래도 선생님은 좀 다행이죠. 오리털 파카 공장은 늘 인원, 아니 동
물원, 아니 하여튼 일할 동물이 부족하거든요. 고운 털을 뽑아내려면 좋
은 사료를 먹여야 해서 직원 복지도 좋다고 소문이 났고요. 뜨거운 온탕
에서 털 뽑아내는 게 고역이라지만 뭐, 온탕에 있으면 혈액 순환도 되고
좋지 않습니까. 겨울에 맨살로 다니지 말라고 자기 털로 만든 오리털 파
카를 지급해주기도 하고요.
선생님. 그러니까 침팬지처럼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요. 손이 있어야 하는데 날개가 있어버리면, 심지어 나시지도 못하
잖아요. 나셨으면 매처럼 비행장에서 바람에 취한 작은 새들 버드 스트
라이크 안 나게 통제원으로 할 수야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험악하게 생
기시지도 않잖아요. 그죠? 자자, 이제 그냥 제가 추천하는 곳으로 지원
하세요.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려면 어쩌겠습니까. 지금이 앞으로의 전
생이 되는 시대인데, 잘 하셔야죠. 취업 전선이지 않습니까.
< >
비 공장
1.
비를 수출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젖은 동물들이 조금 상처받았다.
2.
동물들에겐 우월한 방어기제가 필요했다. 양이 말했다. 이솝우화라고
알아? 역사적으로 인간은 우리를 그렇게 모욕했대. 우리가 자존감이 낮
은 게 아닐까. 이렇게 무리지어 있는데도. 우린 괜찮지 않니? 건기에 모
여 우기로 사라지는 일도 우리만 가지고 있는 우월한,
3.
은은 멀리서 무리 짓는 동물들을 본다. 물방울들 속의 금붕어들과 같
구나. 그 금붕어가 자신이 물방울보다 더 커지면 안 된다는, 쓸 때 없는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옆에 있던 은의 친구 양은 울면 되
잖아. 울면. 눈물은 그때 금붕어의 유일한 건축자재가 아니겠어? 라고
말했다. 울음으로 커지는 세상. 눈물에 비례해 커지는 세상을 은은 생각
했다. 생각보다 순한 양은 잘 서러워지고, 잘 운다.
은은 집으로 돌아와 금붕어에게 밥을 준다. 눈물에 비해 어항이 너무
크다는 생각. 저 금붕어들은 생존에 대해 굉장히 게으른 것이 아닐까.
먹이사슬도 없는 곳에서 내가 주는 것에 만족하는 게으른, 아주 게으른
슬픔쟁이들.
은은 먹이를 주지 않는다. 금붕어는 이제 다른 금붕어를 먹는다. 은은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금붕어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
를 먹고 그 새끼를 먹어서,
4.
동물들은 밤구름에 비친 도시의 빛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 옛날에, 옛
날에는 불꽃놀이를 했었대. 인간이. 인간만의 놀이로서. 우리도 그런 놀
이를 가지면 좋겠어. 양은 말했다. 양의 친구 양은 형광 침을 하늘로 뱉
었다. 끈적한 형광침이 밤구름에 붙었고 밤구름은 도시 쪽으로 흘렀다.
떨어지면 좋겠다. 천사들이 가끔 우리에게 들려서 털을 수거해갈 때,
우리는 왜 깃털과 교환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교환가치를 아무도 만들
지 못했잖니. 양이 나무랐고 양의 친구 양은 서러워졌다. 울기 시작했
고, 눈물 속에 눈물보다 작은 금붕어가 슬그머니 수면 위로 뻐끔거렸다.
배고파.
5.
은은 어제 비공장 공장장에게 혼났다. 은이 수거한 구름에서 알 수 없
는 형광 물질이 발견되어 타국이 비 수입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공
장은 큰 손해를 봤고, 나라의 자랑거리였던 비수출은 금지되었다. 은은
실직 당했다. 은은 울지 않았다. 세상이 이보다 더 커지면 더 문제니까.
어항엔 한 쌍의 금붕어만 남았다. 물은 탁했다. 호흡하면서 동족의 육
질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을 빨아들이면서 아가미는, 어떻
게 고기찌꺼기를 걸러낼까. 은은 공장에 형광 물질을 발견할 수 있는 검
사 장치가 있었다면, 자신은 실직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6.
은은 수조에 얼굴을 넣고 울었다. 은이 울면 울수록 물은 맑아졌다.
수출되지 못한 비는 전국에 쏟아져 내렸다. 그건 울기와 우기 사이의
어떤 절기였다. 동물들은 자주 비에 젖었지만 형광색의 그 어떤 것도 국
내엔 내리지 않았다.
울기와 우기가 끝나자 다시 비 수출은 계속될 수 있었다. 모두 은이
한참을 울어둔 덕분이나 은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양과 동물들은 우월한 무언가를 가진 것 같았다. 우월하고 우월한
< >
맨발의 햄스터
내가 민달팽이라서 신발을 신을 때마다 작은 집에 발을 넣는 것 같다.
달팽이 같은 신발이 집 같은 나를 이고 간다. 내 안에 세든 것들은 빈방
밖에 없는데 발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내는 월세 때문 일거
다. 전세 사기 같은 무서운 거는 나만 상상하는 거고 반전세 같이 현실
적인 건 나보다 강한 부모가 생각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부모는 내가 키우는 햄스터에게 집값을 요청하진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햄스터에게 씨를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하지 않을 것이
다. 동물보험 같은 게 아직 없다는 건 생활사에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른
다. 가끔 친구가 집들이로 사오는 해바라기 씨 같은 게 좋았다. 두루마
리 휴지는 책장에 너무 많았다. 두루마리 휴지는 둘둘 말린 성경종이 같
은 것이었다. 떨어트리면 많은 것들이 풀려나왔다.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날이면 왠지 아프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밀린 보험료가 있었고 그걸 내기 전까지 보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때 기필코 아프지 않기로 한 것이 건강해질 수 있는 이유였
다. 보험료를 낼 때마다 자꾸 기침이 났다. 나는 괜찮다고 헛손질을 하
면서 신발 안에서 비틀거렸다. 해바라기 씨가 밟혀서 불편했지만 나는
해바라기처럼 크게 자라지 않아서 좋았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 해바라기 씨를 툭툭 손 위에 털어냈다. 햄스
터가 투명 케이지에서 킁킁거렸다. 이것이 내 노동의 결과라면 충분했
다. 보험료는 월마다 밀리고 밀려서 내 앞에 사라지고 없었다. 효력이
없는 미래의 두려움 같은 것이 성공의 장애물이라고, 보험 설계사가 얘
기했던 것 같다.
쌀통에 쌀이 없었다. 부모는 햄스터보단 나를 의심했다. 쌀통은 햄스
터보다 크니까. 햄스터가 쌀통보다 컸다면 의심을 피해갔을 것이다. 들
킨 것이 뭔가 서러웠다. 앞으로 라면에 밥을 말아먹지 않기로 했다. 월
급 차압보단 나았던 것 같다. 나는 신발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족저근막염에 걸렸다.
발바닥이 아팠다. 당분간 밑창이 딱딱한 신발은 신지 말고 최대한 적
게 걸으며 체중을 줄이라고 했다. 나는 볼에서 쌀알들을 뱉어내 체중을
줄였고 사족보행으로 최대한 적게 걸었다. 신발엔 나무톱밥을 깔았다.
햄스터는 귀여우니까 모든 것이 용서됐고 나는 아프다는 이유로 월세를
면제받았다. 더 나아가 사족보행을 포기하면 민달팽이가 되는 거고 민
달팽이는 문밖에서 소금 면박을 받으면 죽는 거다. 나는 가만히 누워 말
랑해지고
부모는 돌아와 문밖으로 소금을 뿌렸다. 재수 없는 일이 있었다고 했
다. 나는 방문 밖을 나설 수 없었다. 바닥에 해바라기 씨 같은 소금이 가
득했다. 소금기둥이 해를 바라보며 크게 자랄 것만 같았다. 햄스터에게
독립을 바라는 건 동물 보험이 생긴 다음일 것이다.
< >
≫≫≫2024년 제26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2부에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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