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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 시인의 시 ■ 시각장애인과 시계 수리공 & 엎드려서 & 활선공 & 어린 밀수꾼 & 생장의 방식. · 시각장애인과 시계 수리공     시계를 고쳐주고 돌아섭니다  그는 창고에서 울고 있습니다 자신이 묻혀 사는 목소리를 떠나려고  시간 밖에서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너의 손은 매우 젊구나 가장 낯선 부분을 만지면서   때로 닫힌 눈을 생각할 때 그는 수수께끼라고 여겼습니다  철근을 붙잡고 이것은 수수께끼라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삶은 어떤 시간입니까  돌아선 채 한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손으로 볼수 있는 시계를 쥐여주고   고대 슬라브 교회의 기도문에는 한숨이 있습니다창고 문을 열고 소금과 감탄사, 머리카락과 눈물, 수염과 손가락 들을 모아놓은 죽은 목록을 들추어봅니다 모든 것은 명징하고 해독할 수 없는 양식만 남아생활이 되었습니다 시계는 살아서 움직이고 이제 밖으로 가야 하는 것은 무.. 2025. 3. 3.
■ 안태운 시인의 시 ■ 기억 몸짓. 기억 몸짓     당신의 모습이 희미해진다  해식동  곶자왈  당신은 어루만졌다  세월과 물질이 만들어낸 형태들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들  당신은 기어간다 당신은 보행한다 당신은 날아다닌다 당신은 헤엄친다  내 숨은 또다른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멀리서 영상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잔다  해령  몸을 건사하는 건 어떤 느낌인가  몸을 짊어진다는 건 변태한다는 건 분화한다는 건  노래를 잎에 달고 사는 얼굴들  떨림들  불길을 피해 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번지기 전에  폭우를 피해 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휩쓸기 전에  곤충의 솜털  당신의 몸짓  당신이 머뭇거리는 시공간  흩날리는 재가 도시의 불빛에 비친다  아스팔트 위로 식물이 번창한다  당신은 걸어간다 당신의 몸을 보호하는 재질들로 꽁꽁 싸맨.. 2025. 1. 16.
2025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예의」, 최경민 시인. 예의  최경민 ​   옆자리가 그랬다 살아있으면 유기동물 구조협회구요 죽어있으면 청소업체예요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나가면 누울 자리를 뺏긴다는 걸 ​그래도 가야 한다 새벽에 하는 연민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대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쌍했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고양이는 새벽에 일어난 우리들보다조금 더 불쌍하다​그래도보고 올까요 죽어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우리는 그러기로 했다 관할구역 끝까지 갔다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 걸 하는 게 기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당선소감: 민원 현장 그려내··· 일상, 詩 내부로 들어와  시를 쓰는 일이 절박하지 않아졌을 때 응답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가 다만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것, 시를 무엇보다 우선했던 순간들이 빚었던 과잉들이 씻겨나가고 쓰는 행위만 .. 2025. 1. 8.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사력」, 장희수 시인. 사력 장희수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당선소감: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멀어, 그런데도 시를 쓰는 건 '기쁨' 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 2025.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