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3 ■ 김석영 시인의 시 ■ 충돌과 반동 & 진짜 돌 & 선택 & 상상선 &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 & 가짜 돌 무거움은 오브제로 단순하게 들고 있기. 미신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죽은 자의 혼령이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던 무당은 돌을 들어야 했지요. 충돌과 반동* 할머니는 돌이 없는 곳에서 돌을 들고 있다. 모두가 돌은 아니지만 돌이 존재하는 곳. 할머니는 꼿꼿이 서서 밖을 내다본다. 나는 할머니의 돌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하반신이 없다. 하반신이 있음에도. 돌이 할머니의상반신을 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돌은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액자 속의 두 손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반복이다. 들고 있는 사물은 이제는 잊혔지만 돌이라 불렸던 것이라고. 지구의 유물처럼 남은 거라고. 거기는 돌이 없구나. 내가 손을 내밀자 거기에 돌이 있다. 59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30년생... 2024. 4. 28. ■ 이해존 시인의 시 ■ 이물감 & 꼼치 & 벙커 & 쉰 & 四인칭 무방비 상태에서 불현듯 솟아나는 것온통 나를 골라내는 순간남겨지는 것 이물감 원숭이가 털을 고르듯 쭈그려앉아 바닥에 놓인 신문을 읽듯 쌀알을 휘저어 돌을 골라낸 적이 있다 고르는 것과 골라낸 것을 갈라놓고 같은 색깔이 될 때까지 쌀알이 나를 집중할 때까지 촉감이 파고든다 모래사장에 깔아놓은 은박지 앉은 자리를 향해 오므라드는 바닥 모래사장보다 따갑다 옷에 달라붙은 고양이 털을 떼어내다 고양이 털로 짠 스웨터를 생각한다 가장 가까웠던 사이가 핏기를 잃어가는 순간 나늘 본뜬 차가운 손을 만질 때 낟알 껍질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몸속에 돋아나는 촉감 밥을 먹다 돌을 깨문다 무방비 상태에서 불현듯 솟아나는 것 온통 나를 골라내는 순간 남겨지는 것 식탁에 앉아.. 2024. 4. 27. ■ 정현우 시인의 시 ■ 스콜 & 소멸하는 밤 & 마들렌 & 유리 숲 나열할 수 없는 슬픔은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걸까, 모든 비는, 두 눈은. 스콜* 옥상 위에서 유리를 껴안고 뛰어내리는 사람, 너는 이마에 빗물을 맞고 서 있다. 인간이 가진 울음을 모두 흘릴 수 없다는 것을 무심히 뛰어내린 철로 위에서 괴로움을 나눠도좋을 너를 그곳에 오래도록 세워두고 돌아온다. 우리는 거대한 침엽수 아래 빗소리를 듣는다. 잠기기만을 기다리는 마을과 수몰하는 나의 죄를, 단 한 번 수거해가는 감긴 두 눈을 신의 손이라 아름답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이해가 되는 것, 기도하는 만큼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것. 왜 울고 난 뒤 두 눈은 따스할까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기위해 늘, 그 자리 없는 것들은 빗소리가 난다. 먼 구름아래,.. 2024. 4. 26. ■ 장수진 시인의 시 ■ 목숨, 대머리 여인, 띄엄띄엄 말하기, 가위 바위 보, 그러나 러브스토리 일생에 한 시간천사가 될 수 있다면날개는 한 권의 책일지 모른다 목숨 일생에 한 시간 천사가 될 수 있다면 날개는 한 권의 책일지 모른다 일생을 나방 같은 존재로 살아왔다면 미움을 받게 되겠지 빛을 삼켜봐 북회귀선을 두 동강 내며 날아온 작고 예쁜 너의 목숨을 "담장 밖에서 슬피 우는 것이 누구인가, 내 누이의 착한 애인인가." 사내가 조등을 내건다. 대머리 여인 황망한 얼굴이 담을 넘어 그늘 속으로 숨어든다.몸이 없는, 붉고 놀란 얼굴. 두서없는 유언처럼 흩어지는 벌레의 행렬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기웃거린다. "담장 밖에서 슬피 우는 것이 누구인가, 내 누이의 착한 애인인가." 사내가 조등을 내건다. 등 아래 화분이 어른거린다. "장미, 장.. 2024. 4. 25.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