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5 ■ 서대경 시인의 시 ■ 원숭이와 나 & 사유 17호 & 고아원 & 굴뚝의 기사 & 천사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Untitled(Brass) 원숭이와 나 함박눈 내리는 밤 원숭이와 나 도깨비 선생 댁 처마 아래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드르륵 창문 열리는 소리 소복소복 쌓이는 흰 눈 위로 도깨비 선생 뿔 그림자 털북숭이 팔 그림자 서 선생, 눈 구경 나오셨소 원숭이가 내 어깨 위로 뛰어올라 내 머리 위에 앉아 도깨비 선생과 악수하고 거 하늘 좋다, 저승길이 환하구먼! 도깨비 선생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도깨비 선생 가래 뱉는 소리 드르륵 창문 닫히는 소리 한밤이 다 가도록 나붓나붓 떨어지는 눈 그림자 도깨비 선생 댁 처마 아래 원숭이와 나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사유 17호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차양 끝에 엉긴 물방울을 물.. 2024. 5. 1. ■ 이장욱 시인의 시 ■ 편집증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 절규 & 바지 입은 구름 & 코끼리 그러므로 안 보이는 중심을 향해 집요하게 흙을 파고드는제 몸의 지하에 대하여. 편집증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밤새도록 점멸하는 가로등 곁, 고도 6.5미터의 허공에서 잠시 生長을 멈추고 갸우뚱히 생각에 잠긴 나무. 제 몸을 천천히 기어오르는 벌레의 없는 눈과 없는 눈의 맹목이 바라보는 어두운 하늘에 대하여, 하늘 너머의 어둠 속에서 지금 더 먼 은하를 향해 질주하는 빛들에 대하여, 빛과, 당신과, 가로등 아래 빵 굽는 마을의 불꺼진 진열장에 대하여, 그러므로 안 보이는 중심을 향해 집요하게 흙을 파고드는 제 몸의 지하에 대하여. 텃새 한 마리가 상한선을 긋고 지나간 새벽 거리에서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난간들, 나는 온힘을 다해 아주 오래된 멜로디를 떠.. 2024. 5. 1. ■ 김석영 시인의 시 ■ 충돌과 반동 & 진짜 돌 & 선택 & 상상선 &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 & 가짜 돌 무거움은 오브제로 단순하게 들고 있기. 미신이었던 때가 있었지요. 죽은 자의 혼령이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던 무당은 돌을 들어야 했지요. 충돌과 반동* 할머니는 돌이 없는 곳에서 돌을 들고 있다. 모두가 돌은 아니지만 돌이 존재하는 곳. 할머니는 꼿꼿이 서서 밖을 내다본다. 나는 할머니의 돌을 바라본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하반신이 없다. 하반신이 있음에도. 돌이 할머니의상반신을 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돌은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액자 속의 두 손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반복이다. 들고 있는 사물은 이제는 잊혔지만 돌이라 불렸던 것이라고. 지구의 유물처럼 남은 거라고. 거기는 돌이 없구나. 내가 손을 내밀자 거기에 돌이 있다. 59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30년생... 2024. 4. 28. ■ 이해존 시인의 시 ■ 이물감 & 꼼치 & 벙커 & 쉰 & 四인칭 무방비 상태에서 불현듯 솟아나는 것온통 나를 골라내는 순간남겨지는 것 이물감 원숭이가 털을 고르듯 쭈그려앉아 바닥에 놓인 신문을 읽듯 쌀알을 휘저어 돌을 골라낸 적이 있다 고르는 것과 골라낸 것을 갈라놓고 같은 색깔이 될 때까지 쌀알이 나를 집중할 때까지 촉감이 파고든다 모래사장에 깔아놓은 은박지 앉은 자리를 향해 오므라드는 바닥 모래사장보다 따갑다 옷에 달라붙은 고양이 털을 떼어내다 고양이 털로 짠 스웨터를 생각한다 가장 가까웠던 사이가 핏기를 잃어가는 순간 나늘 본뜬 차가운 손을 만질 때 낟알 껍질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몸속에 돋아나는 촉감 밥을 먹다 돌을 깨문다 무방비 상태에서 불현듯 솟아나는 것 온통 나를 골라내는 순간 남겨지는 것 식탁에 앉아.. 2024. 4. 27.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