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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95

■ 박은정 시인의 시 ■ 밤과 꿈의 뉘앙스 & 한 뼘의 경희 & 산책 & 까마귀를 훔친 아이 & 302호 어젯밤엔 술잔을 던졌고  내일 밤은 보들레르의 시를 읊으며  단골 바에서 울고 있을 예정이야  한 뼘의 경희     개의 그림자는 한낮  죽은 나무들은 이름이 없다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매주 종로에 모였다   서툴게 인사를 나누며  출렁이던 사람들 틈에서  어깨를 움츠린 경희를 만났다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한 뼘의 경희   너는 영화를 좋아했고  롱부츠를 자주 신었고  붉은 입술이 온기로 부풀던 아이   덜 아문 상처를 서로 할퀴며  그럴 때마다 눈물이 솟아나는 게 신기해   훔치던 두 손을 모른 척하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무릎을 껴안고 숨어 있는 게 안전해   어젯밤엔 술잔을 던졌고  내일 밤은 보들레르의 시를 읊으며  단골 바에서 울고 있을 예정이야   우리에겐 애인.. 2024. 4. 18.
■ 윤은성 시인의 시 ■ 계약 & 주소를 쥐고 & 원탁 투명 & 공원의 전개 & 선셋 롤러코스터 켄트 씨는 그런 춥고 느린 장면들이함박눈이 내리는 길고 긴 오후의 인상처럼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계약     트렁크를 끌고서  켄트 씨가 걸어간다.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한 적은 없었다.   연락이 가끔 더뎠고  계좌에 잔액이 줄었다.   일을 구하는 것이 늦어지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는 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다 돌길을 걸어  사라지고 있었다.   켄트 씨는 그런 춥고 느린 장면들이  함박눈이 내리는 길고 긴 오후의 인상처럼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천천히 낙하하는 눈을  좋아하는 켄트 씨는   자신의 트렁크 안에 비가 내린다고 했다.   열면 멈추지 않고 우는  신들의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한 신들 역시  끌어안을 것을 모두 놓친 것이 아닐.. 2024. 4. 16.
■ 이수명 시인의 시 ■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 물류창고 & 이디야 커피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오늘 하나씩 천천히 불 켜지는 거리를 걸어보지 않겠니  하늘을 위로 띄워보지 않겠니  부풀어 오르는 셔츠에 재빨리  우리는 죽었다고 쓰지 않겠니   풍경을 어디다 두었지 뭐든 뜻대로 되지 않아  풍경은 우리의 위치에 우리는 풍경의 위치에 놓인다  너와 나의 전신이 놓인다   날아다니는 서로의 곱슬머리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한 마디의 말도 터져 나오지 않을 때  하나씩 천천히 불을 켜지 않겠니   나란히 앉고 싶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을   흉내 내고 싶어  오늘을 다 말해버린다 오늘로 간다  오늘로 가자   오늘이여 영 가버리자   너를  어디에 묻었나   어두운 낙서를 같이하지 않겠니  빠르게 떠내려가는 하늘 아래  방향을 바꿀 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 2024. 4. 16.
■ 박지일 시인의 시 ■ 사카린 프로젝트 & 아기 새 & 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 · · · · · & 오드아이 신드롬 & 립싱크 하이웨이 부정하라 나는 부정되라. 나는 물결 하였다. 백만 송이 내가;물결 하는 클럽이었다. 미러볼 아래에서 나는 기형 하였다; 그러니까 머리가 둘 넷··· 사카린 프로젝트    홀로 탱고 하였다. 미러볼이 무대를 기록하였다. 내 자리 그곳에 없었다. 미러볼 나를 부정하였다. 나는 클럽지붕 위 배회하는 형광 나비였다.  나는 나의 꿈속으로 도망하였다. 어둠 흔드는 탱고였다. 내가 탱고 하는 것인지 탱고가 나 하는 것인지 알 수없었다. 한 송이씩 붉은 장미 흐드러졌다. 엉킨 스텝이장미에게 탱고 가르쳤다.  나는 부정당한 백만 한번째 장미였다. 장미는 백만 송이 기어코 완성하였다. 심수봉은 나를 몰라. 나는 나를부정하였다.  미러볼 위에서 장미 홀로 탱고하였다. 나는 미러볼을 부정하였다. 나는 나를 꿈속에서 끄집어내.. 2024.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