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4 ■ 윤은성 시인의 시 ■ 계약 & 주소를 쥐고 & 원탁 투명 & 공원의 전개 & 선셋 롤러코스터 켄트 씨는 그런 춥고 느린 장면들이함박눈이 내리는 길고 긴 오후의 인상처럼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계약 트렁크를 끌고서 켄트 씨가 걸어간다.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한 적은 없었다. 연락이 가끔 더뎠고 계좌에 잔액이 줄었다. 일을 구하는 것이 늦어지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는 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다 돌길을 걸어 사라지고 있었다. 켄트 씨는 그런 춥고 느린 장면들이 함박눈이 내리는 길고 긴 오후의 인상처럼 기억에 남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천천히 낙하하는 눈을 좋아하는 켄트 씨는 자신의 트렁크 안에 비가 내린다고 했다. 열면 멈추지 않고 우는 신들의 얼굴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한 신들 역시 끌어안을 것을 모두 놓친 것이 아닐.. 2024. 4. 16. ■ 이수명 시인의 시 ■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 물류창고 & 이디야 커피 셔츠에 낙서를 하지 않겠니 오늘 하나씩 천천히 불 켜지는 거리를 걸어보지 않겠니 하늘을 위로 띄워보지 않겠니 부풀어 오르는 셔츠에 재빨리 우리는 죽었다고 쓰지 않겠니 풍경을 어디다 두었지 뭐든 뜻대로 되지 않아 풍경은 우리의 위치에 우리는 풍경의 위치에 놓인다 너와 나의 전신이 놓인다 날아다니는 서로의 곱슬머리 속에 얼굴을 집어넣고 한 마디의 말도 터져 나오지 않을 때 하나씩 천천히 불을 켜지 않겠니 나란히 앉고 싶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사건을 흉내 내고 싶어 오늘을 다 말해버린다 오늘로 간다 오늘로 가자 오늘이여 영 가버리자 너를 어디에 묻었나 어두운 낙서를 같이하지 않겠니 빠르게 떠내려가는 하늘 아래 방향을 바꿀 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 2024. 4. 16. ■ 박지일 시인의 시 ■ 사카린 프로젝트 & 아기 새 & 빈방은 나의 정원 그네 하나 · · · · · · & 오드아이 신드롬 & 립싱크 하이웨이 부정하라 나는 부정되라. 나는 물결 하였다. 백만 송이 내가;물결 하는 클럽이었다. 미러볼 아래에서 나는 기형 하였다; 그러니까 머리가 둘 넷··· 사카린 프로젝트 홀로 탱고 하였다. 미러볼이 무대를 기록하였다. 내 자리 그곳에 없었다. 미러볼 나를 부정하였다. 나는 클럽지붕 위 배회하는 형광 나비였다. 나는 나의 꿈속으로 도망하였다. 어둠 흔드는 탱고였다. 내가 탱고 하는 것인지 탱고가 나 하는 것인지 알 수없었다. 한 송이씩 붉은 장미 흐드러졌다. 엉킨 스텝이장미에게 탱고 가르쳤다. 나는 부정당한 백만 한번째 장미였다. 장미는 백만 송이 기어코 완성하였다. 심수봉은 나를 몰라. 나는 나를부정하였다. 미러볼 위에서 장미 홀로 탱고하였다. 나는 미러볼을 부정하였다. 나는 나를 꿈속에서 끄집어내.. 2024. 4. 14. ■ 진은영 시인의 시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세월호 시, 2022년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 시인의 말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렸다.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 보려고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한 유.. 2024. 4. 13. 이전 1 ··· 19 20 21 22 23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