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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인들92

■ 백은선 시인의 시 ■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2편 & 검은 튤립이 만발하던 계절 & 생일 축하해-구유에게 & 가장 아름다운 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당신이 결국 갖게될 미래라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   폴란드 폴란드   새가 날아가는 순간 새는  무언가 놓고 가는 것만 같고   하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  불타는    나의 폴란드   아름다운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웃고  아이들은 손과 손을 겹쳐 흔들리지 않는 탑을 만들지   소리 없이  날개를 접는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너는 눈과 코와 입을 잃었고 그위로 떠내려간 입이 부른 노래가 가장 긴 이름이 되었다고하는데,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찌를 드리운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당신이 결국 갖게될 미래라고. 그 말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 2024. 4. 11.
■ 변혜지 시인의 시 ■ 내가 태어나는 꿈 & 대과거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 언더독 & 무해한 놀이 가끔 서로를 깨뜨리면서 나는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마지막으로 하나의 말을 남기게 된다.병원으로 가. 가서 나를 데려와. 내가 태어나는 꿈     가족들은 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박두한 세계를 맞닥뜨리고 내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기를. 떨리는 손으로 나를 받아 든 부모의 손길에 울음이 천천히 잦아들기를.   갓 태어난 나는 모두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주었다. 감격한 부모가 만들어내는 눈물과   포대기에 싸여 금세 잠든 어린 나의 위에 켜켜이 쌓이고 있는 수많은 소원의 형상과   수많은 축복의 선언들   나를 안고 병원을 나올 때, 나는 잠든 부모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내내 평안하기를,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나는 품에 안아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배불리 먹고도 웃지 않는다. 기저귀.. 2024. 4. 10.
■ 설하한 시인의 시 ■ 새가 태어나는 올리브 & 나이트 프라이트(Night Fright) & 빛과 양식 & 불가능한 얼굴 & 사랑하는 일이 인간의 일이라면 새가 태어나는 올리브    이스라엘은 올리브가 유명하다 통조림을 열자 씨가 제거된 올리브가 가득 차 있다 나는 올리브를 접시에 올려둔다  빈 땅에 유대인들이 올리브를 심는다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 2006년 11월 한 할머니는 마지막 손자까지 잃자 몸에 폭탄을 두른다 가족을 잃은 유대인들이 슬퍼하고  만약 보복하지 않았다면 만약 손자가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 올리브를 심지 않았더라면 만약 아무도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만약 그리고 또 만약 생각이 정전되자  어둠 속에서 올리브가 접시에 뿌리를 내린다 그것은 자라 나무가 된다 올리브가 열린다 새들이 날아들어 올리브를 먹고 씨앗을 퍼뜨린다 올리브 숲에 새들이 날아들고 새들은 열매를 먹고 알을 낳는다  불이 다시 돌아오자 올리브 숲이 사라진 테이블  접시 위에.. 2024. 4. 9.
■ 변윤제 시인의 시■ 탈모 예방법 & 주식회사 알파카 건설 &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내가 싫다니 다행이야미움이 나를 밝힐 테니까털이 빠졌을 뿐인데불빛이 들어오는 두 손  탈모 예방법   나의 장래희망버스 바닥에 엎질러진 아저씨의 가발의 되는 것흐느적탈모를 예방하라니무슨 말이야다 빠져버려야 더 이상 빠질 게 없다고벼락 맞은 뒷담은 가으내 기른 풀포기를 몽땅 잃었고동병상련이라니 레트로한걸우리가 미움을 돌보지 않는데, 미움이 우리를 돌보기 바라?낡은 담장의 벽돌을 뜯어내뽑아버리자네가 온다면 내주고 싶어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티백함께 차를 마시고 거실 바닥에 침을 뱉자청록색 덩어리들왜 그러냐 물어봐줄 필요는 없어침을 뱉으면서침을 뱉을 자리에 침을 또 뱉고 침을 더 뱉고 침을 칵 뱉으면서운명이란 말을 믿는 거야이루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까명명백백해지는 몸과 마음으로빠져버리자 머리머리머저리들.. 2024.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