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3 ■ 김이듬 시인의 시 ■ 입국장 & 법원에서 & 간절기 & 리얼리티 & 저지대. 축하합니다!!! 2024년 제1회 신격호 샤롯데문학상 시 부문(푸쉬킨문학) 대상 수상, 김이듬, 『투명한 것과 없는 것』(문학동네, 2023) 그녀에게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까 자동차가 아닌, 사람의 도시라고 최소한 총성이 울려퍼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일까입국장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할까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파무크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 2024. 11. 10. ■ 박세미 시인의 시■ 생산 라인 & 순환 세계 & 뒤로 걷는 사람 & Balkon & 나는 터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시집, 『오늘 사회 발코니』 로 2024년 제42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선정되심을 축하합니다.!!! 목과 손목을 여미는 품위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가 없고 축 늘어진 와이셔츠의 소맷자락을 잡고 질질 끌며 걸/었던 밤거리마다 단추가 놓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생산 라인 화이트 셔츠 공장 이곳이 내가 선택한 품위다 마흔 가지가 넘는 와이셔츠 제작 공정에서 칼라와 커프스를 다는 것이 지난 20년간 지켜온 나의 업무 숙련된 자들에게선 고르고 안정적인 소리가 난다 원단을 가르는 가위로서 박음질하는 미싱으로서 뜨거운 김을 내뿜는 다리미로서 20년이다 그러니 검붉은 피가 번지는 일 노릇하게 구운 냄새가 나는 일 옆자리의 동료가 사라지는 일 결코 실수가 아니다 하얀 옷.. 2024. 11. 2. ■ 이지아 시인의 시■ 운명과 자두의 힘 & 미래가 끝난 다음에도 & 조약돌 소극장 & 까마귀라는 언어 & 에칭프레스. 어떻게폴의 슬픔을 멈추게 할까. 어떤 말로 폴을 안도하게 할까.어떤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며, 폴의 손에 쥐여 줄까. 이 마법 자두 하나로 울고 있는 이 밤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운명과 자두의 힘-서사시의 형식으로 ······ 부분 생략 ······ 아무도 모르겠지만, 크로스베너 부인은 짐작도 하지 못할 테지만, 매일 밤 폴은 엄마를 그리워한다. 폴이 매일밤 뭔가를 쥐고 자야 하는 건 그것 때문이다. 폴은 매일떨면서 잔다. 내 심장과 폴의 심장은 함께 떤다. 폴이 태어나 한 달이 되었을 때, 6개월이 되었을 때, 한 살이 되고세 살이 되었을 때도, 부인은 폴을 안아 준 적이 없다. 폴을 안아 주는 건 하녀가 하는 것이고, 폴에게는 전문 교사들이 있고, 폴에게는 멋진 저택이 있다. 폴에게는.. 2024. 10. 27. ■ 박은정 시인의 시 2 ■ 작은 경이 & 아사코의 거짓말 & 링링 & 어떤 장례식 & 빙식증 작은 경이 너와 내가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빼고는 다 알았다 내가 훔친 운동화를 네가 신고 다닌다는 소문 훔친 운동화는 모르는 길도 처음 보는 가게도 거침없이 돌아다닌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더위에 숨을 헐떡이는 개 시소 위에 놓인 돌멩이 하나 가끔은 모든 것이 전람회에 걸린 그림 같다 지루한 자신을 훔쳐 갈 도둑을 기다리듯 태풍의 전야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아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점성과 농도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세계에 가닿을 손끝을 예감했던 것처럼 손목과 발목이 서로 엉킨 채로 두려움이, 또 두려움 없는 마음이* 동시에 서로를 한 몸처럼 먹고 마시며 어떤 사랑은 사랑이 되기 위해 .. 2024. 10. 10. 이전 1 2 3 4 5 6 7 8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