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들95 ■ 이진명 시인의 시 ■ 뱀이 흐르는 하늘 & 단 한 사람 & 명자나무 & 우물쭈물 우물쭈물 & 희어서 좋은 외할머니 어느 몸에도 독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몸들이 잠깐잠깐 번쩍이는 건 역시 찬피가 숨어 빛을 쏘기 때문일까요 보석들의 근본인 차가움에 대해 생각이 미칩니다 뱀이 흐르는 하늘 하늘에는 아무도 물지 않고 뱀이 흐릅니다 흐르기 좋아하는 뱀이 길게 흐릅니다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셋이군요 움직임 미세합니다 저토록 흰색이다가 엷은 황색을 띠기도 합니다 비치는 색지처럼 미묘히 몸 뒤집으며 그러다가 몸 풀듯 일직선을 이룹니다 발딱 일어선 일직선 말고 수평의 부드러운 일직선 말입니다 어느 몸에도 독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몸들이 잠깐잠깐 번쩍이는 건 역시 찬피가 숨어 빛을 쏘기 때문일까요 보석들의 근본인 차가움에 대해 생각이 미칩니다 그림 같습니다 뱀이.. 2024. 10. 1. ■ 박참새 시인의 시 ■ 무해한그릇-물 마시는 시 & 말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벌이 있는 것일까 & 우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야지 & 정신머리 무해한그릇- 물 마시는 시 습기: 모든 질병의 원인* 멋지네 안타깝고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날걸 태초에 물이 있었던 거네 찰랑찰랑 걸음걸음마다 내 안에서 물이 아스르르 넘칠 것만 같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발자국이 촉촉했다 흰죽 한 그릇 주세요 아픈 사람처럼 말한다 죽은 아픈 밥이니까 너머 테이블에서는 맛있게 해 주세요라고 한껏 소리친다 그 말을 하면 맛이 있게 되는 건지 나는 궁금했지만 맛있게 드세요, 아 이건 맛있게 먹으면 안 되겠네 왜 안 될까? 흰죽은 맛있는데 혹시 내가 맛있게 해 달라고 종용하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너무나 이상한 일인데 맛의 정체를 모를 축축한 쌀알들이 내 안에서 마구 굴러다닌다 요즘은 어떠세요? 내가 아무리.. 2024. 9. 25. ■ 허연 시인의 시 ■ 칠월 & 내 사랑은 언제나 급류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 내가 원하는 천사 & 밤에 생긴 상처 & 슬픈 빙하시대 1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칠월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 놓은 깊은 골이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 버렸는지. 땅바닥을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 버린 잊은 그대가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 2024. 9. 20. ■ 이 원 시인의 시 ■ 쇼룸 & 아이에게 & 큐브 & 작고 낮은 테이블 & 사람은 탄생하라 사람과 사람// 어른과 아이//개와 사람개와 사람의 그림자가 섞이고 그림자는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쇼룸 사람과 사람 둘 나가고 둘 들어왔다 빈 곳을 메웠다 둘 들어오고 하나 나갔다 짚이는 대로 그림자 둘 집어 들고 갔다 문이 열리고 하나 들어갔다 하나 나오고 하나 들어갔다 발목들은 문 앞에 나란히 말라 죽은 화분 옆에 나란히 어른과 아이 집 밖에는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은 아이가 가고 거기는 허공이고 아이는 허공에서 앞발이 들렸고 우산이 앞을 다 가렸고 집 안에는 목이 꺾인 어른이 있고 팔짱을 껴서 베고 있고 창은 딱 맞고 개와 사람 개가 달리고 사람이 달린다 개와 사람이 달리고 길이 남는다 개와 사람이 달리고 눈이 펑펑 쏟아진다 .. 2024. 8. 25. 이전 1 ··· 4 5 6 7 8 9 10 ··· 2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