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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가로등과 밤 그리고 별-함부르크 시집』에서: 가로등의 꿈, 함부르크에서, 잿빛 빨강 초록의 대도시 연가, 대도시, 골동품. 가로등의 꿈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너의 문 앞에서  창백한 저녁을 환히 비추리.   아니면 항구에서,  커다란 증기선들이 잠자고  아가씨들이 웃는  그곳에서 불침번 서며,  비좁고 더러운 운하 곁  홀로 걷는 이에게 깜빡이리.   좁은 골목  어느 선술집 앞에서  빨간 양철등으로 매달려,  상념에 잠기고  밤바람에 흔들리며  그네들의 노래가 되리.   아니면, 창틈으로  바람은 비명을 지르고  바깥 꿈들이 유령을 토해낼 때,  혼자 남은 걸 알고 놀라  휘둥그레진 아이의 눈망울에 번지는  등불이 되리.   그래, 나 죽으면  가로등이라도 되리.  그리하여,  모두가 잠든 세상에서  밤마다 홀로 저 달과  이야기를 나누리.  아주 사이좋게.    함부르크에서     함부르크.. 2024. 9. 30.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악의 꽃』에서: 알바트로스 & 시지나 & 우울 & 백조 & 거짓에의 사랑.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 2024. 9. 28.
■ 박참새 시인의 시 ■ 무해한그릇-물 마시는 시 & 말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벌이 있는 것일까 & 우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야지 & 정신머리 무해한그릇- 물 마시는 시     습기: 모든 질병의 원인*   멋지네  안타깝고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날걸  태초에 물이 있었던 거네   찰랑찰랑  걸음걸음마다 내 안에서 물이 아스르르  넘칠 것만 같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발자국이 촉촉했다   흰죽 한 그릇 주세요  아픈 사람처럼 말한다 죽은 아픈 밥이니까   너머 테이블에서는  맛있게 해 주세요라고 한껏 소리친다   그 말을 하면 맛이 있게 되는 건지 나는 궁금했지만   맛있게 드세요, 아 이건  맛있게 먹으면 안 되겠네   왜 안 될까? 흰죽은 맛있는데  혹시 내가 맛있게 해 달라고 종용하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너무나 이상한 일인데   맛의 정체를 모를 축축한 쌀알들이 내 안에서 마구 굴러다닌다 요즘은 어떠세요?   내가 아무리.. 2024. 9. 25.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네 가슴속의 양을 찢어라』에서: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 가을 & 언어 & 실스마리아 & 명성과 영원.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오, 달콤한 숲의 평화여  지상에서 안식을 찾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이 가슴  하늘 높이 들어 올려 주오.  나 푸른 풀숲에 드러눕네.  샘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눈은 흐릿해지고, 뺨은 젖고,  영혼은 환해지며 맑아지네.  나뭇가지들은 몸을 숙여  제 그늘로 감싸 주네,  삶에 지치고 병든 이 몸을,  마치 고요한 무덤처럼.   푸른 숲속에서 나 죽고 싶네,  아니야! 아니야! 이딴 쓰린  생각은 접자! 푸른 숲속에는  새들의 노랫소리 즐겁게 울리고  참나무들은 머리를 흔드니  머지않아 그곳에서는  숭고한 여러 힘들이  너의 관을 흔들 테고  그곳에는 영혼의 평화가  네 무덤에 깃들 테니.  영혼의 평화를 통해 너는 이곳  지상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겠지.   구름들은 황.. 2024.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