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41 ■ 이소연 시인의 시 ■ 대지의 상상력 &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 & 장작 패는 사람 & 여름 옷장 & 해석의 갈등 대지의 상상력 대지는 두서없이 넓다 아니 누워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이쪽 나무는 서서 죽는데 저쪽 나무는 뿌리를 내린다 지독하고 오래된 가뭄이 시작되었다 대지의 상상력을 읽고 있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나무들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내 이름엔 물이 고여 흐른다고 했다 물을 빌리러 왔다고 했다 나는 간과 내장이 뭉그러졌고 대지도 아니면서 내 몸에 뿌리박은 것들이 꿈틀거리는것을 본다 나는 손가락이 베인지도 모르고 나뭇잎을 한쪽으로 밀어 넘긴다 발끝에 힘을 모으면 지평선이 잠시 흔들린다 머리만 남아 있는 나는, 나무에 껴 있는 어느 부처가 된다 아니면 나무 묘비를 세우고 있다 훗날 대지가 발견되는 걸까, 나무가 발굴되는 걸까 나무로 꽉 찬 기분으로 누워있다 불안의 책*이 된.. 2024. 8. 17. ◆ 박상순 시인의 심사평 ◆ 의식의 눈을 찌르는, 빛나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제67회 현대문학상 본심 심사평) 의식의 눈을 찌르는, 빛나는 언어, 발견되는 언어-박상순 이제니의 시는 현실 대상의 표면에서 의식의 표면으로 나아간다. 이런 표면성 전환은 그녀의 시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대로 바라보지 않는 오늘의 눈”이나 “마지막으로 남은 명사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써 내려가고 있다” 등의 표현을 통해 지각과 언어의 구조로 이루어진다. 다소 시간을 지체시키는 반복적 어휘들이 감정적인 노선으로 빠져들게 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것들의 반복 구조를 통해 한편으로는 일정한 질서를 회복하며 절망적인 도착 지점에 이른다. 그 지점은 바로 감정적인 분위기, 무드 Mood의 절망이거나 절연 지점이다. 산문 형식의 글쓰기, 냉정하게 말하자면 잡문雜文의 형식을 취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제니의 시는 .. 2024. 8. 16. ■ 이병일 시인의 시 ■ 녹명(鹿鳴) & 마야꼽스끼의 방 & 골리앗 크레인의 도시 & 정원사 일기 & 오후 두시의 파밭 녹명(鹿鳴) 저 흰빛의 아름다움에 눈멀지 않고 입술이 터지지 않는 나는 눈밭을 무릎으로 밟고 무릎으로 넘어서는 마랄사슴이야 결코 죽지 않는 나는 발목이 닿지 않는 눈밭을 생각하는 중이야 그러나 뱃구레의 갈비뼈들이 봄기운을 못 견디고 화해질 때 추위가 데리고 가지 못한 털가죽과 누런 이빨이 갈리는 중이야 그때 땅거죽을 무심하게 뚫고 나오는 선(蘚)들이 거무튀튀한 사타구니를 몰래 들여다보는, 그런 온순한 밤이야 바닥을 친 목마름이 나를 산모롱이 쪽으로 몰아나갈 때 홀연히 드러난 풀밭은 한번쯤 와봤던 극지(劇地)였던 거야 나는 그곳에서 까마득한 발자국의 거리만큼 회복하고 싶어 무한한 초록빛에 젖은 나는 봄눈 내리는 저녁을 흘려보내듯이 봄눈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붉은.. 2024. 8. 15.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Ivan Sergeyevich Turgenev,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에서 산문시 3편: 대화 & 개 & 벌레 대화 융프라우에도 핀스터아르호른에도 아직 인간의 발자취가 없었다. 알프스 정상······ 온통 험한 봉우리들의 연속 ······ 산들의최중심지. 산 위로 펼쳐진 연옥색의 말 없는 밝은 하늘. 매서운강추위. 반짝이는 얼어붙은 눈. 그 눈을 뚫고 솟아난 얼음덮이고 비바람을 견뎌 낸 준엄한 바윗덩어리. 지평선 양쪽에서 떠오른 두 바윗덩어리, 두 거인은융프라우와 핀스터아르호른이다. 융프라우가 이웃에게 말한다. "뭐 새로운 소식 없소? 당신이 더 잘 보이잖아. 거기아래쪽은 어떻소?" 한순간 몇 천 년이 지나간다.. 2024. 8. 9.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