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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자 시인의 시 ■ 덜그럭거리는 숲 & 백야라는 부사 & 식탁의 다리 & 물고기의 가역반응 & 슈만의 구두 가게 책상은 서랍을 빼물고 덜걱거린다  당신은 나를 꺼낸다  물고리 없는 숲이 펼쳐진다 덜그럭거리는 숲     서랍 속에 누워 있다  밤을 좋아하지만 밤은 계속 밤이다  서랍 속에는 문고리가 없다   덜그럭거리는 심장  열리지 않는 숲   밖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 없는 세계는 이야기일 뿐  나 있는 세계도 여기에선 이야기여서   울창한 그림자에 담겨 나는  하늘을 떠올린다 구름이 게으르게 흐르고 바람이 내려앉지 못하고  별들은 시린 발을 꼼지락거리고  구름과 땅을 비가 꿰맬 때   당신은 책상 위에 시침처럼 엎드려 있다  여전히 밤인데도  당신의 심장이 문을 두드린다   눈 덮인 숲에서 나무들이 컹컹 짖고  눈처럼 먼지가 날아오르고  하늘이 흔들리고 새들이 떨어져 내리고  나는 쓸려 가지 않으려 이야기.. 2024. 5. 31.
◆ 박상순 시인의 시 ◆ 양 세 마리 &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 & 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2년 뒤 & 자네트가 아픈 날 1 풀밭에는 분홍 나무  풀밭에는 양 세 마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한 마리는 옆을 보고 양 세 마리     풀밭에는 분홍 나무  풀밭에는 양 세 마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한 마리는 옆을 보고   오른쪽 가슴으로  굵은 선이 지나가는  그림 찍힌   티셔츠   한 장 샀어요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풀밭에는 양 세 마리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오른쪽 가슴으로   굵은 선이 지나는  그림 찍힌 티셔츠   한 장 샀어요   한 마리는 옆을 보고  두 마리는 마주 보고    나는 그녀를 통해 사라지는 세계를 본다. 사라져가는 세계의 푹풍에 취해 그녀가, 흰 천 위에 나뒹굴 때// 나는 피를 뽑는다 ···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     언제부터.. 2024. 5. 28.
앤 섹스턴Anne Sexton, 『밤엔 더 용감하지』에서, 그런 여자 과(科) & 내 모든 어여쁜 것들 & 키스 그런 여자 과(科)      나는 홀린 마녀, 밖으로 싸돌아다녔지,  검은 대기에 출몰하고, 밤엔 더 용감하지.  악마를 꿈꾸며, 나는 평범한 집들  너머로 휙휙 불빛들을 타고 다니지.  외로운 것, 손가락은 열두 개, 정신 나간,  그런 여자는 여자도 아니겠지, 분명.  나는 그런 여자 과.   숲속에서 나는 따뜻한 동굴들을 발견했고,  동굴을 프라이팬, 큰 포크들과 선반들,  벽장, 실크, 셀 수 없는 물건들로 채웠지;  벌레와 요정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고:  훌쩍이며, 어질러진 걸 다시 정리했지.  그런 여자는 이해받지 못해.  나는 그런 여자 과.   나는 당신 수레에 올라탔어, 마부여,  지나는 동네마다 내 맨팔을 마구 흔들어 댔지,  최후의 바른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그 길에서는 당신 불.. 2024. 5. 27.
■ 마윤지 시인의 시 ■ 아이들 & 여름 촉감 & 여름 방학 & 이 세계를 걱정하는 방법 & 타임 코드 시시해  놀이터에 종을 놓고 돌아왔어   매일매일 생각나  매일매일 그렸어 아이들     *  종을 흔들었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어   시시해  놀이터에 종을 놓고 돌아왔어   매일매일 생각나  매일매일 그렸어    *  옛날 옛적에 귀신이 살았습니다    귀신이 살아 있어?   아 귀신이 죽었습니다 죽고 나서 귀신이 되었습니다    *  이제 볼 수 있지 휘파람  둥지에 웅크린 휘파람  휘파람을  떨어트려 죽이는 휘파람  차에 치인 휘파람  다시 다시  알을 깨고  휘파람    젖은 옷이 따뜻해  속이 다 비치는데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것같이 여름 촉감     분수 광장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한 줄로 걷는다   물이 솟는 블록을 찾아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가   더 가까이   낮은 환하고  광장은.. 2024. 5. 26.